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김성동 자전소설 3연작 - 한 남자가 살아가는 법.

by Aner병문

김성동, 길, 푸른숲, 한국, 1991

김성동, 만다라, 푸른숲, 한국, 1994

김성동, 집, 푸른술, 한국, 1997



지금도 내 본가 지하실 자물쇠를 따면, 내 유년시절 대부분을 지탱해주었던 오천 권 이상의 장서들이 괴괴히 잠들어 있는 차가운 서재가 나오는데, 그 서재 중 또 일부는 한때 유명한 시인 밑에서 여류 문학가를 꿈꾸며 정진하셨던 어머니의 소장품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어쨌든 유명세를 떨치는 공지영 선생뿐 아니라, 양귀자 선생, 함민복 선생, 박노해 선생 등 유수의 작가들이 즐비했는데, 관촌수필 이문구 선생의 뒤를 잇는다는 충청 제일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김성동 선생도 사실 이미 어렸을때부터 알았다. 심히 조숙하여 이미 오래 전 바둑과 문학의 묘를 깨치고, 삶의 지루함에 비관하여 출가했다 도로 환속하여 가정을 꾸미기도 한, 실로 매 순간마다 관념과 실제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한 문인의 삶을, 어린 '중딩' 의 마음으로 어찌 알았으랴만은, 다만 지금도 수십 문장 정도는 능히 기억하는, 끈적하고 늘쩡한 충청도 사투리로 편히 풀어 쓰는, 그의 어린 시절이 꼭 나 같아서, 소년 시절을 다뤘던 '길' 두 권은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철학적이기도 하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화로도 유명세를 떨쳤던 만다라- 작가의 수행승 시절을 그렸던 부분은, 제아무리 '야했다' 치더라도, 심히 그 날선 비판이 어려워 제대로 읽지 못했고, 환속 이후 가정을 꾸려 사는 모습을, 이혼하여 홀어머니와 아들 하나 둔 글쟁이 남편과 초혼을 치른 여인의 눈으로 그려낸 '집' 은 사실 지금에서야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구나 느꼈지, 그 당시에는 당연히 이게 뭔 '여성중앙, 우먼센스' 에서 나올법한 글인가 싶어 제대로 읽지 않았다. 딸을 낳고 나서, 자식을 몇을 두든, 아는데까지는 당연히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소임이라고 생각하므로, 나는 아이를 위해서 미리 김성동 선생이 직접 주를 붙인 천자문을 새로 샀다가, 헌책방에서 마침내 이 3연작 전집을 다시 사서 읽게 된 것이다.



