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지구 온난화의 긍정적인 요인(?!)
그러므로, 날씨 좋은 한낮에 느닷없이 네 살을 앞둔 딸과 그야말로 건널목 앞에서 그레꼬로망 레슬링을 방불케하는 접전이 벌어진 까닭은, 엄밀하게 따지면 역시 부모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때는 하루 잠시 쉬었던 어제, 아내가 다시 닷새를 연달아 일해야 하는 내가 안쓰러워 잠시 쉬라고 하기에 날도 푹하여 옥상도장에서 잠시 몸이라도 풀까 싶어 도복을 입자마자, 딸아이는 저도 따라나서겠다며 서랍에서 옷을 꺼내며, 나도나도~(최근에 배움) 를 외치며 난리였다. 그래서 도로 일상복을 입고 아내와 같이 놀이터에 나가서 아이를 잘 놀게 하고, 또 공원길까지 나선 것까지는 아주 좋았다. 이제 제법 의젓해진 딸은, 어깨를 꼭 붙잡고, 눈높이를 맞춘 채 침착하게 말하면 제법 알아듣는 시늉을 해서, 오늘은 비교적 수월하겠다 싶었고, 더군다나 차가 좀 덜 다니는 틈을 타서 양손에 하나씩 제 부모의 손을 꼭 잡고 건널목을 걷기도 잘해서, 좋다 싶은 그 날에, 아내는 맞춰놓은 세탁기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잠시 슬쩍 뒤로 빠져서 집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 낌새를 눈치챈 딸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엄마? 엄마아아? 두 번 애달프게 부르고는, 없네에? 엄마 없네에? (뭔 사탄, 아니, 사탕의 인형이냐 뭐냐..사탕 좋아하긴 하지...) 하면서 제 어미와 함께 걸었던 길을 고대로 되짚어 슬슬 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도 제법 귀여워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금 공원으로 진입하는 내리막길을 되짚어 오르니 오르막길이 되는 그 곳을 통과하자, 다시금 건넜던 건널목이 보였는데, 아뿔싸, 그동안 항상 아비어미의 품에만 안겨서 건넜던 그 길을 다시 건너고 싶었는지, 느닷없이 확 뛰어들려 해서 대경실색, 재빨리 낚아챘지만, 그때부터 부녀 간의 몸싸움은 시작되었다. 아이는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가 지척에 드러누워서 어떻게든 건널목을 건너보겠다고 떼를 쓰니, 결국엔 못 이겨서 신호등 바뀔때 한번 건너주긴 했으나, 그랬더니 다시금 기가 살아나서 숫제 건널목 중앙에서 신호등 바뀌는 시간도 아랑곳하고 장난감 자동차를 밀고, 춤을 추고 놀겠다고 나서니 더이상은 봐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금 딸아이를 들어올려서 건널목 건너편에 놓았고, 아이와 나는 서로를 막고 막느라고 그야말로 관절기의 향연을 방불케하는 사투를 벌였는데(자식들과 훈련을 하고픈 내 꿈이 이런 식으로 벌써 이뤄지나;;), 오죽하면 지나가던 어르신께서 햐, 거 조그마한 게 성깔 한번 대애단허네, 하고 혀를 차며 가실 정도였다.
좌우간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아이를 싸안고 겨우 집까지 들어서니, 아내는 빨래를 마침 다 널어놓은 뒤에, 동네 어귀부터 떠나가라 악다구니를 쓰는 아이 낌새를 벌써 알고, 냉면대장 국수귀신 아이가 좋아하는 물냉면을 슬쩍 삶아두고 있었다. 아이는 한동안 쪽문께에서 넋을 놓고 울다가, 제풀에 지쳐 울음이 겨우 그치긴 했으나, 내게 단단히 삐쳤는지 작지만 옹골차게 여문 몸을 내게서 휙 돌리곤, 내게 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소오오은아~ 불러도 앙! 하면서 내 손을 톡 쳐내고, 톡 쳐내고를 반복하다, 아내가 물냉면을 삶아서 소은아 꾹수 먹재이~ 하자 그때서야 꾸욱수? 면? 하면서 벌떡 달려들어 짧게 자른 면을 훌훌 입에 끌어넣었다. 하기사 제 아비와 근 삼십여분을 밀고 당기고 울어젖혔으니 얼마나 저도 배고프고 기진할 터인가. 금방 먹고 났더니 아이는 낮잠잘 시간도 되었겠다, 정말 기진했는지 그제서야 풀썩 쓰러져 바로 잠이 들었다. 나는 이미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아이와 씨름하느라 어깨가 뻐끈했으나, 겨우 여유를 좀 얻어서 모처럼 옥상도장에서 느긋하게 훈련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반복한 케틀벨과 클럽벨의 단련 효과가 좀 보이는지, 기술 연습을 많이 하진 못하고, 이렇게 여유가 있을때 한꺼번에 몰아서 하지만, 확실히 발차기나 찌르기 등의 중심이 좀 더 잘 잡힌 듯한 느낌이었다. 날씨가 하릴없이 좋아, 맞은편 옥상의 어르신께서는, 늘 그렇듯 막걸리 한 병에 담배를 태우시며, 내 태권도를 보시다가 취기가 올랐는지 웬일로 말을 거셨다. 평소에는 본인이 직접 키운 상추나 방울토마토 맛 좀 보라며 옥상 건너로 건네주시는 일 이외엔 크게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다. 그거... 십진인가? WT를 안해본 나도 들어는 본 고단자 품새였다. 연무선이 십자 모양이라 아마 ITF의 천지 틀을 보시고 WT의 고단자 품새와 오해하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복 뒤의 태권도 글자를 보여드리며, 전 WT 안해서 몰라요, ITF 는 틀이라고 하구요, 혹시 북한태권도 하는 사람들 시범할때 이 도복 못 보셨어요? 할때 나는 어르신의 눈빛이 분명히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아아, 그래, 하며 서둘러 내려가셨는데, 조만간 국정원에서 전화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