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여기에 적어야만 해서(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 시장의 비극적 죽음에 부쳐 - 박가분을 중심으로

by Aner병문

박씨 성을 가진 중년 사내가 죽었다. 그의 나이 육십대 중반이므로 요즘 나이로는 원숙하게 젊어 한창 일할 나이기도 하다. 나는 도장에서 오랜만에 땀을 흘리다 아내의 긴급한 연락을 받고자 소리켜둔 휴대전화에서 너의 메시지를 받고나서야 그의 실종을 알았다. 너는 북촌 주변에도 수색견과 경찰들이 드문드문 보인다고 했다. 달필의 유서를 남긴 실종이었고, 그럴만한 근거가 있었기에 도장의 몇 남은 사형제 사자매들도 함께 모여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었다. 훈련을 깊게 해서인지 그 날도 잠이 오지 아니하였다. 새벽녘에서야 그의 죽음을 알았다. 내린 비가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빠르게 스며들듯이,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여론과 언론은 들끓었고,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늘 그렇듯 편을 갈라 싸웠다. 어머니는 내게 아침부터 전화하시어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양심은 있는 거라고, 서울시민장 반대 청원을 내게도 부탁하시었다. 나는 아직 밝혀진 게 없고, 서울시장으로서 어쨌든 죽었으니 서울시민장으로 치르는 일 또한 도의에 크게 어긋난 일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고인의 유언처럼 가족장이 더 좋았을 터이다. 혹은 서울시민장을 치르더라도 공개적인 조문은 아니 받는게 여러모로 나았을 수도 있다. 나 정도의 걱정과 예견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듯이 서울시청 앞은 두 패로 나뉘어 어느 쪽도 잘했다 잘못했다 할 수 없는 이들이 서로 뒤엉켜 싸웠다.




나는 그냥 고인을 개인으로서 추모하고 싶었다. 또한 나라의 법으로서 공소권이 없어지는 것 또한 이해하지만, 그와 별개로 피해자가 답답함을 벗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이미 세상을 떠도는 고소장의 내용처럼, 고인이 성적으로 추잡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 죗값을 받아야할 일이고, 또한 피해자는 더는 고통받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다시 두 패, 세 패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는데, 추모하는 사람은 추모하지 않는 사람을 탓했고, 추모하지 않는 사람은 추모하는 사람을 또 탓하였다. 나는 솔직히,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고, 밝혀질 것 같지도 않은 사건으로 가벼운 입을 놀리고 싶지 않았다. 언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론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왔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서로 실상이 다르다고 떠드니 나 같은 백면서생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늘 넣은 햄으로 유명한 어느 도시와 이름이 같은 배우라거나 역사학자를 자처하지만 도대체 SNS 바깥의 저서는 감평조차 올라오지 않는 석학에 대해서도 그냥 웃고 말았다. 어차피 저 어렵고 복잡한 속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없었다.




