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1004일차 - 알퐁스 도데처럼 마지막 수업.

by Aner병문

여러 번 이야기했듯, 아내는 5월부터 복직하므로, 나는 아내와 함께 내려가 처가에서 어머님 산소도 찾아뵙고, 아버님께 소은이 재롱도 보여드린 뒤 아이와 함께 올라와 본격적으로 내 여동생과 함께 소은이를 돌보아야 한다. 내가 출근할때 소은이는 제 고모와 함께 고모가 출근하는 어린이집으로 갈 것이고, 급히 퇴근하여 나는 여동생과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야할 터이다. 여동생이자 내 아이의 고모는, 5월 한 달간은 도장이고 책이고 생각도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느 사내가 인터넷에 올렸듯, 남자의 실전이란 결국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며, 가정에 충실하는 일들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가정을 돌보며, 내 잠을 줄이더라도 해야될 일들은 분명히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알퐁스 도데의 유명한 작품처럼 마지막 수업이었다. 나는 승단을 앞둔, 몇몇 또래의 젊은 유급자들과 유단자회의 사제들에게, 우리 젊고 어린 콜라 부사범을 한 달 간 잘 부탁한다고 말해두었다. 중학교를 다녀 아직 어린 유단자 사제와, 두 명의 어리고 귀여운 유급자 학생들에게는, 연말까지 열심히 훈련하면, 대머리 삼촌 부사범이(유급자 때부터 대머리 삼촌으로 통했음^^;;) 고기를 꼭 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나는 오늘 내 연습보다, 유급자 사제들의 부족한 내용들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썼다. 나는 오늘 내 연습을 다하지 못했고, 유신, 삼일, 고당, 충장, 의암, 계백, 포은, 광개, 충무, 화랑까지만의 틀을 했으며, 사이사이 팔굽혀펴기를 했고, 2보 맞서기 7,8번과 1보 맞서기 3,4번을 알려주었으며, 도산 틀과 단군 틀, 뒤돌려 옆차찌르기와 뛰어 반대돌려차기를 끼고 알려주었다. 아홉시쯤 아내가 전화와서 더는 못 버티겠다고 하였고, 원래 맞서기 연습을 하려고 했었던 밥 잘하는 유진이도 끝내 자신의 직장에서 놓여나지 못했으므로 나의 4월 마지막 훈련은 이렇게 끝났다.



영화 감평으로 국내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한 '명징' 이동진 기자는 지적허영 없이 지나치게 날카롭도록 똑똑해진 대중들이 결국 순수 예술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피곤하고 지루한 예술 영화를 견뎌내고자 하는 힘도 결국 내 마음의 빈 구석을 가리고자 하는 '똑똑한 척' - 지적허영이 원동력이 되는데, 몹시 똑똑해진 대중들이 그러한 똑똑한 척을 감내하지 않고 공박하고 외면하므로, 결국 대중들은 명확하게 이해 가능한 서사와 연출만을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덧붙여, 힘들고 어려운 예술 영화들 또한 그러한 지적허영을 바탕으로 자꾸 보고 견디는 훈련을 해둬야, 끝내 그 예술의 참맛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근 이십년이 흘러서야 조금씩 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비로소 전통 무공의 참맛을 알아 틀 연습을 하는 나와도 비슷한 것일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 도장의 자유 훈련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이동진 기자를 인용했고, 아무리 지루하고 심심하더라도, 반복적인 태권도의 훈련을 쌓아두지 않으면 결국 새로운 띠의 세계로 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두었다.



5월 한 달이라고 쉴수는 없다. 나는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동생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데 연속성이 필요한, 적어도 두어 시간 남짓한 틀 훈련 시간을 늘 보장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혼하고 나서, 나의 몸은 더욱 물러지고 약해졌지만, 내게 필요한 훈련은, 젊었을때처럼 단순히 강한 힘과 신체 기능이 필요하다기보다 태권도가 무엇인지 알아야했기에 기술 수련에 전념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엄밀하고 합리적인 기술도, 올바로 짜여진 신체 구조가 없다면 능숙하게 펼칠 수 없다. 적어도 5월 한 달 동안, 나는 언제 중단하고 아이의 곁으로 가도 괜찮을, 그리고 좁은 방 안에서 조용히 해도 괜찮을 맞서기 연습과 근력 훈련, 유연성 훈련으로 반복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진실로 옳다. 늘 환경에 할 수 있을만큼 한다. 그래야 적어도 빨라야 6월에 돌아갈때, 나는 실력은 부족해도 늘 태권도를 좋아해서 신나게 함께 연습하는 대머리 삼촌 부사범이자, 재미있는 삼촌으로 남을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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