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순자 -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할 유학의 입문

by Aner병문

채인후, 천병돈 옮김, 순자의 철학, 예문서원, 2000년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요, 맹자는 성선설을 부르짖은 그 후계자이며,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사도나 외도로 빠지게 되었다- 라는 내용은 적어도 6차 교육과정에서의 윤리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외우다시피 기억을 하는 내용일 터이다. 나 역시도 순자의 성악이 단순한 Evil이 아니라 규제되거나 측정되지 않는 본능 그 자체라는 사실은 학부 생활 하면서야 겨우 알았다. 어찌 보면 순자의 성악은 차라리 프로이트의 이드에 더 가까운 듯 하기도 하다.


공부자께서는 주나라의 예를 받들어 학문을 드높이는 인간다운 삶을 숭상했고, 맹자는 그에 구체적인 심신수양론을 덧붙여 자연스럽게 타고난 도덕적 감정을 잘 다듬으면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순자가 명성을 떨치던 무렵은 아직도 춘추전국- 공부자께서 쓰신 최초의 역사서 춘추가 나오고도 아직도 전국7웅이 이름뿐인 주나라를 왕으로 모시며 패자를 정하느라 피로써 피를 씻던 때다. 순자로부터 갈라져나온 법가의 양대 주축인 이사와 한비자가 진시황의 눈에 들고서도 통일 제국을 이루기까지 시간이 걸렸으니, 순자가 보기에 공부자나 맹자는 도대체가 지나친 이상주의자처럼 보였을 법하다. 그래서 순자는 오히려 화성기위(化性起僞) 즉- 인위적인 노력을 통하여 인간의 지나친 본성을 규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존숭해야할 하나의 도덕적 주체가 아니라 그저 법칙일 뿐이었고, 인간은 탐욕스럽고 잔인한 짐승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유학의 큰 법칙인 내성외왕((化性起僞) 중, 그는 외왕- 즉, 왕의 품격을 갖추는 사회적 제도와 규율, 예의에 골몰한다. 특히 그는 개인의 관계에서는 예의에 집중했는데, 맹자가 심성을 올바로 수양하여 자연스럽게 예절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데에 비해, 순자는 사람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끊임없는 예의의 형식을 갈고 닦아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도모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곧 순자 특유의 교육론으로까지 와닿게 된다.



그러므로 순자는 교육과 예의, 사회적 제도 등을 올바로 집행해야할 사회 엘리뜨 계층- 선비들이 허무맹랑하게 행동하는 짓을 몹시 경계했는데, 대유, 소유, 속유 등으로 이들을 나누었으며, 이조차도 속하지 못하는 소인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순자는 학문을 할 때에 통류(統類)에 능해야 한다고 했으며 이 통류란, 어찌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와도 비슷해보이나, 그보다는 말그대로 누구누구는 어디 통이다~ 하듯이, 무엇인가에 달통하고 흐름을 꿰뚫는 방식을 가리킨다. 순자는 단순히 권력을 악용하거나 출세하거나(공자님!!), 세상을 휘어잡기 위해 공부하기를 권하지 않았고, 통류에 따라 올바로 공부하여 위로는 왕을 잘 모시고, 아래로는 백성을 잘 다스리는 선비들을 양성하기를 원했다. 순자는 너무 멀어서 잘 와닿기는커녕, 누군지도 모를 선왕들보다 차라리 훨씬 더 가까운 후왕들을 본받으라고 잘라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순자는 사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진짜로 현대인에게 오히려 더욱 필요한 유학의 입문자다. 누가 처음부터 주나라의 예를 받들어 모실 수 있겠는가? 누가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올바로 갈고 닦으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어린아이를 가르치듯이 어른께는 마땅히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구나, 아이들은 아프게 하지 말고 곱게 잘 대해줘야 하는 것이구나, 행동의 형식과 규칙을 반복하여 학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그예 길들어지게 된다. 누가 처음부터 도장에서 반대돌려차기를 차고, 손끝뚫기로 상대의 미간을 노릴 수 있겠는가? 누가 처음부터 오묘한 태권도 틀의 움직임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고 지루하지 않게 몇백번 몇천번씩을 스스로 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잘 모르고 이해가 가지 않아도 사범님과 사형 선배들이 지도하고 부탁하는대로 반복하다보면 참맛을 알게 되고, 몸과 마음이 트여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루하고 어려웠던 고급 기술들이 잘 되지 않아도 몇 년씩 시간을 들여 몸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유학의 참맛을 알 수 없다면, 순자처럼 차라리 외부의 방식을 먼저 접근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야, 순자가 사도나 외도가 아니라, 어쩌면 유학의 입문을 위한 친절한 안내자일 수도 있음을,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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