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토르 : 러브 앤 썬더, 미국, 2022.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주연 크리스 헴스워스, 내털리 포트먼, 크리스천 베일 외, 토르 : 러브 앤 썬더, 미국, 2022.
그야말로 '사가(Saga : 연대기)' 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영웅들이 나오는 어벤져스 영화의 서사도 웅장했으나, 어벤져스 팀을 구성하는 영웅들의 각 이야기 또한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물론 어벤져스가 회를 거듭함에 따라 영웅들의 단독 영화에서는 '아니, 주인공이 저렇게 힘든데 다른 동료들은 어디 가서 뭐하나' 이런 의구심이 들었던 적도 있다. 좌우간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블랙팬서,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앤트맨, 비전,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팔콘 등 수없는 영웅들의 장대한 이야기에 한동안 넋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 중 토르는 아이언맨 2편이 시작할 즈음 함께 출발하여 벌써 4편째가 나오지만, 솔직히 어떤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고 보기엔 다소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나마 1편은 왕된 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매력이라도 잇었지만, 3편인 래그나로크의 화려한 시각 효과를 제외하면, 토르는 솔직히 뭐랄까... 맨날 망치 들고 도끼 들고, 붕붕 돌다 날아가고, 뻑 하면 옷 벗고 몸매 보여주고, 아니 무슨 하얼빈 장첸이야...?? 싶은 그런 느낌...
밥 잘하는 유진이가 생일 선물로 디즈니+ 아이디 를 공유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내 돈 주고 볼 일은 없었던 영화일 수도 있다. 최근 여왕께서 돌아가셨고, 뒤이어 찰스 3세가 왕위를 이으면서, 이제 세상에는 왕가가 몇 남지 않게 되었고, 그 사이에 디즈니+ 에서는 토르의 새 영화를 올려주었다. 사랑과 번개라.. 토르는 천둥의 신이긴 하지만, 사랑은 또 뭘까. 그 동안 늘상 굵은 목소리로, 토니 스타크의 비아냥마냥 '자넨 셰익스피어인가?' 할정도로 고전적인 어투를 자랑했던 토르가 이젠 로커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많은 이들의 평처럼, 영화의 서사는 엄밀하지 못했고, 개연성도 적었다. 느닷없는 제인 포스터의 재등장과 엔드게임 이후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과 온 행성을 누비며 세계, 아니 우주 평화에 힘쓰지만 어딘가 넋이 나가버린 것 같은 토르는 영 낯설었다. 물론 마블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왔을 서양 평론가들은, 이번 토르의 새 영화가 마블이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만화적 상상력과 향수를 자극한다며, 본디 코믹스(Comics)란 이런 것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내보내었다. 동서양의 차이가 있지 싶다.
그림자 구역에서 어두운 분위기를 잔뜩 조성하며 신에 대한 증오를 아낌없이 뿜어내었던 고르 역의 크리스천 베일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하나 더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3편 래그나로크에서 토르는 친누이 헬라에게 맞서 아스가르드의 평화를 위해 싸우지만, 눈 하나와 묠니르까지 잃고 대패했으며, 스톰 브레이커라는 새 무기와 강력한 벼락을 가지고 싸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전설의 괴물을 부활시켜 행성과 누나를 모두 함께 부수고 나서야 백성들을 끌고 지구로 망명하며 '백성들이 함께 있으니 여기가 아스가르드다.' 라는 알쏭달쏭한 승리 선언을 하며 영화를 맺는다. 이후 북유럽을 연상시키는 추운 해안가에 정착한 아스가르드인들은 토르와 로키, 그 외의 아스가르드 영웅들을 모두 자본화하여 어업 이외에도 관광업을 하며 먹고 산다. 신성화되어야할 토르의 부서진 묠니르 조각들을 전시하고, 아스가르드의 동물들을 본딴 놀이기구를 운영하고, 영웅 모양 먹을거리를 만들어 파는 외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위대한 영웅이나 침략자도 지구의 자본은 이길 수 없구나, 자본은 진짜 힘이 센 것이구나, 를 괜시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