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마땅히 불편함을 감수하며!

by Aner병문

그러므로 훗날 위대한 훗설 아카이브를 남겨 메를로 뽕띠, 발터 베냐민 같은 석학들에게 생각의 물꼬를 틔워준 에드문트 훗설은, 강신주 선생이 '서양 철학의 저수지' 라고도 평한 임마누엘 칸트의 '물 자체' 개념을 비판한다. 물 자체란 결국 사물 자체란 말인데, 칸트는 인간의 이성으로 물 자체가 실제 있다는 사실은 추론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오감으로는 완전히 물 자체를 알 수 없고 그저 겉껍질만 흐릿하게 알 수 있다고 여겼다. 현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는 훗설이 생각하기에 그러한 물 자체는 보증될 수 없는 것이었고, 설사 있다 한들 인간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코로 향을 맡을 수도 없는 존재가 있어봐야 인간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마음이 향하여 와닿고 느껴지는, 즉 지각되는 것만을 철학의 범주 안에 끼워넣기로 야심차게 선언한다. 다만 그의 수제자였던 하이데거가 나치의 부역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요, 유태인 스승을 비참하게 죽게 한 것도 모자라, 그는 스승의 학설을 맹렬히 공박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평소에 과연 일상의 모든 영역에 전부 마음을 주고 신경쓰던가? 오히려 인간은 평소에는 별 생각없이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씻고 먹고 출근하고 퇴근한다. 우리가 무엇이 있다고 인지할때는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을 느낄 때이다. 약간 비겁하게도, 인간은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고, 이게 여기 있었네.' 라며 머쓱해한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인간의 지각이란 그 정도 수준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모든 존재들을 강렬하게 밝혀줄 태양 같은 존재자를 찾아 헤매었는데, 그 존재자가 누군지는 차마 밝히지 않겠다. 누구나 대부분 알겠지만, 하이데거가 그토록 숭배했던 역사의 존재자는 한때 평범한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으며, 과할 정도의 애국자였으나 훗날 정치에 입문한 후 어마어마한 광기와 함께 독일 국민들을 제2차 세계대전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게 된다.



다만 좁은 방안에서 훈련을 하면서 느끼는데, '불편함' 이란 확실히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늘 익숙한 도장이나 옥상, 혹은 넓은 장소에서 틀 연습을 할때, 나는 그저 틀의 연무선과 동작을 그대로 몸에 익은듯이 생각없이 반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좁은 방안에서 할 때, 나는 한 동작 한 동작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평소처럼 넓은 장소에서 하듯이 전후좌우로 길고 넓게 움직이거나, 충분히 뛰어오를 수 없으므로, 제자리에서 동선을 고치면서, 원래의 연무선은 이와 달랐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방법은 생각 외로 내게 자극을 주어서, 나는 새삼 내가 몸에 배었다고 알고 있던 계백 틀이나 화랑 틀, 의암 틀 등을 막상 낯선 곳에서 생각하면서 연무할때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가장 중요한 하체의 움직임이 부족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즉 좁은 방안에서 한 동작 한 동작을 천천히 연무할때, 나는 내 동작의 허술한 점을 명백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좀 더 좋았다. 의처증으로 여러번 이혼하기까지 한 하이데거는 싫지만, 그의 이론은 때로 몸에 와닿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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