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빌 - 왜 왓슨빌이어야 했을까.
정연진, 왓슨빌, (더)북랩, 한국, 2020 초판, 2023 개정판.
나는 엄밀하게 따져서 총각 시절에 마지막 습작을 완성했다. 어렸을때부터 제가 무슨 황석영 선생이라고, 꼭 등단하겠다며, 여러 무협지와 환상소설, 전쟁 소설 습작 등을 여러 잡지 및 사이트에 꾸준히 출품하긴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무공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만큼, 인연이나 사회에 대해서 아주 좁게 해석하는 철없는 젊은이였고, 제아무리 여러 책에서 읽은 그럴듯한 문장들을 흉내내어 가리려 해봐야 다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여러 실수와 잘못을 했고, 뒤늦게 무공을 시작했으며, 하나하나 몸으로 깨우쳐 알게 된 내용들만 문장으로 밀어냈을 때, 나의 습작은, 내가 꿈꿨던 내용들보다 훨씬 작고 여렸지만, 대신 적어도 안정적인 기승전결을 펼칠 수 있었다. 젊었을 적 너의 모습을 본따 썼던 습작은, 중반부까지 써두었다가 한동안 멈추어둔 적이 있었는데, 습작 속에 부려놓은 인물들이 내 마음 속에서 제각기 다투듯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해서, 습작을 맺을 때쯤에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하여 썼다기보다, 서사 속 인물들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 묘할 정도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제법 쓰고 싶어지는 소재는 많으나, 끈기가 없어 아직 다 맺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현재 가장 오랫동안 미뤄두며, 또한 써놓은 이야기로는, 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는 어느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미의 이야기인데, 이 또한 엄밀하게 따져 고전 무협의 서사를 따르고 있지만, 내가 아직 철든 부모가 아니라서인지 문장을 움켜쥘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아직도 초반부에 머물러 있다. 다만 가끔 다시 읽으며, 한두 문장이라도 씨앗 심듯 더 써놓는 편이다. 언젠가 내가 저 서사 속 어미와 비슷한 나이와 환경이 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밀려나듯 또다시 문장을 뿜어낼지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책을 써낸 이들을 존경한다. 오래 전, 서울 어느 동네의 용꿈꾸는 도서관(도서관 이름 한번 얼마나 웅장한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에서 그 유명한 고미숙 선생의 강연을 들었을때, 어느 젊은 처녀는 작가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맞아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냐' 고 물었다. 고미숙 선생도 나만큼이나 생뚱한 얼굴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느냐.' 고 되물었고, 그러자 그 처녀는 당황한듯, '그냥 아무 글이나요.' 라고 말했다. 대중들 사이로 잔잔히 번지던 헛웃음만큼이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사실 나조차도 명확히 어떤 글을 쓰겠다, 라는 의지가 있었다기보다, 마음 속의 답답함을 수다 떨듯 문장으로 풀어서 책으로 내기만 하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가가 되겠지- 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던 풋내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도 아무나 글을 쓸 순 없다- 라는 알쏭달쏭한 문장을 저 스스로 만들어놓고, 나는 꽤 오랫동안 스스로 우쭐해 있었다. 어느 일부 평론가들이 오해를 받듯이, 나 역시도 내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나는 더이상 내가 완성된 글을 쓰기 어려운 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저 읽는 자로 만족한지도 꽤 되었다. 저 유명한 빠블로 네루다도 '모두가 시인이 된다면, 누가 서로의 시를 읽어주겠는가?' 라며 자조하지 않았던가. 나는 기꺼이 내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그저 책을 많이 읽고, 태권도를 연습하는 젊은 아비가 되어, 가끔 술자리에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가끔 알 수 없는 재미있는 인연으로, 차현 형님과 오래 교분을 쌓게 되며 그 분께도 반농반진으로 '어서 이쪽으로 오라.' 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지금처럼 아침을 산뜻하게 하는 선물을 받게 되면, 괜시리 아내에게도 으쓱해지게 되는 것이다. 아침 일찍 문 밖으로 나가본 아내는, 여보야, 여보야한테 뭐 왔니더, 또 책이네예, 여보야 지인들은 하여간 책, 술, 커피, 무술 뭐 다 그런교, 하며 웃었다.
작가인 선생님을 뵌 적은 아직 없으나, 사실 문장과 서사를 보고 내심 흠모하던 차였다. 술이나 차라도 한 잔 하며 살아온 결이나 들어봤으면 싶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문장을 다루시는 이로서 그러하다. 마치 저 강신주 선생처럼, 본디 인문보다 물적인 이치를 배우시는 분인가 했으나 영어도 잘하시어 번역에도 관여하신 듯하고, 매번 지식이 없다 하시지만, 드러나는 품위와 격의는 내가 억지로 힘을 써서 가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비록 오랫동안 고등교육의 말석에 있었으나 본디가 사람이 악하지는 않으되 가볍고 경박하며 촐싹대는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진중하게 학문의 길을 오래 걸어온 이들을 모두 존중하고 존경한다. 이러한 분이 그저 매일 책 읽고 태권도하고 애 키우고 술 마시며 부려놓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웠고, 마음이 허랑하고 어지러우실텐데도 신경써서 보내주신 책이 고마웠다. 내 생전 살아오며, 책과 술과 커피는 마다해본 적이 없다. 사실 연초 들어서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긴 했으나, 다시금 책장을 들춰보지 못하여 내심 불안하고 답답하던 차에, 선생님께 책이 온다는 기별을 들어, 이를 계기로 책장을 열자고 마음먹었는데, 여는 순간 솜사탕처럼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운 문장이 참으로 맞춤하였다.
