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 왜 내가 반려와 살기로 결심했는지 되새기는 날.
그러므로 그 유명한 중경삼림에서의 대사를 차용한 일이라는 사실이 이미 유명하나, '동북아 루져들의 별' '아시아의 짐 캐리' 등의 별칭으로 본인만의 독특한 영화철학을 구가해온 주성치가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하며, 나를 비롯하여 그를 존경하는 팬들 역시 가장 '주성치다운 영화' 로도 꼽는 서유쌍기의 2편-선리기연에서 주인공 지존보는 다시금 자신의 본모습인 제천대성 손오공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리에 죄는 테를 쓰며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때 나는 미처 몰랐고, 소중히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잃었을때 비로소 크게 후회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살며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입니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반드시 사랑한다 말할 것입니다. 행여나 사랑에 기한을 정하여야만 한다면, 만 년으로 할 것입니다.' 얄궂게도 투전승불 손오공이 다시금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세상사 모든 감정을 버리고 초연해야 하며, 감정을 느낄 때마다 머리에 쓴 테는 빈틈없이 죄여와 그를 깨우치도록 한다. 그 스스로도 시대를 넘나들은 쟝르를 넘나들며 관객을 울렸다 웃기는, 명감독이자 명배우 주성치지만,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만큼은 늘상 울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나는 제천대성 손오공도 아니고, 실제로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서유기의 본이 되도록 인도까지 혈혈단신으루 다녀와 많은 불경을 번역해오신 현장법사일수도 없으므로, 너무 늦지 않게 아내를 만나 지금까지 무사히 잘 지내오고 있다. 앞으로도 당연히 잘 지내야 할 터이다. 다만 내 각오와 달리 아내에게는 올해 연말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일은 역시 처가 어르신들이 연달아 편찮으신 일일 터이다. 집안 일을 굳이 이 일기에 다 써서 뭐하랴만, 처음에는 아버님이 편찮으셨고, 아버님의 수술 후 간병을 하시던 어머님께서 며칠 만에 몹시 피곤해하시고, 자주 무언가를 잊어버리시며, 무엇보다 발음이 새서 걱정된다는 처남 형님의 전화로 어머님 역시 가볍지 아니한 병증이 발견되셨다. 갑작스레 지역 도시 내에서 아버님을 간병키 위해 냅다 밤중에 차를 달려야 했던 처남 형님도 처남 형님이셨겠지만, 아버님 간병은 커녕 본인 몸부터 돌보기시기 위해 그 날 바로 입원하신 어머님도 어머님이려니와, 급하게 아이를 시댁 어른들께 맡기고, 나와 함께 전화를 돌려가며 밤늦게라도 PCR검사를 하는 병원을 찾아 겨우 검사를 맡고, 짐을 챙겨 바로 어머님을 간병코자 떠난 아내도 아내였다. 그 일이 추석 연휴 시작 무렵이었는데, 아버님의 수술이 마무리되고 회복세에 접얻는 지금까지도, 어머님의 병세는 그다지 큰 차도가 없어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타의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혼자 지내기도 했고, 혹시 딸의 어린이집 등원과 집에서의 돌봄 때문에 본가 어른들의 도움을 받느라고 눈치를 보아가며 부대끼기도 했다. 2주만에 근 4kg가 빠졌으나 몸과 마음을 다같이 고생할 아내나 처가 어른들께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물론 아내가 남이 아니고, 함께할 가족이기에, 그리고 성혼선언문에 있는 그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하기로 결정했기에 늘상 당연히 같이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예기치 못하게 우울하고 힘들어할때마다 내가 온전히 절반의 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본가 어른들이 결국 아이의 고집에 못 이겨, 더이상은 아이를 봐주기 어렵다며, 지방 도시와 수도권을 전전하며 간병에 열을 쏟는 아내가 이제 그만 돌아오기를 말씀하시어, 아내는 근 한 달 간의 간병을 끝마치고 서둘러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 제 어미의 옷만 가지고 뒹굴며 향을 맡다 마침내 돌아온 어미를 보고 답싹 안기던 딸도 딸이려니와, 나도 괜시리 처연하고 외로워 눈물만 났었다. 역시 부부란 멀리 떨어져서는 안되는 사이였으나, 가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아내의 마음을 절반 덜어다 대신 져줄 수는 없었다. 