그런데도 결국은 이렇게 부족함을 드러내며 두드리고야 말았다. 젊고 똑똑한 또다른 어느 박씨 때문이다. '일베의 연구' 로 유명세를 얻은 박가분 선생은 한윤형 선생, 허지웅 선생과 더불어 당시 '젊은 진보주의자' 로서 명성을 올리던 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글은 그 당시 난해하리만치 견고하고, 또 논리로 응집된 듯 보였다. 한윤형 선생의 글은 몇 권 읽어보았는데, 특히 민주당과 NGO 등의 위선을 맹렬히 공격하던 필력에 놀란 일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후 불상사가 생기며 나는 박가분 선생과 한윤형 선생의 말과 글을 본 일이 거의 없다. 내가 더 이상 정치적 이념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리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인터넷에 떠도는 박가분 선생의 글을 보았다. 서울 시장의 죽음을 앞두고, '86세대의 내로남불만 비판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그의 글이 한 번에 잘 읽히지 않아 세 번 네 번 읽었다. 학교를 나와 속세에서 몇 푼 안되는 돈을 벌며 그나마 읽던 글들조차 잘 읽지 않게 된, 내 얕은 지성이 아예 녹슬게 된 탓이 클 터이다. 슬라보예 지젝, 진중권, 헤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포지티브한 가치규범(그런데 진짜 포지티브한 가치규범이란게 대체 뭘 말하는 것인가?)- 이런 '보란듯한 인용' 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 그가 말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86세대가 잘못했고, 그 잘못 때문에 정치권력을 상실한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공까지 비판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진보-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유산을 그대로 인정해야 우리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요약하고 나니 다시 끓어오른다. 솔직히 잘 모르는 나조차 화가 나고 답답하다. 이들 젊은 석학들- 높은 학력을 가지고 책과 SNS에 둘러싸여 자기 논리와 긍정만을 반복하는 이들은 이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잊어버렸나? 정말 공과 과를 구분할 거라면, 그들은 서울시장과 같은 날에 돌아가신 백선엽 장군, 혹은 그 이전에 정미홍 아나운서가 죽었을때는 어째서 비난과 조롱을 보냈나. 그렇게 치자면 솔직히 원조각하 대통령과 아직도 29만원밖에 없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명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런 기준을 들이밀 생각을 못했나. 그들은 공도 하나도 없이 오로지 과만 있는 사람인가? 박가분은 오세라비 선생이나 하태경 의원 같은 이를 '대중의 입맛에 부화뇌동하여 변절하고 그러므로 보편적 가치와 절차가 없는 사람' 이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진영 논리에 휩싸여 '내 편이면 봐주고, 내 편이 아니면 잔혹한' 행태를 보여주는게 아닌가? 그러므로 대중들은 지금 86세대를 비판하고 있지 않다. 야당 시절에는 누구보다 고결하고 깨끗한 '척' 했으면서 막상 집권하고 나니 옛 여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더군다나 그러면서도 '이 것은 음모이니' '이 것은 알고보면 속내가 있니'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니' 이런 치장을 하는 그 행태가 더욱 역겨워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정부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누구보다 정의를 자인해왔던 이른바 '좌파-진보' 정권조차도 오히려 조금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착취의 계급임을, 아니 오히려 몇십년간 축적된 위선이 있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한 놈들이라는 모습을 여실히 보였다는 점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에서 박가분이 인용한 바로 그 전공투 세대인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이제 집단으로서의 운동은 없어! 이념도 없어! 오로지 참된 깨달음을 얻은 개인만이 있을뿐이야!' 라고 일갈한다. 오쿠다 히데오가 이 작품을 쓴지 벌써 십 년이 넘게 흘렀다. 그때는 우리 나라에서 뒤늦게 88만원 세대 열풍이 불면서, 세대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취업문이 좁아지는 현실에 세대 간 갈등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때에도 이념을 말하는 이들은, 보수층이 악의 전유인듯 호도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문희준 록한다고 꾸짖듯이 사방으로 몰려나가 아우성쳤다. 일찍이 고미숙 선생은 순수 공부의 중요성을 논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미숙 씨는 자신이 맘 편하게 책 쓰고 강의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책 쓰고 강의하고 놀면서 먹는음식 입는 옷은 누군가가 뺑이치며 노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물건 들인데..' 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요컨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이념 놀음인가? 박가분의 글은, 정말이지 고미숙 선생을 향한 임승수 선생의 비판에서 피할 길이 없는 그 정점에 있다. SNS와 책에서 서로 저들끼리 추어주고 주고받는 이념 놀음이 마치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인 양, 거들먹거리며 제가 읽은 책을, 제가 아는 인물을, 하나의 설명도 없이 일부러 머리 굴리고 복잡하게 써가며 그조차도 대중적인 SNS에 올렸다. 그래서 박가분 선생, 그렇게 뼛속까지 잘 알고 계신 분이 그 불상사를 겪고도 모자라, 조롱투의 사과문을 올리셨었나. 많이 배워 주목받는 신진기예 자존심에, 대장부처럼 담백하게 잘못은 인정 못하시겠던가.




그러므로 감히 말하건대, 이제 더이상 이념은 이 세상에서 맑스가 부르짖듯 큰 의미를 가지지 아니할 터이다. 물론 개인이 열심히 공부하여 스스로의 가치와 의지를 가질 수 있겠으나 그 것이 절대로 예전처럼 강력한 집단화를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고 예상한다. 단순히 등소평 시절의 흑묘백묘 이야기나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딸이 살아갈 세상, 혹은 그 후대는 앞으로 더욱 복잡하고 날카로우며, 동시에 모두가 분분히 흩어져 좀처럼 집단 행동을 하기 어려운 시절이 될 터이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말조차도 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국민들이 정말 화가 난 것은, 이 정부의 위선과 뻔뻔함이었다.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전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서 정권을 얻고, 다시 한 번 믿어서 180석을 주었는데, 권력형 비리는 여전하고, 성추문으로만 물러나고 퇴락하고 죽은 이가 이미 여럿인데도, 무엇 하나 드러나는 실상 없이 묻혀가기 바쁘다. 그런데도 스스로 반성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이 것이 음모라고 떠든다. 그 뻔뻔함을 실로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다. 다른 대안도 없었지만, 이 정부에 표를 준 내 스스로가 안타깝다.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운 이들이, 배움을 여전히 걷고 있는 엘리뜨인데도, 다른 계급의 민초들을 돌볼 생각을 아니 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면 더욱 답답하고 화가 난다. 어느 뮤지컬의 노래처럼, 참말로 누가 적폐인가. 누가 진실로 이 나라의 개돼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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