이 책은, 앞날개에 적혔듯이, 그리고 선생님께서 어딘지 모르게 수줍어하며 스스로 소개하셨듯이, 일기장이다.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인생을 반추하던 거장을 존경하는 어느 젊은 학자가 시골 마을 왓슨빌에서 지내며 쓴 일기들을 간추려 모은 내용이다. 일기는 스스로 살아온 삶을 쌓아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문장에 내실이 있다. 겪지 않은 이야기를 일기라고 쓸 수는 없다. 그러므로 '왓슨빌' 에서는 당연히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의 순간들이 묻어나왔다. 푸석한 사과의 맛이라거나, 아직 가보지 않은 만리타국의 뜨거운 벽이라거나, 조용한 밤하늘 등이 책장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아직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조금은 다시 설레었다. 한때 그 유명한 한비야 선생의 책이라거나, 유명한 여행기들을 읽으면, 스스로 자극이 되어 어서 빨리 어디든 박차고 떠나고 싶어서 삶의 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는데, 내 스스로 하지 않아도 될 고생들을 산전수전 나름대로 겪다보니, 이제 그냥 조용한 곳에서 편한 것이 제일 좋다. 삶은 역으로 사람을 이렇게 바꾸기도 한다.
편하게 스미듯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다. 십대 때 나를 가르쳐주신 어느 선생님은, 사람도 책도 영화도 음악도 음식도, 무엇이든 세 번은 겪어봐야 된다셨다. 그런 선생님도 내가 이십대가 되어서는 연락이 끊겼다. 아마 세 번 이상을 겪어보니 철없는 나를 어른으로 대하시긴 어려우셨나보다. 여하튼 나는 그리 두껍지 않은 왓슨빌을 단숨에 세 번 이상 읽었다. 그 때 나는, 오랜만에 다녀온 강남이 외국처럼 변해서, 그래서 황석영 선생이 강남몽을 썼는가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왜 하필 왓슨빌일까, 그 질문만큼은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선생님의 삶을 다 헤아릴 수야 없지만, 그녀에게 맨 처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이국의 동네가 왓슨빌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헨리 소로우 경에게도 굳이 월든 호숫가일 필요가 없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책의 제목이 행여나 '그랜드 캐년' 이나 '설악산' 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야식당의 모든 음식들이, 사실 반드시 그 음식이어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왓슨빌의 일기들 중 상당수는 지역색조차 드러나지 않아, 그냥 경기도 안양에서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천연덕스러워 재미있었다.
김훈 선생은 모든 가보지 않은 길에서 바퀴들은 새롭고 아름답다고 했다. 자전거로 전국을 누벼온 거장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해서 어딘가에 머물렀던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헛된 오해와 증오를 쌓아가면서도 부모님 밑에 있었고, 나이를 먹은 뒤로는 내 삶의 피폐함을 가리고 정리하느라, 도망을 다녔다. 몇 년간 했던 가게도, 학교에서 공부를 더할 수 없어 속세로 나와 잡은 첫 직장도, 모두 내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타의적으로 있던 곳들이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나 결코 내 뜻은 아니었기에, 나는 나의 월든이나 왓슨빌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왓슨빌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내 가정과 직장, 도장, 그리고 적지만 깊은 벗들이 생겼기에, 이제서야 나는 선택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왓슨빌에게는, 오로지 저자에게만 다가온 의미가 분명히 있을 터이다.
독서감평이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오랜만에 받아본 책이 거울처럼 내 부족함을 찌르듯 비추는 책이라 내 이야기가 더 길었다. 나보다 큰 이 곁에 서 있는 일은, 내 스스로가 가려지는 듯하여 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부족함이 대조되어 더 드러날지도 몰라 조마조마하다. 그 균형은 늘 시간이 해결해준다. 나는 이십대 시절, 누구든지 한 방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을 찾아 헤매이며, 내 몸을 심하게 못살게 굴었는데, 삼십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무공이든 체계적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관계와 공부와 인격이 얕은 이유는, 내가 늘상 상처 없는 쉬운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만리타국의 시골 밤하늘을 지고 자야 하는 차고 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이미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한 그릇의 밥과 나물 반찬을 먹더라도 평안해야하는 마음에 대해 배워 알고 있다. 선생님의 평안한 마음은, 분명 왓슨빌 어딘가에서부터 싹텄을 터이다. 나의 왓슨빌은 이제서야 내 스스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