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최종 시험에 합격했다.
여드레간의 대장정 끝에, 회사의 최종 시험에 합격했다. 말과 글을 다루고 전하는 일이라 그래도 여러 경험이 있어 비교적 느긋하게 생각했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세상은 더이상 칠판에 분필가루 털어가며 판서하는 강의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았다. 코로나의 여파까지 있어 나는 일단 가상강의자격을 따야했고, 익숙치 않은 프로그램들의 기능부터 익히느라 눈이 돌았다. 하루에 한번씩 실전처럼 시연을 하고 평가를 받아야했고, 시선맞추기,눈짓,손짓,억양부터 해서 일화 예시, 농담, 집중 등 강의에 쓰는 기술들까지 매일 하나씩 배워 쌓이니 죽을맛이었다. 그래도 여러 수단이 변했다 해도 기본은 역시 말과 글이라 덕을 보았다. 다른 젊은이들에 비해 한자에 능통하고, 영어도 일상회화 정도는 하는 덕도 적지 않았다. 멀리 해외에 거주하는, 중후하고 신사적인 강사님은, 부모님께 감사하셔야겠어요, 강의 경험이 많은 탓도 있지만, 쓰는 언어의 질이 달라요, 좋은 재능을 물려받았네요, 하시었다.
그 순간 약간 반감이 든건 사실이다. 나의 어줍잖은 무공과 마찬가지로, 나의 허세섞인 변변찮은 언변은 누군가 손쉽게 건네준 것이 아닌, 내 스스로 항상 수불석권 ㅡ 어떤 상황에서도 책읽고 쓰고 말하는 일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능이라는 손쉬운 표현으로 치부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 유명한 시인의 문하생이시었다. 도킨스의 말처럼 누가 내게 그러한 유전자를 주셨는가? 누가 내게 오천권이 넘는 책을 사주셨는가? 누가 나를 한달에 한번씩 윤석중 시인의 친척인 동화작가 선생님께 몸소 데려가주시며 문장의 기초를 잡게 해주셨는가? 누가 내 손가락 휘고, 붓고, 부르트도록 천자문과 상용한자와 고전을 외우도록 쓰게끔 알려주셨는가? 비록 엄격하여 무서우셨을망정 부모님이셨다. 그리 생각하면 틀린 말씀 전혀 아니었고, 나는 아직도 대장부 되기엔 너무 좁은 내 속을 탓했다.
아내는 어제 작게라도 축하해야한다며, 중래향에서 음식과 술을 사오라 허락해주였다. 탕수양념하여 튀긴 가지와 쇠고기오이냉채를 포창하고, 장송과 야관문주를 챙기는동안, 나는 새로 걸린 칠언절구 한시를 순식간에 읽어내리었다. 두 사람이 꽃핀 산 아래서 술잔을 나누는구나, 한잔한잔 또 한잔, 취하니 한숨 푹자고 날이 밝으면 금을 타리라. 늘 우리 부부에게 잘해주시는 사장님은, 치엔 시엔셩, 니 진짜 대단하다, 하고 놀라시기에, 앗따, 그래도 십년 공부했는디 저거 하나 해석을 모달까비, 해석하구 꿰어맞추기만 하면 되는건디요, 뭐. 저 오마르 하얌이 루이야바트를 남기고, 이태백 김소월이 천만년의 싯구를 물려주었듯이, 백면서생 내가 할 일은, 아는만큼 즐기고, 나의 자녀에게 능히 물려줄뿐이다. 좋은 글은 좋은 술처럼 향기롭고, 명료한 기술처럼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