대신 아내는 처가 어른들 걱정을 하느라 자주 냄비를 태웠고, 달걀은 수도 없이 깨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세상의 번잡스러운 일을 대신 치워주는 일이었다. 나는 회사의 시간표를 사정해가며 바꿨고, 승단심사 이외의 모든 도장 행사를 중단했으며, 약속은 한없이 미루고 미루거나 취소하였다. 안타깝게도 주변에도 아픈 사람 소식만 주로 들렸다. 누군가는 반신불수가 되었고, 누군가는 한 눈이 멀었다. 갑작스레 헤어져 차라리 손발이 잘리는게 낫겠다 싶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나는 새삼 몸이고 마음이고 아픈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 기간에 내내 아내와 있었다. 결혼기념일 기간이래봐야 이틀은 어머님 병원 일을 도와드려야 하고, 하루는 아이의 정기 검진을 도와주어야 해서 그 모든 일을 다 쳐내고 나면 같이 있을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해서 같은 바위에 모여 앉은 조개마냥 붙어 있었다. 창신동에 둥지를 튼 털보 형님네 가서 맛있는 것을 실컷 먹었고, 봉제박물관 같아서 아내가 좋아할만한 이쁜 것들도 보있고, 어머님 병원을 들렀다 기분을 조금이라도 산뜻하게 해주려고 이름이 그럴듯한 서정적인 까페에 앉아 그냥 커피를 마시면서 말없이 시간을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아내는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약속이 있을때 나도 내 약속을 위해 시간을 내주었고, 커티 삭 한 병을 사마셔보라고 선선히 허락해주기도 했다. 서로가 필요할때 나를 내주거나 허락해줄 수 있어 부부인 모양이었다. 나는 때때로 술잔에서 아내 얼굴이 떠오르는 듯하여 가능한 적게 입술을 대고, 많이 삼키지 않았는데, 그래도 약속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에 너가 달걀볶음밥을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을때, 나는 그때 이미 오후 한시부터 그 시간까지 온갖 안주를 먹어가며, 먹다 남긴 35도짜리, 40도짜리, 50도짜리 고량주를 연이어 마신 뒤인데도 결국 제 버릇 못 주고 아내에게 전화하여 조금만 더 있다 가냐고 물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선방했다고, 아내도 너도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털보 형님은 아내를 위하여 한껏 솜씨를 부렸다. 아내의 세상은, 늘상 아이가 있을때 집에 묶어 있었고, 아이가 없다면 집에서 자기 바빴다. 나름대로 바쁘게 보낸 내 4년에 비해 아내의 삶은 질박하기 짝이 없다. 집에 돌아와 밀린 설거지를 할 때, 나는 늘 아이가 먹다 남긴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내의 식사 흔적을 보면서, 젊은 아비어미의 끼니란 바쁠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그렇듯 원래 그런 것이긴 하나 그래도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도 어데 가서 가끔 밥 잘하는 유진이나 콜라 부사범 과 같이 도장 일 끝나고 술이라도 한두 잔 마시고 들어오지만, 아내는 늘상 내가 없을때면 오로지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형님께 따로 전화를 걸어 아내의 식사를 잘 좀 부탁해두었다. 형님은 인사동 시절의 레씨피처럼 마법을 부리듯 샐러드를 만들었고, 숙성된 고등어로 시메사바를 만들어주셨고, 육회를 떠왔고, 콩을 듬뿍 넣은 칠리 까르네를 만들어주었다. 아내는 따뜻한 빵에 칠리 콩 까르네 양념을 얹고, 고수를 살짝 얹어 맛을 더한, 본격 택스-맥스 음식에 무척 즐거워했다. 술을 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하다못해 식탁에서라도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싶었다. 책을 읽지 않는 아내는 모처럼 아이가 없을때 쉬면서 마음껏 드라마를 보았고, 나는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했다. 올해의 결혼기념일도 이렇게 저물어 지나갔다. 다시 한 해를 또 열심히 살아봐야 한다. 그저 집안이 무탈한 것이 제일이다. 왜 수리남에서 하정우 배우가 열연한 강인구가 무작정 전화걸어 장가가고, 머나먼 타국에서 그렇게 고생하는지, 아비어미는 다 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결혼은 그래서 서로에게 미리 약속을 걸어두고 하는 일이다. 마치 결혼식 축가로 유명한 오르막길 노랫가사처럼, 어찌 행복한 일만 있으랴만, 그러므로 힘들때도 어데 가지 말라고 미리 못을 박아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