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 인류 최초의 도구
그러므로 그 유명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글을 쓴답시고 아직 사회초년생 햇병아리 티를 벗어나지 못한 비서 앤드리아가 픽 하고 비웃자 일류 패션 잡지의 편집장이자 '악마' 로 불리는 상사 미란다는 눈을 치켜뜬다. '뭐가 우습지?' 학교에서 오래 있다가 뒤늦게 사회 물을 먹은 나도 군대에서부터 그러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데, 역시 서양 학생이라 그런가 말대답 한번 똑 부러진다. '아니, 그렇잖아요. 내가 보기엔 이 색이나 저 색이나 다 똑같고, 다 똑같은 버클일 뿐인데.' 그 순간 악마 편집장은 뿔테 안경을 벗으며 차갑게 부하 직원을 비웃는다. '네 눈엔 그렇겠지. 그러나 그 색깔은 단순한 파란색이 아니라 셀룰리언 이라는 색이고, 그 색깔이 얼마나 역사가 깊은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넌 모를거야. 넌 스스로가 옷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진지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옷장에서 그 스웨터를 꺼냈겠지만, 넌 이미 너가 그토록 경멸하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오랫동안 고민한 색의 옷을 입고 있는거라고.'
그 때 나는 주짓수를 하다 다쳐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고, 책을 읽다 지치면 온갖 영화며 미국 드라마를 보던 중에 이 영화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써 기억이 흐릿하여 그 당시의 내가 첫번째 백수시절이었는지 두번째 백수시절이었는지, 더듬기도 어렵다. 그 당시에는 그토록 메말라 죽을 듯이 힘들어 당시에는 순해터졌던(!) 너를 매일 불러다 놀며 버티던 시절이었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하여튼 나는 그 때에 아직도 어설피 먹은 먹물의 맛이 덜 빠져서 내가 순수학문의 세계 이외의 다른 밥벌이를 하리라곤 생각지 않았을 터이다. 훗날 나는 공공기관의 소개로 농업NGO에 첫 취업을 하게 되었고, 관련 부서로 끝없이 돌다가 마침내 유기농 요식업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당시 요리라곤 집에서 그냥 해보는 밥과 찌개, 밑반찬 정도가 전부요, 음식 관련 만화며 책이야 수도 없이 봤지만, 요리 수행이나 접객 수행이라곤 해본적도 없고, 그저 영어로 일상회화 정도 할 줄 안다고 덜컥 홀 책임자로 이직하게 되었으니 회사원의 삶이 부평초와 다를게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내 나이가 이미 삼십대 중반, 초단 승단을 앞두고 부지런을 떨었을 때이며, 대체 저 술 좋아하고 커피 좋아하고 늘상 외국어로 떠들어대는 저 인간은 어데서 나타나서 쉬는 시간마다 책 아니면 팔굽혀펴기로 부산을 떠는가 하며 밥 잘하는 유진이가 나를 유심히도 노려봤던 때다. 그 때 나는 밥 잘하는 유진이 밑에서 정말 눈물콧물 쏙 빠지게 혼나가며 진짜 일본 요리 만화의 주인공마냥 열심히 접객에 대해 배웠다. 밥 잘하는 유진이는 운전은커녕 손도 유독 둔한 나를 위해 접시와 쟁반드는 법, 설거지 하는 법, 잔반 정리하는 법 등을 다시 가르쳤으며, 내가 비닐봉지 매듭도 야무지게 묶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자 돌멩이를 넣은 비닐봉지를 주며 매일 묶고 풀기를 시키기도 했다. 타고나기를 둔한지라 그토록 엄격하셨던 부모님, 늘상 두들겨 맞았던 군대에 이어 훗날 아내까지도 정말 안되겠다며 포기했던 내 손놀림이 달라졌을리야 없지만, 최소한 요리가 얼마나 중노동인지, 또 얼마나 그를 무릅쓰고 할만한 가치와 영성이 있는 일인지를 꺠달았고, 주방의 눈치를 봐가며 홀이 얼마나 보조를 잘 맞춰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밥 잘하는 유진이와 손발이 좀 맞게 된 뒤에야 비로소 혼이 좀 덜났고, 그제서야 밥 잘하는 유진이도 우리 도장에 입문하여 도장 유진이가 되었다. 밥 잘하는 유진이가 나보다 입문은 늦었어도 이번에 함께 3단 승단을 준비하므로, 생각해보니 그게 벌써 4~5년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마흔을 앞둔 나는, 이십년 전의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운전도 못하는 주제에 최신 첨단 시스템의 설명서를 배우고 익혀 설명하고 교육하는 일을 하고, 또한 전적으로 사범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지만 취미로 하던 태권도가 결실을 맺어 단을 따고 부족하나마 도장의 지도 부사범 이름이라도 걸어두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십대때부터 정말 좋아하지도 않고, 밥벌이를 할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분야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딸은 생긴 것만 나를 닮고, 속은 제 어미인지 무엇이든 떼고 붙이고 찢고 구기고 두드리고 흔드는 일을 좋아하고, 자동차와 기계를 좋아하고, 높은데도 쑥쑥 올라가는 등 신체기능도 훌륭하고 호기심도 많다. 어머니 말로는 나는 어렸을때부터 몸이 둔했고, 인형을 그렇게 무서워했으며(눕히면 눈 감는 여자인형은 지금도 싫다.) 책만 몇십 권 던져주면 있는듯없는듯 그렇게 조용하게 있었다고 했다. 우리 딸은 늘 책 아니면 운동하는 내 본을 뵈느라 책 보는 흉내는 내지만 금방 싫증을 내고 낙서를 하거나 찢어버린다.(^^;;)
그러므로 늘 잔재미 없이 책 아니면 태권도를 하고, 놀아봐야 술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정도가 전부인 남편과 사느라 타지에서 늘 외롭고 힘들 아내를 위해 결혼기념일만큼은 내가 일정을 좀 짰었더랬다. 밥 잘하는 유진이와 함께 일하며 내게 역시 요식업계의 기초를 알려준 털보 형님이 창신동에 자리를 잡으셨기에 주변 갈만한 곳을 찾아보니, 창신동은 서울 구로동과 더불어 봉제공장의 성지라 불렸던 곳이며, 지역에 오래 계셨던 분들의 요청으로 향토사도 보전하고 재개발 사업을 통해 골목골목 개발도 많이 되었다고 했다. 아내는 창신동 근처에 내리자마자 부산 골목 느낌이 난다며 무척 좋아했다. 창신동에서 잔뼈가 굵은 터줏대감들이 직접 쓰시던 물건들과 기억을 모아 건립한 '이음피움 봉제관' 은 아담하고 호젓하게 잘 지었으며, 재봉과 봉제가 얼마나 급속하게 발전한 산업인지, 또 비록 역사는 짧으나 얼마나 세계의 경제를 잘 지탱하며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무척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우리는 적당한 시간에 털보 형님네로 찾아가서 술과 사이다를 즐기면서 차례로 나오는 음식들을 맛보았는데, 역시 손으로 만드는 음식들이란 정말이지 이런 음식을 먹는다고, 이게 바로 음식을 먹는 일이라고 혀를 통해 마음에 한 올 한 올 새겨주는 일이었다. 가라테- 공수가 빈 손으로 펼치는 기술의 집합이듯이 나는 반 팔십을 앞두고서야 겨우 손의 세계에 대해 조금씩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손은 여전히 단련을 통한 굳은 살을 제외하면 쓸데없이 곱다. 그래서 가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