만다라를 제외히면, 길과 집은 각각 상 하로 이루어져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전집이다. 시간순으로 늘어놔보면, 어렸을때 사회주의에 물든 아버지를 예비금속(6.25 같은 전쟁을 대비하여, 불온사상범등이 반란에 연루되지 않게 미리 구속해두는 일)으로 잃고, 한학을 공부한 할아버지 밑에서 옛 글과 바둑을 배우며 자란 조숙한 소년 영복은, 그러나 도통 가난한데다가 현학적인 관념만 이야기할뿐, 생계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또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현대식 공부의 강박속에서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다. 거기에 덧붙여 나의 어린시절과 비슷한, 소심함까지 겹쳐 그는 한때 가출을 하기도 하고, 권투 체육관에 다녀보기도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뜻을 이뤄보지 못하고, 그저 너무 똑똑한 나머지 고민과 방황을 반복할 뿐이다. 이후 그는 '뜬구름과 같은 도' 를 잡고자 출가하지만, 제아무리 용맹정진해도 도를 얻지는 못했고, 오히려 끝없는 외로움과 고독에 맹렬히 사로잡혀 다시 환속하고 만다. 만다라에서는 마치 소성거사 원효스님처럼 술과 여자를 끝내 놓지 못하면서도 현대 불교의 타락에 맹렬히 비판을 가하는 파계승 지산과, 갓 출가하여 깨끗하게 도를 추가하려는 학승 법운을 버디무비처럼 서로 짝지워놓고 그들의 행적과 논쟁을 대조하는데, 이 모습은 아마 실제 출가해서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었던 작가 스스로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좌우간 그는 다시 환속하여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이지만, 키가 크고 듬직한 아가씨와 만나 살게 되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그 여성의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게 한다. 여자의 눈으로서 본 그는, 술을 좋아하고, 연약하고, 예민하고, 도통 생계에는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아는 것은 많고, 또한 도덕적으로 무너져 있지 않고, 어떻게든 글을 팔아서 돈을 벌어주려고 하는 남편이기도 하고, 어머니와 새 아내 사이에서의 현실 문제, 또한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연꽃 같은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갈등의 모습도 숨기지 않으며, 그래도 명색은 이름난 작가라서 어느 TV 대담에서는 사투리 하나 없이 그럴듯하게 여성의 인권이 높아야 한다 부르짖고 나서는, 정작 집에서는, 연탄불 하나 제대로 갈아주지 않고 끙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게으르고 속좁은 남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소심하면서 책을 많이 읽고 야망과 고민이 많았던 소년 영복이 나와 같아서 '길' 을 자주 읽었는데, 종교적 고민이 많았을때에야 비로소 만다라가 단순히 스님이 여자랑 자는 야한 소설이 아니라 한 천재가 속세를 버리고 출가했음에도 속세와 다르지 않은 종교적 제도에 실망하여 끝없이 '지랄' 하는 문제작임을 깨달았다. 가정을 꾸린 요즘에야 당연히 '집' 이 많이 와닿는다. 집 상 권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어머니가 마흔 넘은 아들의 외출길을 챙겨주면서, 소설로는 서너 쪽이 넘어가도록, 이에 고춧가루를 안 끼었는지, 토큰은 챙겼는지, 지갑은 안 잃어버렸는지, 차조심 꼭 해야 한다는 말 등을 반복하는 장면은, 오죽하면 술상에서 내가 아내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경상과 전라의 지역 차이를 떠나서, 소설 속 충청도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그런 모습을 반복하는 것을 보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제아무리 무던한 아내라도 어찌 절벽처럼 막막하고 닳아질때가 없으랴. 단지 나는 소설 속 김성동 선생처럼, 천재일수는 당연히 없지만, 밖에서 여권을 지키자고 말했으면, 안에 들어와서도 그 말에 책임은 져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집에 와서 반드시 아내의 말을 듣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말이 지나치게 앞서가는 연약한 남편이 되지 않도록, 나는 수시로 이 책을 읽으며 아내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도 했다.



김성동 선생은 얼마 전, 7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일생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긴 했다.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은 문예지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고,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바둑을 소재로 한 소설을쓰기도 했다. 그는 원칙적이고, 관념적인 사람이고, 현실에 약한 사람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 이론을 전개하는 발터 베나민 역시 제 손으로는 커피 한 잔 제대로 타마실 줄 몰랐고, 나치의 횡포가 두려운 나머지 절로 겁에 질려 먼저 자살해버렸다는 맥락과 비슷한가도 싶다. 황석영 선생은 스스로 노동판에 나가 돈을 벌었고, 누가 쥐어박으면 대들기라도 하려고, 권투와 태권도를 스스로 배웠다고 했다. 남자마다 자신이 꿈꾸는 삶은 다 다를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는 태생적으로 김성동 선생처럼, 나약하고 관념적으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나약하게만 살수는 없다. 사실 김성동 선생씩이나 되니까, 그런 약점도 다품고 사셨을 수 있다. 나 같은 이가 언제 한번 제대로 목회자의 길이라도 꿈꿔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산다. 나는 오늘도 그래서 회사 다녀오고, 도장 다녀오고, 남는 시간에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기도한다. 술은 아직 아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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