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자전거 여행 - 언어와 세상이 닿는 곳에 그가 있다. 김훈.

by Aner병문

김훈, 자전거여행, 생각의 나무, 2009. 개정판 5쇄, 한국.



곽선생이 말하기를, 교과서를 보여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영상으로 보여주면 차라리 편할 거라고 종종 투덜대는 젊은 학생들을 본다고 한다. 기술직에 있는 나 역시 때때로 누군가의 설명보다는 차라리 눈으로 직접 보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 않던가. 그러나 설명서는 어쩔 수 없이 글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직장을 얻으면서, 그 동안 공부해온 많은 지식들과 더불어 (물론 나와 내가 배운 지식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내가 많은 지식을 배웠다고 해서, 그 지식을 온전히 내게 녹이지도 못했고, 설사 그랬다 한들 내가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지지는 아니하였을 터이다.) 무언가를 설명할때 누가 읽어도 이해가 되게끔 하나하나 말과 글을 부려놓도록 더욱 신경쓰게 되었다. 젊었을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문법에 대해 이제서야 그러므로 납득하게 되었는데, 영문법의 1형식이네 2형식이네 하는 이야기는 지금도 아직 납득키 어렵지만, 적어도 이른바 6하원칙에 글을 부려놓아야 최소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째서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상황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보니 나이를 먹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문법의 용도를 이해하듯, 상대를 쓰러뜨려 넘기는 기술의 위력 이전의 무공의 원칙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의 성숙이란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 오랫동안 언어를 통해 세상을 표현해온 한 사내가 있다. 그는 어찌 보면 그가 스스로 써낸 소설의 주인공 우륵이 음악으로 세상을 표현코자 했듯이, 언어를 통해 그가 부딪히는 모든 세상을 표현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젊어서 국내 유수의 일간지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며 헤밍웨이처럼 단단하고 성마른 문장들을 갈고 닦았고, 봉급쟁이 생활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겪고 부딪힌 모든 일들에 대해, 본인의 출중한 언어로 표현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김훈을 외칠 때, 나는 주짓수 대회에서 발목과 무릎이 꺾이우고, 병을 오래 키워 비로소 병원 생활을 오래 지게 되었는데, 이틀에 한번씩 와주던 너를 기다리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김훈 선생의 남한산성을 처음으로 펼쳤다. 그 전까지 세상에 놓여있었을 때, 나는 모두가 찬탄하는 김훈 선생이 뭐 그리 대단하냐며 일부러 고집스레 책장을 펼치지 않았었다. 만주 벌판을 넘어 조선을 위협하는 청나라 군세 앞에서 도사려 나아갈 길이 없었던 인조의 왕정과, 한창 젊으나 몸은 꺾이고 마음은 삭았으며, 머리는 덜 커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서른 전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갇힌 사람으로서 나는 갇혀냄을 써낸 김훈 선생의 문장을 오래 읽었고, 그로부터 아주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찾아 오랫동안 읽어왔다.



김훈 선생은 스스로의 자전거를 풍륜 이라고 칭했다. 모든, 나아가지 않은 길에서 바퀴는 새롭다 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김훈 선생은 이미 모두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본인의 특출난 언어의 색채로 표현하고 덧칠하는데 무엇보다 출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직접 땀내나게 내리밟은 길과 풍경에 대해서도 언어를 마음껏 부려놓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가 누빈 방방곡곡에는 늘상 그 지역의 이야기가 깊게 새겨져 있으므로, 그의 여행기는 곧 그의 작품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느 바닷가에서 그는 외로운 칼로 나라를 구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던 충무공의 이야기를 캐내었고, 어느 진흙뻘에서 잠겨버린 늙은 악사의 유품 같은 이야기를 건져올리기도 했으며, 우리의 예비된 미래에서 과거를 반추하며, 옛 아버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되새김질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좁게 보이는 이 나라에도, 가는 곳마다 이야기가 넘쳐난다. 나는 관념적인 고집으로 틀어박혔던 오랜 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비로소 서른 넘어서야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는데, 유기 농사 짓는 NGO의 직장 상사는, 스무 학번 이상 차이나는, 부잣집 도령 출신의 우리 학교 사학과 선배님이셨다. 젊었을 적 사학 동아리를 따라 방학이면 온갖 지역을 누볐던 그 분 덕택에 이 좁은 나라에도 지역마다 온갖 특산물과 이야기가 가득하며, 그 분과 함께 먹었던 많은 원주민들의 식당들이 훗날 삼대천왕이니, 한식대첩이니 하는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고 또 한번 경탄키도 했었다. 유용주 선생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스스로의 문장을 짜내고 감당했듯이,김훈 선생은 이미 배운 역사를 자신의 언어로 물들였을 터이고, 이미 바퀴를 굴러 보고 겪은 일들을 모두 자신의 문장으로 썼을 터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자신이 맞닿는 간극에, 김훈 선생은 자신의 언어를 세워두었다. 언제 어디고 김훈 선생의 글을 읽을 때, 그의 글은 나의 마음을 쑤시고 들어오듯이 부어져서, 나는 늘상 그 문장에 전율한다. 때떄로 그 문장들을 흉내내어 쓴다. 그러나 가닿지 못한다. 광고작가로 유명한 박웅현 선생은, 늘 새롭게 읽히는 김훈 선생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이미 이어령 선생이 돌아가셨고, 이문열 선생은 몇 편의 작품 후 침묵하며, 젊은 문학가들은 세상 속에 신음한다. 김훈 선생이 부재하는 이 나라의 문학공간을, 나는 아직 상상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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