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김훈, 하얼빈, 문학동네, 2022, 한국

by Aner병문

'작가들의 작가' 김훈 선생의 간결하고 날카로운 문장력에 대해서만큼 누구도 이견이 적으리라 생각한다. 타격계로 치자면, 움직임을 읽어낼 수조차 없는 빠른 찌르기와 같다. 다만 김훈 선생의 매력은,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읽게 하는 소설보다, 이미 우리가 어느 정도 기승전결을 알고 있는 역사를 다시 짜고 덧칠하는데 있다고 보았기에, 아주 먼 시대도 아닌, 그리고 안중근 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길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특유의 장대한 필치로 그려낼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은 그리 길거나 두껍지 않지만,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수 있을듯하다.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서로 각자의 맥락으로 삶을 추동하는 내용이 하나고, 의사께서 거사를 성공하신 뒤 스스로 삶을 마쳐가는 내용이 또 하나다. 마치 한국의 헤밍웨이라고 해도 좋을듯한 김훈 선생의 서사는 짧고 간결하게 두 사내의 삶을 번갈아 조명한 뒤, 나머지는 점점 의사의 삶 주변으로 변해가는 환경을 맴돌다가, 서거 이후에는 간략한 후기로 이후의 상황을 자료처럼 남긴다. 이를 보면 선생은 역시 문장을 벼리어 던지는 사람이지, 스스로의 문장을 오랫동안 짊어지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말의 끝을 끝까지 틀어쥐지 않고, 읽는 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러므로 독자의 골몰은 깊어지지만, 그 시름이 결코 애닯거나 괴롭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생각지도 못하게 김훈 선생이 능히 안중근 의사의 짧고 강렬한 삶을 조망하시어 나는 놀랐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실로 몰랐고, 무관심했던 내용도 많아서 놀랐다. 또한, 소주 한 병 5천원 시대에, 김훈 선생의 책 두 권을 샀어도 삼만원이 채 넘지 않아 놀랐다.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아직도 나는 정하지 못했다. 다만, 책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오랜만의 소설이 좋아서 김훈 선생의 다음 책을 바로 펴들었다. 자끄 랑씨에르의 에쎄이는 중간까지 왔다 .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