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자유와 허무함 사이.

by Aner병문

아이가 가끔 없을 때, 우리 부부는 더듬이 잘린 개미마냥 가끔 당황한다. 내가 출근한 사이 종일 진을 빼며 아이를 보는 아내는 당연히 피곤하여 어머니가 내심 아이를 맡아주시는 것을 감사하겠지만, 내가 퇴근할때 아내는 미리 준비한 춤을 추면서 '서울에서 백로가 와서 아이를 물어갔다 아입니까~ 호호호~ 내는 자유데이~' 하면서도 막상 그 다음엔 뭘 해야하지, 하는 마음에 둘 다 멍하니 서로만 바라보기 일쑤다. 아이가 있으면 쉴 틈이 어디 있나, 어제만 해도 오자마자 손도 못 씻고, 아내가 실수로 우중에 빨래를 걷지 않고 그대로 아이와 잠드는 바람에, 서둘러 비 맞으며 빨래를 걷고, 다시 빨고, 건조대를 안으로 들여 닦은 다음에 반만 펼쳐 옷을 널고, 청소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다 마른 빨래를 접고, 그 와중에 또 어머니께 배달될 양파를 받아다 아래층에 부려놓고, 글자로 두드리면야 몇 구절일 뿐이지만, 늘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속세의 삶이란, 이렇게 던적스럽고 거추장스럽고 피로하다. 그러므로 돈 끼호테는 볼썽사나운 무장만 갖추고 기세좋게 편력 여행을 나섰다가 첫 여관 주인에게 오히려 된서리를 맞는다. 아이고, 나으리, 편력 소설에는 당연히 그런 얘기가 안 나오겠지만요,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랑, 갈아입을 옷, 약병, 비상 식량, 심부름할 종자... 이것저것 갖출 게 너무 많다니까요! 또한 일찍이 남명 조식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퇴계를 비판한다. 퇴계의 제자들은 아침에 일어나 제 이부자리를 정리할 줄도 모르고, 계단 한 번 손수 쓰는 일이 없으면서, 도를 구하고자 하고 나라의 큰일을 말하니 이 어찌 위선이 아니랴!




허무하긴 하여도 아이가 없는 자유의 시간이 좋긴 좋은지라, 아내와 나는 모처럼 초창기 주말부부 시절을 떠올리며 매일 밖으로 나갔다. 아내와 나는 부모님의 소개로 만나 석 달만에 결혼했고, 첫 한 해는 주말부부로 지냈으므로, 1주일에 하루이틀을 같이 있었는데, 아내가 올라오거나 내가 내려갈 때마다 애틋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라도 부모님께 성격과 말투와 식성을 물려받은 나에게, 아내는 경상도의 별미와 풍경들을 소개해주었다. 칠곡 도봉사에서 선녀가 내려오는 모습을 새긴 바위를 보기도 했고, 칠곡의 특산물인 미나리에 삼겹살을 곁들이기도 했으며, 경상도 주변을 주름잡는다는 교동냉면은 수도 없이 먹었다. 도시의 풍취를 느끼고 싶을 때는 구미로 건너가기도 했지만, 보통은 쇠락한 칠곡의 뒷그늘을 살펴보는 일을 좋아했다. 대기업에 물건을 대기 위해 커다란 공장과 운송 시설이 들어서면서, 칠곡 촌에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기숙사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학교와 학원이 뒤를 이었으며, 노동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각종 위락시설이 즐비하여 서울 변두리에만 살았던 내게도 별천지처럼 보였을 그 곳은, 낮이라서 가 아니라, 이제는 사람이 없어서 휑하였다. 이미 몇 개의 공장은 더 사람값이 싼 동남아로 이전이 결정되었고, 그나마 남은 공장도 정리하여 울산으로 옮긴다는 말에, 문을 닫은 고깃집이며 횟집, 술집, 안마방, 성인오락실 등은 이제 청소조차 되지 않아 먼지 끼고 비 맞은 채 후줄근하게 누워 있었다. 들쥐와 길고양이와 주인 잃은 개들이 가끔 어정거리며 먼지들을 공처럼 몰고 놀았고, 가끔 아내가 당직인 날에 나는 술 한 병 책 한 권 끼고, 퇴락한 행성을 기웃거리는 은하철도의 철이처럼 아내가 수없이 오고 갔을 길들을 따라 오르곤 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이가 생겨 그럴 수 없으나, 우리는 모처럼 시간을 되돌린 듯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아내는 나처럼 몸을 부딪히는 격렬한 운동은 피했지만, 산책과 수영을 좋아하므로 맛있는 것을 먹고 안양천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모처럼 불을 피우고 양꼬치나 곱창을 구웠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다양한 술을 마셨고, 오래 걸으며 즐거웠다. 아내는 때때로 어머니께서 힘들지 않으실까 걱정하였으나, 여동생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건너오는 연락은 하나같이 즐거운 내용뿐이었다. 늘그막에 어머니가 참말 좋아하신다고, 오히려 종종 더 보내라는 이야기가 따라서 나도 마음을 조금 놓았다. 아버지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지난 주말에는 친척들을 모아두고 성대하게 술판을 벌이셨는데, 나는 가장 낮은 항렬의 유부남으로 마침내 어른들의 술상 말석에 끼게 되었으나, 덕분에 어른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시고 모처럼 만취하고 말았다. 회사에서 오전 내내 고생하고서도, 낮을 넘겨 조금 몸이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저녁에 아내가 '어머이께서 우리 몸보신하라고 고기 보내셨다 아입니까' 하여 색깔 좋은 목살을 갈라 반은 물수육으로 삶고, 반은 토마토와 대파를 곁들여 구우니, 결국 아내의 눈치를 보다 또 술 한 병 따고 말았다.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구나 하면서 나는, 술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또 깊이 술에 절여지는 내 몸과 마음을 생각했다. 아이가 곁에 있어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었으나, 몸이 번거로웠을 뿐,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를 보며 술과 고기를 먹는 행복은 따로 비길 수 없었다. 어제의 열린음악회에서는, 놀랍게도 제니스 조플린의 summertime과 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 이 연달아 나와 나를 더욱 행복하게 했다. 아이야, 너의 아비는 마음이 부유하고, 너의 어미는 미인이니, 부디 행복하게 잠들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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