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결국 모두가 스스로 바꿀수밖에 없다.
아내와 아이가 없는 동안, 또한 이번 승단심사에서 정말이지 준비가 부족하여 죽을 쑤었기에, 집에서 혼자 술은 아니 마시리라 하였는데, 우리 부부 없는 새에 아버지께서 드시다 남기신 서울 막걸리 한 병이 유통기한 사흘 넘긴 채 오도카니 냉장고에 앉아 있었다. 이미 너가 불러다 해창막걸리 두 병을 안긴데다, 화학소주를 마셨으면 마셨지 사카린 넣은 막걸리는 내 취향이 아니다. 다만 막걸리가 외롭고 서러울까봐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들 데우며 그냥 비웠다.
TV에서는 여야가 싸우며, 야당 대표가 죄를 지었느냐 안 지었느냐, 영부인은 과연 주가조작을 하였느냐 로 토론과 시사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난방비는 하늘을 뚫을듯 오르고, 국민연금은 아래로 꺼져 언제 바닥날지 모른단다. 맹자도 순자도 백성을 먼저 먹인 다음 비로소 도덕을 논한다 했는데, 여야가 따지는 옳음이 과연 세상의 평균적 옳음인지 알수 없었고, 그들의 옳음이 관철될때 세상이 이보다 달라질지 나는 확신할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읽는 책 한 줄이나, 태권도의 기술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 아니었다.
지난 정부의 가장 큰 공이라면, 여야가 정말 다르지 않은 인간들임을 여실히 보였다는데 있다. 전전 법무부 장관은 나조차도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평범한 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아비로서의 나를 실소하게 했다. 지금 백분토론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멀끔한 정장의,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감옥에서 맨몸운동으로 몸매를 만들었던 옛 의원은, 어머니 제사에 자신은 호텔에서 밀회를 보내는 파렴치한이 아니라 했으나, 영수증이 나오고 나서는 입을 다물어버렸었다. 그 의혹은 청산하시고, 털어서 먼지 없는 이 없다, 현 야당 대표를 비호하는가, 그 비호는 야당 대표를 위함인가, 본인의 입장인가.
듣기도 힘든 말싸움으로 점철된 토론 같지도 않은 토론 따위 틀어봐야 득될게 없다. 여당 편을 들고자 하는게 아니라, 야당이 그토록 정의를 부르짖었었다는 사실이 더 얄밉다. 다만 먹고 사는 문제는 분명한데, 저들 중 몇이나 국민의 삶을 진정 걱정하는지 알 수 없다. 어머님께서 남기신 책
중에 다산 선생의 수필이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살아 생전 평생 공직에 계셨고, 다산 선생은 귀양길에서 추깃물이 흐르며 파리에 뜯기는, 아사한 백성의 시체를 보며 오래 슬퍼하셨다. 결국 세상이 바뀌려면, 세상을 이루는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삶을 바꿀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