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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예상치 못한 시간에도 항시 훈련!

by Aner병문

다시 얘기하겠지만, 회사에서 생각보다 '빡센' 교육을 받고 있는데, 평소에 사회 생활이나 출세에 그다지 큰 흥미를 못 느끼는 나를 아쉬워하며, 아내는 때때로 승진이나 부서 이동의 기회가 있을때마다 열심히 해보라며 권하긴 했었다. 그렇지만 퇴근하고 나면 도장은 둘째치고, 집에 와서 아내의 육아를 교대하고 집안 정리하기도 바쁜데, 내가 그럴 여력이 어딨나. 일주일에 두 번 도장 가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인데다, 작년 대회는 한 번도 못 나갔고, 꼭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어머님의 안타까운 일이 겹치면서 결국 나는 외국 본사에 보낼 보고서를 번역하는 부서 이동의 기회를 한 번 고사했다. 아내는 두고두고 아쉬워했지만, 아내는 당시 부산에서 아버님을 돌봐드리고, 아내의 시댁, 즉 나의 본가는 딸을 맡아주셨으며, 나는 회사 퇴근 후에 어머님을 맡아 집안일을 건사하고 병원과 왔다갔다 하느라 도저히 짬이 나지 않을 때였다.



회사의 시험에 통과하고 교육이 시작되자, 아내는 당연히 남편이자 아비로서 해야할 일이지만, 그래도 늘상 군말없이 회사에 다녀와 집안일을 하고, 심지어 어쩌다 허락을 받아 고량주를 잔뜩 마신 날에도 다음날 멀쩡히(?!) 회사를 나가는 내게 늘 고맙고 미안함을 표하기에, 요즘엔 가능한 퇴근 후 여유와 배려를 더욱 많이 해주었다. 그 의지가 지나쳐 월요일엔 아내가 먼저 지쳐 쓰러지긴 했으나, 화요일엔 송파로 올라가서 갈라라가 9단 사성님도 뵈었고, 수요일엔 몸부림치도록 신나게 태권도 연습도 했으며, 오늘도 역시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가 먼저 '어머이 아버이랑 소은이 보고 있을테니께네 집에서 좀 쉬고 있으시소.' 하기에 참말 고마웠다. 집안은 적잖이 치워져 있었고, 나는 집안을 서둘러 치운 뒤에 옥상도장에서 연습했다. 간밤에 비가 오긴 했지만 8~9도 정도면 발만 약간 시려울 뿐, 도복 입고 충분히 훈련할만했다. 이미 교육장의 쉬는 시간에서 나는 담배도 태우지 않으므로, 비어 있는 강의실에서 혼자 팔굽혀펴기하고, 삼일 틀을 한번 연습하고(서른세 동작밖에 안되는데다, 크게 뛰는 동작이 없어서 1분 내로 가능한, 아주 경제적인 틀이다 ㅠㅠ), 지긋지긋한(창시자님 죄송합니다!!) 고당 틀의 좌우 다리 버텨서 반바퀴 돌리기 연습을 자주 하는데, 오늘 아내가 이토록 비어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니 무척 좋아서 서둘러 도복 갈아입고 밖에서 실컷 연습했다. 몸이 노곤노곤한게 아주 기분이 좋다. 마음의 때가 땀으로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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