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 부모와 자식이 다 같이 함께 하는.
아바타를 아, 봤다! 13년만에 돌아온 아바타의 영상미는 여전히 웅장했고, 입체 시각효과로도 감출 수 없이 중년으로 들어선 배우들의 원숙미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잘생기기야 타이타닉, 바스켓볼 다이어리, 토탈 이클립스 등에서 퇴폐적으로만치 가녀린 선을 자랑했던 그때 그 디카프리오를 따라가겠냐만, 나는 지금의 턱수염 부숭부숭하고 두툼한 얼굴선을 자랑하는 디카프리오가 훨씬 더 멋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간 아바타는 변화와 적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숲에서 바다로 넘어오게 된 나비족의 사회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고, 순수 나비족이 아닌 더 많은 아바타, 그리고 숲의 나비족과 바다의 나비족이 서로에게 적응하는 이야기기도 하며, 그저 걷고 뛰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해병대 출신 인간 총각이 나비족의 영웅이자 아버지로서 변화해나가는 이야기기도 하다. 아내나 나나 예전과 달리 부모가 되다보니 이젠 무턱대고 사람 죽어나가는 서사나 자녀와 갈등을 겪는 장면 등을 늘상 마음 편하게 보긴 어려웠는데, 이 영화 또한 우리 부부가 또 한번 부모구나 를 여실히 느껴지는, 미국식 가족 영화기도 하다. 미국식이라는 표현이 우습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저 크고 복잡한 미국이나 이 나라나 부모 마음은 다 한 가지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괴롭히고, 아프게 하며 즐거워할 수 있을까.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만 3일을 한숨도 안 자고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를 낳기 전 '대기실' 은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했던 때를 감안해도 살풍경하도록 하얀 병실에 침대 하나, 보조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낮이면 무통분만 주사를 맞고 진통을 하다가, 밤이면 다시 진통제 없이 안정을 되찾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아이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하염없는 기다림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견뎠다. 그 때 나는 어미의 몸 속에서 영글어 나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끝없는 우주가 만들어지고 지구가 맺어지며 인류가 살아나가는 역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유명한 유시민 작가가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꼽아 유명하기도 한 코스모스를 선택한 일은 정답이었고, 이후 나는 아이의 백 일을 기다리면서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읽었다. 여러 번 한 이야기지만, 나는 네루처럼 위대하지도, 훌륭하지도, 박식하지도 않으며, 애정은 그에 못지 않을 지언정 나의 좁고 얕은 지식으로는, 감히 머릿속에 든 내용만 가지고 사랑하는 딸에게 세계의 전 역사를 훑어줄 수 있을만한 능력도 없다. 다만 나는 마땅히 아비이자 사내로서 무엇이든 본을 보일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좌우지간 한때나마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내가 아는 모든 것만큼은 다 전수해주어, 내가 꺾이고 포기한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아이가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 그대로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보여주는 일이며, 내 스스로가 다시 어른으로서 적응하고 변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무표정하게 모빌을 바라보는 아이가, 몸을 뒤집고, 기고, 버팅겨 엎드리고, 마침내 무엇을 붙잡고 일어나고, 아무 의지없이 아장아장 걷고 뛰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아내는 지금도 '아이고, 마, 학교 가기 전에 지 이름만 좀 쓸 줄 알몬 되지, 니는 할머이하고 아부지하고 벌써 저래 교육열이 불타오르니까네 고생문이 훤하디~' 하며 웃고 말지만, 나와 어머니는 이미 의기충천하여 '아따, 그래도 학교 가기 전에 한글하고 숫자는 다 떼서 가야제, 가서 교과서도 읽고 말도 해야할 것인디, 우리가 멋을 구구단을 외라 허는가, 주판을 허라 하는가, 그렇다고 영어한자를 읽고 쓰라 허는가. 역발산 기개세 항우장사도 아닌디, 제 이름 석자만 띠서 보내믄 어쩔맹이여.' 드물게 모자가 합심하여 벌써 내년부터는, 내가 먼저 아이의 고사리손을 잡고 등 뒤에서 '소은아, 봐봐잉, 이게 글씨여, 글씨. ㄱ, ㄴ, ㄷ' 써줄 생각에 몸이 달았다. 흰 띠를 매고 도장에 입문하면 어느 무공, 어느 유파고 제대로 서고 걷고 숨쉬고 인사하는 법부터 가르치듯,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나의 사회화부터 다시 일어나는 일이며, 그래서 나는 마치 새로운 삶을 사는 양 아이가 매순간 머리가 굵고 커지며 마침내 말이 터지는 그 순간까지 가슴 터지도록 지켜보았다.
