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763일차 - 와 이틀 연속 도장이다!!

by Aner병문

퇴근 십여 분 전쯤에 아내에게 딸랑 카톡 하나가 왔다. '민물매운탕~' 아내가 어죽, 어탕처럼, 살짝 흙내가 나는 칼칼하고 걸쭉한 국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민물매운탕을 먹는 중이라는건지, 먹으러 가자는 건지, 집에서 만들고 있다는 건지, 아니면 아내와 내 생일은 8일차가 나므로 곧 올 생일에 먹고 싶다는건지, 하여간 아리송한 내용이었다. 퇴근 후 전화를 해보니 아내 대신 어머니가 받으시었다. 엥, 뭔일이래요? 야, 메느리가 애 데리고 놀러왔는디 가만 있겄냐, 메느리가 민물매운탕 먹고 잡다고 혀서 그거 먹으러 가는 중이다. ...그럼 저는요? 야, 니는 젖도 안 나오는 거이 매운탕 먹고 몸보신혀서 뭐할라고, 집에 가서 빨래 청소나 하고 기둘리라고 있어라, 남편이 그래 써비스도 하고 그래야제, 나는 애기 엄마랑 손녀 잘 먹이고 놀다가 이따 집으로 잘 보내줄라니까. 농담 아니고 진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뭐 신데렐라여 콩쥐여 뭐여 이러고 있으니까 아내가 깔깔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야 없을때 혼자 애 보니까 적적하기도 해가 어머니께 놀러갔지러, 내 매운탕 싸서 이따가 집에 가께, 여보야는 우얄랍니까? 그 때 내 머리가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난 도장 갈래!! 아내는 또 자지러지게 웃더니 그럼 그러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아내는 매운탕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너무 나를 풀어주면 못 쓴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사실 아내에게 '굳이' 내가 몸을 다쳤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아내가 전직 간호사 아닌가. 아내는 이미 오래 전에 내가 택견의 돌려차기를 맞고 임플란트를 박은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도 내가 도장 일로 신이 나 있으면, 야, 이거 뭐 완전 사기 결혼 아이가, 서울 건치어린이 출신이라 카더니 이빨도 하나 나가뿌고, 술도 음청 좋아하고~ 이게 안되겠데이~ 하며 깔깔 웃는다. 여하튼 아내는 그래도 아내라고, 남편도 그 동안 쭉 운동해오다가 살이 많이 쪄서 스트레스고, 그래서 한두번 정도는 허락해주는 맛도 있어야 한다고 나를 두둔해주었다고 했다. 감사.. 압도적 감사...!




여하튼 그건 몇 시간 뒤의 이야기고, 나는 그때 신이 나서 서둘러 도장을 가다가 아차 했다. 수건과 도복이야 도장에 하나 항상 두지만, 속옷과 수건을 깜빡 잊고 챙기지 못한 것이다. 집에 들러 가져오는 방법도 있지만, 속옷 한장에 집까지 들러서 다시 또 사람이 바글대는 퇴근길 지하철을 타기엔 몹시 성가셨다. 대림역 근처만 가면 그래도 3장에 만원 하는 속옷이라도 사겠지 하고 막연히 갔는데, 없었다! 진짜 온갖 노점상이 다 있어도 속옷만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편의점에서도 속옷을 판단다. 과연 면 드로즈라고 팔긴 팔았는데, 가격이 만원에서 100원 모자란 9,900원. 그래도 시간값이려니 생각하고 눈물을 머금고 샀다. 이러구러 도장에 도착하니 사범님께서 대번에 어떻게 된거야~ 제수씨가 이제 내놓은거야? 껄껄 웃으신다.




오랜만에 이틀 연속 도장에 나왔더니 도장의 사형제 사자매들이 반겨주셨지만, 몸은 뻑뻑하고 뻐근했다. 어제는 아령을 들고 연무하는 틀도 틀이었지만, 발차기에 조금 더 주력했다. ITF의 발차기는 WT와는 또 달라서 앞차부수기는 버팀발을 바깥으로 돌리지 않고, 높아봐야 명치를 노려 낮게 차는데, 이 때 허리가 먼저 발을 밀어주면서 들어가야 한다. 돌려차기는 발등이 아니라 발끝으로 차며 무릎을 바깥으로 든 뒤 허리를 돌려 역시 명치나 목, 관자놀이 등을 찍어찬다. 옆차찌르기는 처음 무릎을 올릴 때 버팀발이 반만 돌아가고, 나머지 반이 돌아갈때 무릎과 허리를 돌리면서 그 회전을 발칼에 모아 찌르듯이 찬다. 창시자 님은 태권도는 실전적이고 효율적인 무공이므로 보란듯이 높이 차기보다 정확히 차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ITF의 발차기는 여타 다른 무공과 비슷하게 까다롭다.




아령을 들고 하는 틀 연무는 여전히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찌르기나 반달찌르기, 올려찌르기를 할 때는 여전히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며 팔과 겨드랑이가 벌어지고 중심이 흩어진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끈적한 땀이 줄줄 흘렀다. 세 번에 나눠서 팔굽혀펴기 30개를 해도 어깨가 썩 아프지 않아서 정말 기뻤다. 이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온 몸이 지끈지끈 아프지만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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