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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나는 신이다 - 징그러워서 보지도 못한.

by Aner병문

나는 아직도 그 유명한 영화 샤인Shine 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무슨 내용인지도 알고, 그 유명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 장면도 여러 번 보았으며, 심지어 논술 수업에서 활용한 적도 있다. 나는 이제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이해했고, 부모님도 지금은 많이 눅어지셨지만, 그래도 젊었을때 부모님과 가장 대립했던 시절에도, 이제 나조차 애비가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샤인Shine을 볼 수 없다. 다 못 본 것은 아니고, 초반부에 피아노를 몹시 잘 치는 주인공이, 미국 유학을 권유받을때, 젊고 엄격한 아버지가 그의 미국 여권을 박박 찢으며 '감히 가족을 벗어나겠다고? 가족 벗어나서 잘되는 놈은 못 봤다! 넌! 절대! 이 집안을! 벗어날 수 없어!' 라고 외쳤던 그 장면을 아무리 생각해도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학마을 사람들' 로도 유명한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 에서 주인공의 아우는 은행 강도를 하다 끝내 사람을 쏘지 못해 붙잡힌 자신을 자조하며 '형님, 죄송합니다, 인정 선에서 걸렸어요, 법률 선, 도덕 선-은 무사히 넘었는데, 마저 뛰어넘었어야 하는건데.' 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나 역시 철호의 아우처럼, 이제 부모님과의 깊은 오해와 굴곡도 어느 정도 했으니 능히 볼 수 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위대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현재 내 삶의 행복에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그 장면에서 식은 땀이 나고 마른 침을 삼키고 눈 앞이 캄캄하다. 독한 술을 여러 잔 들이켜도 취하지 않고, 한동안은 좀처럼 매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나처럼 아내도 쉽사리 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다. 아내는 주인공들이 망신을 당하거나 낯부끄러운 장면이 나오면 본인이 '오글거려' 볼 수가 없단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DC코믹스의 '샤잠!' 이었다. DC코믹스의 대표적 영웅이기도 한 수퍼맨과도 유사성이 깊은 샤잠은, 본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가 주문을 외워 어른으로 변신하다보니, 늠름한 장정의 모습으로 온갖 유치한 짓을 다 해대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데, 아내는 그런 내용들이 죽도록 싫어서 연애 시절 극장에서 나가버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나쁘게 나간 것은 아니다. 나 많이 보고 오라고^^;;) 비슷한 맥락으로, 슬램덩크의 강백호 가 자신만만하게 슬램덩크를 내리 꽂았는데, 오히려 실패해서 비웃음을 당한다거나, 아내는 그런 낯부끄러운 상황을 도저히 견디질 못한다. 그래서 아내는 키와 무던한 성격에 비해 가끔 아주 내성적일 때도 있다.



그런 아내가,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나는 신이다.' 는 별 무리없이 잘 보았다고 해서 놀랐다. 아내도 나도 부모가 된 뒤로 굶거나 버림받거나 학대당하는 아이들에 관한 내용을 도저히 눈 맞춰 볼 수가 없도록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보다 더 신앙이 오래되었고, 깊고 굳건하며, 소은이가 훗날 커서 교회를 안 다닐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거니와, 술 한잔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는 아내는 의외로 덤덤했다. 그런 믿음 가진 인간들이 다 그렇지 않겠어예? 난 그냥 별 생각없이 봤다 아입니까, 속은 사람들이 뭔 잘못인교, 속인 놈이 나쁘지. 그려, 그 말은 맞는디...하면서도 영 마음 한켠이 씁씁했다. 나 역시 방송국 습격으로 유명한 모 교회의 치료 빙자 사기나 재림예수님 사기는 그럭저럭 덤덤하게 보았으나, 실제 여성들이 엉엉 울면서 짓밟힌 이야기를 할때에는 참으로 딸 가진 아비로서 제정신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오늘 방영된 옛 대통령의 손자는, 자신의 친족들이 '종교는 돈이 된다' 며 목회자랍시고 교회를 세울 계획까지 폭로하지 않았던가.

나는 하여간 역겹고 힘들어서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술을 못 끊은 교회 집사인 내 스스로 이상으로 부끄러웠다. 왜 우리는 가끔 교회 다닌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할까, 왜 '개독교' 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당당히 받아치지 못할까. 그들이 선입견을 갖도록 상처를 많이 준 탓도 있을 터이다.



예언자 사무엘이 제사장 엘리의 집에서 자라던 시절,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유명한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올때부터 이른바 목사의 직분을 이어오던 레위 지파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께 직접 십계명을 받으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허망함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애굽 시절처럼 황금으로 된 신상을 만들어 절하고 경배한다. 이를 알게 된 모세는 분노하여 십계가 새겨진 돌판을 깨고, 황금상을 태운 잿물을 죄인들에게 마시게 했으며, 이단의 죄를 저지른 부모형제자매들을 모조리 처단할 이들을 찾는데, 이때 나선 이들이 바로 레위 지파다. (어디까지나 성경에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주제의 이야기니까, 잔인함은 잠시 넘어가도 좋다.) 레위 지파는 이때의 공을 인정받아 더이상 노동하지 않고, 예배와 성소 관리 등의 직분을 맡게 되며, 나머지 열한 개의 지파에서 소득을 조금씩 떼어서 그들이 먹고 살수 있게 도와준다. 이른바 십일조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러한 레위 지파의 자손이자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인 두 장정은, 요즘으로 치면 마땅히 귀감이 되어야할 목회자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보러 온 부녀자들을 성소에서 욕보였고,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할 제일 좋은 부위의 고기들도 먼저 가져다 구워먹었다. 구약의 이야기 뿐 아니라 신약을 열러 오신 예수님은, 부활한지 사흘 만에 다시 올라가시며, 자신의 이름을 빌어 거짓 예수 행세를 하는 자들이 많을 것임을 이미 경고하셨다. 순자는, 선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자신이 아주 작게 배운 것을 가지고 큰 선비인양 행세하며 백성을 속이고, 세상을 어지럽히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선비를 속유俗儒 라고 하여 가까이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태권도 자체가 약하지 않고, 유학 자체가 고루하지 않은 것처럼, 교회나 신앙이 세상에 잘못한 것은 없다. 성경 어디에도 과부와 약한 여자를 핍박하고, 약한 이들을 짓밟으며, 세상을 속이고 어지럽히라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남아 있지 않다. 차라리 그냥 죄를 짓는다면 왜 그랬냐고 물어보기라도 하겠다. 뻔뻔히 목회자를 자처하며, 하늘에 계신 분의 눈을 속이려 들고 제멋대로 살려고 하는 자들이 있어 속이 쓰리다. 속세가 지치고 혼탁하면, 종교에 마음을 기대는 법인데, 그 종교조차 위아래로 썩어 믿을 수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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