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김훈, 저만치 혼자서, 문학동네, 한국, 2022.
김훈 선생의 표현은 늘상 헤밍웨이 같다고 생각해왔다. 똑같이 신문기자 출신인데도 고종석 선생이나 장강명 선생과는 '전혀' 다르다. 헤밍웨이는 살아 생전, 문장은 간결하고 단려하게 진실만을 전해야 한다고 일갈해왔다. 그러므로 88일 동안 바다를 표류하며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에 대한 첫 도입부는, 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의 설국만큼이나 아득하고 어렵다. 마치 에쿠니 가오리처럼,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숨겨진 뜻이 많아 어렵다. 김훈 선생은 그런 점에 있어 헤밍웨이와 늘 맞닿는다고 생각해왔다. 거친 남성처럼 툭 찔러넣으면서도, 알고보면 수굿이 숨겨놓은 속내가 많은 문장들이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책띠 표지의 광고 문구처럼 '16년만에 낸 두번째 소설집' 이라서 그런가, 하얼빈 을 읽은 김에 내쳐 꼼꼼히 읽어보니 조금 알듯도 하였다. 농민 브뢰겔로도 불리운, 저 유명한 대 브뢰겔의 그림들처럼, 그의 문장은 마치 커다란 서사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훑는 양, 간결하되 자세하다. 즉, 그는 늘상 소설을 쓰기 전 먼 타지에 머물며 준비하는 취재들을 '놀았다' 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는 마치 노는듯 그렇게 살아오며 대신 따북따북 그가 겪은 타인의 삶의 결들을 모아 기억하고 썼을 터이다. 마치 스스로가 겪어낸 노동을 그대로 글로 옮긴 유용주 선생이나 박노해 선생, 혹은 황석영 선생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일상의 삶을 엮어내는데 돌아온 김훈 선생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화되었으나 그다지 큰 반향이 없었고, 원작 역시 여성의 생리적 현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들은 '언니의 폐경' 을 비롯해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덜그럭거리는 듯한 그의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 , 혹은 근현대사의 일부를 그린 '공터에서' 나 '공무도하' 보다도 이 소설은,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특히 그는 소설의 뒷부분에 마치 '군말이다' 라고 스스로 자조하면서도, 왜 각각의 단편을 쓸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치열한 삶의 단락이 그를 이토록 글쓰게 만들었는지, 그 마주침의 순간을 짧게나마 소개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두어 번, 출퇴근길에 오며가며 읽었고, 그리고 너에게 말했었다. 글을 손발처럼 붙이고 다니는 사람만이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나는 내가 아는한 태권도의 기술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힘을 운용해야 하는지 최선을 다해 설명할 수 있지만, 혹은 누군가 만질 수 없는 개념을 묻거나, 우리 회사에서 고안한 기계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코 김훈 선생처럼 이토록 유려하게 스미도록 말할 수 없다. 결국 아는만큼 말하거나 쓸수밖에 없는데, 읽는건 원하는만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리워질때마다 소설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