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71일차 -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by Aner병문

어떤 무공을 익히든 공부와 비슷하여 나의 진도란 상당히 처참하기 짝이 없는데, 태권도를 배울 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첫 승급만 해도 6개월이나 걸렸다. 나이 서른, 한창 좋은 5월 봄날에 입문하여 11월 혹독히 추워질때까지 사인 웨이브Sign wave 를 한답시고 위아래로 휘청휘청 걷는서기로 도장만 계속해서 들쑤시고 다녔다. 이런저런 무공을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해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입문했지만, 오히려 무엇 하나 배운 적 없는 젊은 사제사매들이 금방 진도를 빼어 벌써 도산 틀이며 원효 틀, 다른 발차기 등을 배우며 달마다 쑥쑥 커서 띠 색깔을 바꾸는데, 연습을 덜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닷새 동안 꾸준히 나와 반복하는데 그 지경이니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최근에 선무도를 하다오셨다는 중년의 한 부인께서는 손발의 힘이 좋으시고, 태권도와는 또다르게 마치 현무도처럼 온 몸을 구불구불 움직이며 치고 차는 움직임에 아주 능숙하셨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비교적 승급이 빠르지 않아 무척 힘드신 모양이었다. 비교적 나이 차가 적은 내게 겸사겸사 말씀하시기에, 나 역시 승급이 늦었고, 더군다나 다른 기예를 더 많이 배우고 오시면 오히려 몸의 이해가 더 늦을수도 있다 알려드렸더니 무척 놀라시는 눈치였다.



수요일은 발차기를 배우는 날인데, 사범님은 검은 띠를 따로 모아놓고 다른 발차기를 가르치시었다. 무릎을 45도 밖으로 향하여 바깥으로 돌리거나, 혹은 반대로 벌린 뒤에 안으로 돌려 몸 전체의 반동으로 차는 내려찍기, 상대가 멀리 있을때 뒷발을 함께 밀어주며 가깝게 차는 내려찍기, 마지막으로는 흔히 턴차기 라고 하는 돌개차기 를 다시 배웠다. 다른 발차기는 몰라도 내려찍기는 택견할때부터 발따귀를 배웠기 때문에 그럭저럭 차는 줄 알았는데, 무릎을 완전히 바깥으로 뺴거나 안으로 오므리면서 차는데다 길게 미끌면서 차기도 해야했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국적과 키가 비슷한 콜라 부사범과 내가 짝을 맞췄고, 스뻬인에서 온 미즈 에스떼반과 개브리엘라 가 역시 국적과 키가 같아 짝을 맞추었는데, 발차기가 피차 어려운 건 비슷했다. 특히 마지막의 돌개차기는, 나 역시 대략적으로 요령만 알고 있을 뿐, 미즈 에스떼반도, 개브리엘라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해 어지럽기 짝이 없었는데, 그동안 날랜 몸으로 꾸준히 연습해온 콜라 부사범만이 아주 정확하게 찼다. 나 역시 그냥저냥 기본 발차기나 반대 돌려차기, 뛰어 발차기 정도만 찰 수 있었는데, 태권도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돌개차기나 회전차기 를 잘 하지 못해서 이런저런 영상을 보면서 연습이나 하는 정도였다. 어제는 때마침 사범님과 콜라 부사범이 다 함께 있어 정확히 요령을 배웠는데, 일단 뒷발로 첫 발을 먼저 준 뒤, 옆몸으로 뒷발과 앞발을 일직선상에 둔 뒤 버팀발을 허리 뒤쪽 바깥으로 뛰어 넘기면서 다시 첫 발을 찼던 발로 부드럽게 차면 되었다. 솔직히 말도 복잡하지만, 그나마 오른발은 좀 끊어가면서라도 어찌 차겠는데, 왼발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움직임을 익히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한 이십 분 연습하니 술 댓병 마신 마냥 어지러웠어도 대략 감은 잡았다. 사범님께 이 것도 한 2년 걸리겠네요, 마흔살쯤, 돌개차기 되는 거 보여드리겠습니다, 햇더니 웃고 마셨다. 사범님은 내가 항상 아주 길게 시간을 써서 기술을 익히는 과정을 팔 년째 보고 계신 분이었고, 항상 늦든 빠르든 태권도의 어느 지점까지 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이미 2단 틀의 마지막인 고당 틀을 하루 걸러 1회에서 5회 정도 3년째 반복하고 있다. 늘 이런 식으로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워 쌓아올려왔다.



밤 9시부터 승급 심사가 있었다. 사범님은 예전보다 더욱 바쁘셔서, 몇 년 전처럼 주말의 하루를 정해 심사를 소집하지 못하셨다. 늘 어딘가로 강연을 나가시거나 행사를 기획하시거나 혹은 유단자들의 특별 훈련을 지도해주셔야 했다. 그러므로 사범님은 도장에 계시는 짬짬이, 자격을 갖춘 수련자들의 심사를 보셨다. 줄노란띠의 립글로스 사매와 똘똘이 사매, 줄녹색띠의 손흥민 사제(조기축구회 회원임), 파란 띠의 킥복서 사제가 각각 승급을 보았다. 누구보다도 가장 불안하고 힘들어했던 립글로스 사매가 많이 늘어서 정말 놀랐다. 첫 띠에서 줄 노란띠, 한 줄의 노란 색이 더할 떄의 기쁨이 가장 크지만, 이제 하얀색이 더 많던 띠에서 완전한 색깔띠를 가는 노란띠에서의 승급도 또한 기쁘다. 내가 도장을 잘 나오지 못하고, 일하며 애 키우는 짬짬이 집에서 연습하던 시절 동안 얼굴이 아직 낯선 젊은 사제사매들도 꾸준히 연습하여 쌓아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다시 한 번 놀랐다. 미즈 에스떼반은 열다섯살에 ITF에 입문하여 스물다섯인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나보다 선배인 셈인데 역시 유급자들의 움직임을 굉장히 빠르게 짚어내어 선배는 선배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나라에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도복을 입고 매일 새로운 것을 쌓아올린다. 천일의 훈련을 단, 만일의 훈련을 련이라고 하며, 이 단련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기술을 우리는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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