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973일차 -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자 노력하는 것.
그러므로 창시자께서는 태권도의 초기 창제 및 발전사의 중요한 참고자료이자 자서전이기도 한 '태권도와 나' 혹은 태권도교본, 태권도백과사전 등에서 태권도는 '도복 한 벌만 있으면 어데서든 할 수 있으며, 없다고 한다면 러어닝 쌰쓰와 반바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고 말씀하셨다. 그 스스로도 태권도의 화신이라고 자부하셨던만큼, 창시자께서는 태권도를 위해 일생을 다 바치셨으며, 세계를 누비느라 비행기 속에서도 온갖 논문과 자료들을 쓰시느라 정신없으셨던만큼, 늦은 밤과 새벽에도 벽과 기둥에 손발을 부딪혀가며 본인의 단련에 몰두하셨음은 물론이요, 가는 나라마다 가라테와 유도, 검도, 합기도 등에 지지 않으시려고 태권도의 씨앗을 뿌리고자 호텔 응접실이며 공항 화장실에서까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알짜배기 기술들을 전수하시느라 땀에 젖은 넥타이조차 갈아끼우지 못하고 비행기에 오른 것도 여러 번이라고 하셨다. 사실 창시자님의 자서전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냥 태권도를 만든 사람이, 제 나라 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상황이 되어서까지 왜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고생하는가 싶겠지만, 태권도를 훈련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분명 이 나이에조차 피가 끓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그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도복을 입고 허리에 띠를 매며 가끔씩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아직 떠들썩하고 싶지는 않아서, 교회도 조용히 다녀왔고, 빈 도장에서 오랜만에 혼자 여유롭게 연습했다. 끼니를 때우고, 이십여분 정도 걸어왔는데도, 여전히 배가 차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 여유를 들여 아주 천천히 정확하게 연습했다. 그 동안 집의 옥상도장에서는 늘 빨리 끝내고 애를 보아야 했고, 또한 화요일과 목요일 내가 돕는 날에도, 가능한 빨리 내 훈련을 끝내고 사제사매들을 봐드려야 했기 때문에 나의 틀과 동작은 늘 누가 쫓는 듯 빠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가능한 천천히 했고, 가능한 많은 근력 훈련을 했다. 이틀 동안 나는 아이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항상 주변을 맴돌았는데, 이제 네 살을 바라보는 아이는 어느덧 제 의지와 고집이 세져서 무엇이든 제 뜻대로 되지 않을라 치면, 바닥에 찰싹 누워버리거나 혹은 잽싸게 달려가버리거나 하여 칠순을 바라보는 어머니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아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아이보다 더 빨리 뛰었고, 또한 아이를 언제나 들어올렸으며, 마침내 아이가 제 풀에 지쳐 내 품에 폭 안겨서는, 그냥 와도 삼십여분 넉넉히 걸릴 공원 길을 15킬로그램에 달하는 아이를 깍지껴 안고 걸어왔다. 나는 이 때 아이가 훈련으로는 케틀벨이나 클럽벨 같다고 여겼고,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늘상 내가 지고 가야할 카르마Karma 와 같은 혈연이라고도 느꼈다. 좌우지간 어머니 아버지 말씀처럼, 내가 기르지 않으면 안되는, 내가 길러야만 아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마땅히 그러하다고 하여,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틀 동안 아이와 씨름을 하였을때, 내 어깨와 무릎은 마치 오랫동안 훈련하거나 지끈지끈 쑤시고 아파서 또 병원을 가야 하는가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도 별일은 없어서, 나는 모처럼 도복을 입고, 맨발이 쓸리지도 않은 부드러운 도장 바닥에서 마음껏 중심을 잡아가며 천천히 훈련했다. 그래도 그 동안 훈련한 보람이 있어서 무엇을 잊어버리거나 한 것은 없었다. 단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으로 있을 뿐이다.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는 점이 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