아이는 무엇보다 정말이지 튼튼하고 건강해서 감사했다. 양가 어른들과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고, 무엇이든 잘 먹어서 항상 튼튼하고 건강했으며, 제 아비와 달라 어릴때부터 잘 걷고 뛰고 치고 차고 던지고, 게다가 망치질이나 장난감 운전, 도구를 쓰는 일이도 무척이나 호기심을 보였다. 아이의 등골은 항상 곧았고, 허벅지는 굵고 짱짱해서 아이는 이미 두 돌이 되기 전에 내가 권투 연습을 할 때 쓰는 1kg 아령을 어렵지 않게 들었고(진짜다.), 예방주사를 맞을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손목을 관절기로 뿌리치고(진짜다!), 청진기를 대려는 선생님의 복부와 턱을 앞차부수기로 두 번씩 걷어차서 (진짜다!!) '자주 오는 힘센 아기' 로 공포의 명성을 떨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어머니가 쓰시는 돌절구에 요강 대신 소변을 보고 이것 좀 보라며 번쩍 들어 할머니에게 건네주기까지 하여(진짜다!!!) 마치 어느 장군의 유년시절과도 같은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에 비해 말이 트는 것은 다소 늦어, '엄마' '아빠' '할미' '할비' 까지는 제법 빨랐으나, '고모' 는 좀처럼 발음하지 못했고, 옹알이가 길긴 했으나 단어는 둘째치고 문장을 정확히 만들지 못하여 여러 어른들, 특히 할머니- 즉, 우리 어머니를 무척 걱정하게 만들었다. 장자는 말이란, 강을 건너는 배와도 같아서, 진심이 전해지면 능히 버려야할, 다 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거추장스럽게 여겼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말은 게임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라, 지시적 기능 이외에도 사회의 합의에 따라 정확하게 쓰이지 않으면 혼란과 고독을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건강한 것은 틀림이 없으나, 아무리 어른의 입 모양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마스크 세대' 임을 감안해도 말이 너무 늦다며, 결국엔 소은이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다니셨고, 마침내 커다란 병원에서 젊은 의사 선생님이 애교가 섞였으나 숫제 반말투로 '할머님! 그런 걱정을 하지를 마셔! 그런 걱정, 아이한텐 독이야 독!' 소은이에게 정상적인 판정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걱정을 접으셨다. 아이는 분명 다소 늦기는 했으나, 말이 터서 지금은 꽤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비슷하게 대소변도 잘 가려서, 아직 기저귀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으나, 저 스스로 소변은 요강에 올라앉은지 오래 되었고, 대변 역시 좌변기에 올라 앉기를 즐겨한다. 어느 정도 대화가 주고 받아지는 것이 가능하니,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도 여유있게 아이를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의 의견을 가능한 존중해주도록 노력한다.
그 동안 벌써 근 3~4년간 아이를 함께 키우며 지켜보니, 아내는 아이가 하자고 한다면, 큰 위험이 없다는 전제 하에 가급적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나와 다르다. 이를테면 나는 아이가 크면 어련히 안할까 싶어서 뜨거운 물 쓰는 일부터, 칼과 가위를 쓰거나, 드라이버를 만진다거나 하는 일을 무조건 안된다고 엄히 통제만 했다. 언젠가 한 이야기지만, 술 한잔 기분 좋게 마시고, 아직 말이 트기 전의, 그러나 명백히 잘 걷고 뛰는 아이를 씻기려고 함께 욕실에 들어갔을때, 호기심 많은 아이는 뜨거운 물을 틀고 싶어서 빨간 수도꼭지에 손을 대었고, 나는 살짝 기분 좋게 취해서 손칼로 '이 놈, 안돼!' 하면서 아이의 손목을 살짝 내리쳤는데, 그 때 아내의 말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압권이었다. '참말로, 뭐든지 안돼 안돼 하기만 카모, 울 소은이는 대체 언제 크니껴? 조금씩 조금씩 하게끔 해줘야 애도 시도도 하고 크지요, 무조건 안된다 카기만 하모, 때 되어서 은제 저 스스로 무엇을 하겠니껴? 안 그래요?' 듣자하니 틀린 말 하나 없는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가 저 혼자 나이가 되어서 알아서 트고 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내가 나 출근한 사이 아이 혼자 보기도 힘들텐데, 항상 아이가 가능한 할 수 있는 것을 신경써주면서 조금씩 열어줬기 때문에 컸다는 사실을, 그 때 정말 훤하게 알게 되어 부끄러워 술이 다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려, 여보 자네 말이 맞네, 틀림이 없시야.' 하고 두 말 않고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과히 위험치만 않으면 나도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등 뒤에서 잘 지켜보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는 최근에 마침내 기양 후라이(계란 프라이), 와 고히고히(커피 드립 내리는 일) 를 주방에서 했으며, 제 어미가 장난감을 고쳐주느라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나사를 풀면, 저도 기어이 막대 하나를 가져와서 멀쩡한 장난감 하나를 괜히 긁고 쑤셔대는 흉내를 내기도 하거니와, 그 외에도 설거지를 하거나 칼로 무엇을 썰거나 할때 항시 휴지통을 가지고 와서 늠름하게 그 위에 올라선 뒤 아내나 내가 하는 일을 잘 지켜본다. 최근 아이가 '태권!' 하고 구령을 넣어주면 '야!' 하면서 제법 높은데찌르기를 연달아 잘하며 뿌듯해하기에 나는 아이가 나보다 더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아비보다 더 나은 무공을 갖추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물론 너는 그때마다 '소은이 불쌍해~ 나중에 커서 우리 집으로 오면 무조건 PC방 데려갈거야~' 하며 놀리곤 한다.
아이의 성장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다. 아내나 나나 솔직히 자식을 좀 더 갖고 싶거니와, 내 딸 소은이는 넉넉하고 배포 있는 여인으로 자라서 아는만큼 행하고, 배운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부모는 마땅히 자식 앞에서 본을 보이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인격과 품격과 마음과 지식을 주어야 한다. 젊을 적 나는 경박하고 천박하고 쓸데없이 거칠게 허세 부리며 살았지만, 내 자녀들은 진솔하고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아비가 마땅히 성장해야할때를 미처 놓치고 이제서야 비로소 자녀에게 몇 자 적어본다. 아직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이를 가만히 쭉 떠올리니 안주없이도 몇 잔 마셔야할 듯한 기분이지만, 한 편으로는 이미 몇 잔 마신 듯 충실한 기분이기도 하다. 한 남자의 삶이 이 정도면 능히 행복치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