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하루하루 나이 먹는 것, 조금씩은 느낀다.
나중에서야 이야기하겠지만, 어느 정도 제 고집이 굳어진 네살바기 아이와 함께 하는 벚꽃놀이란, 벚꽃훈련이나 벚꽃행군에 가까운 일이었다. 혹시 어린 날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뭔가 이 때를 대비하여 미리 아버지의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날 마실 술 정도야 가볍게 깨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부터 시작해서, 제때 잡힌 벚꽃축제 일정보다 한 주 먼저 절정으로 피어버린 벚꽃, 개나리, 목련에다가 곧 비 소식까지 예정되어 있어, 뉴스에서 굳이 앞다투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벚꽃을 보러 주말에 온통 밀려나왔다. 큰 모자를 쓰고 전통과자를 깨물어 잡수시며, 이런데 오믄 꽃 귀경(구경)이 아니라 사람 귀경 나오는 게여, 하시던 어느 노부인 말씀이 생각난다. 하여간 아이는 더운 줄도 모르고 이틀 간 보조 바퀴 달린 자전거와 한발로 미는 스쿠터와 비누방울을 번갈아 낮잠도 미뤄가며 놀더니, 어느 정도 나아버린 감기가 도로 도지고, 거기에 은근히 몸살까지 와버린 모양이었다. 몸이 아직 새 것이니, 해열제만 좀 먹이면 다시금 나아 놀겠다고 떼를 쓰는 통에, 나야 둘쨰치고, 평소 운동량이 적은 아내는 몸살이 겹쳐 무척 고생했다. 평소 훈련을 잘 거르지 않는 나조차도 발바닥이 퉁퉁 붓고 허벅지가 당길 정도이니 아내가 오죽했으랴. 아내는 서양으로 치면 아쿠아맨, 동양으로 치면 수호지 원씨 삼형제, 장씨 형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물 속에서는 인어공주 뺨치지만, 물 밖에 나오면 키가 커서 그런지 하여간 맥을 못 춘다. 꽃과 나무, 벌레와 동물 보는 일은 좋아하지만, 막상 산에 가기까지도 영 직장 가는 기분이라며 거기까지 가는데만 한참 걸린다.
여하튼 주말을 그렇게 보내고, 나는 일단 회사를 갔다 돌아왔다. 아내는 흔치 않게 아이에게 TV를 보여준 채로 약을 먹고 한숨 잠들었다고 했다. 진통제와 감기약으로 버티는 아내를 대신해서 내가 퇴근하자마자 밥 한 술 뜨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와 청소를 했다. 설거지, 빨래, 청소는 가사 노동의 3요소이며, 삼위일체이기도 하고, 매일매일 태권도 훈련처럼 해두어야할 숙제와도 같다. 꼬박꼬박 한다고 해서 특별히 집안이 더 깨끗해지거나 훨씬 나아지는 듯하지는 않고, 오히려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하루이틀 안 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새끼치듯이 불어나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날씨가 안 좋으면 처리하기 어려운 점도 옥상도장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매일 회사를 가고, 책을 읽고, 태권도를 하고, 술을 마시...는 것과는 좀 다르게(^^;;) 가사 노동을 처리하고, 아내가 조금 기운을 차려 아이의 떼를 받아주면서 잠을 재우는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밤 열 시 가까워 도복을 입고 옥상도장으로 나왔다. 아직 주말의 여파가 남아 허벅지가 후들거려 구부려 준비선 후 옆차찌르기나, 중심을 잡아야할 자세들이 다소 흐트러지었다. 어차피 누가 볼 것도 아니고, 어두운 밤에서 나 혼자 되건 말건 마음껏 힘을 쓰고 돌아왔다. 벌써 달이 높이 떠서, 한숨 자면 또 출근을 해야 한다. 주중의 삶이란 늘 그렇다. 그렇다고 주말이 딱히 더 여유롭지는 않다. 부모의 삶이란 원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