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는 법 - 유명 코미디언의 죽음을 중심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서울대 법대 보내시겠다고 오천권의 책을 넘게 사주신 우리 어머니의 열의는 하여간 대단하셨는데, 좁은 내 방에 EBS 교육방송을 보기 위해 놓인 작은 TV의 플러그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 종이를 발라두곤 하셨다. 무슨 메소포타미아 비각꾼이 전하는 진흙 봉니 항아리 문서마냥, 이른바 봉인인 것인데, 어머니께서는 EBS 교육방송을 볼 시간이 되어샹 손수 만든 플러그 끝의 둘둘 말린 종이 덮개를 풀어주곤 하셨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뭔 소년원도 아니고, 어머니, 올드보이 오대수도 15년간 군만두만 먹였어도 TV는 맘껏 보여줬는데...(...) 하여간, 친구라고는 정말이지 책밖에 없고, 상상은 망상처럼 커져 갔으며, 내 스스로도 사회화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서른은 다 되어서야 겨우 시작했지 싶다. 인내심 좋은 착한 벗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내 스스로 이런저런 상처들만 곱씹어가다 스스로 자멸하는 청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답답하고 막막하던 문제집풀이의 학창 시절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준 수요일 밤의 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유명한 희극인들이 나와서 주사위를 돌려가며 주사위에 나온 주제로 만담을 해서 많이 웃기는 사람이 인기도 많이 얻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라고는 학교, 학원, 책으로 가득 찬 좁은 방, 문제집을 다 풀고 외울때까지 새벽 한시고 두시고 잠을 재우지 않으셨던 어머니밖에 없었던 그 때, 행여나 어머니 깨실까 소리 죽여가며 어두운 방안에서 베개를 입에 물고 혼자 킥킥대며 웃던 학창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내 나이나 되었을 유명 희극인이 그렇게 이제 와서 뜨거운 만리타국에서 초라하게 죽어갈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승승장구하다가, 가정의 불화 및 폭력이 심하게 불거졌고, 나아가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불합리한 금전 거래며 폭력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는 국내 방송계에 자리를 두지 못하게 되었다. 제가 무슨 회개한 조직폭력배라고, 갑자기 목회자가 되었다며 커다란 교회를 지었고, 애국심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기라도 했는지, 안중근 의사에 이어 이승만 대통령의 이야기까지 영화화하겠다는 포부를 펼쳤으나, 이미 있는 가정 유지도 못하는 주제에 젊은 내연녀와 아이까지 낳은 사실이 더해지면서 방송계뿐 아니라 국내에도 자리를 두지 못하게 되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염량세태, 감탄고토- 이런 세상사를 축약할 성어는 열 개도 더 댈 수 있다.
한동안 소식도 말도 없다가, 갑작스러운 부고가 들려왔다. 그나마 딸이 자리를 지켰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방송인치고는 실로 초라한 빈소였다. 시신조차 제대로 보관되지 않아 미지근한 냉동창고에서 썩어가는 몸을 끝내 불사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연고도 없이 먼 타국으로 떠났고, 사회적 지위가 있었기에 돈을 날려가며 행세깨나 했던 듯 보이지만, 더는 붙잡을 곳도 없었던지, 말도 안되는 허황된 프로그램과 심지어 가상화폐 이야기까지 끌어가며 어떻게든 예전의 위세를 되찾아보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술은 못 끊었을망정 나 역시 교회 집사이기에, 성경을 찾는 알고리즘 때문인지, 판자로 초라한 교회에서, 알아듣지도 못한 어린 타국의 소년소녀들 앞에서 한국말로 찬송을 불러제끼는 그의 뺨은 움푹 패였고, 예전의 자신감과 풍채도 없어보였다.
연산군 때 교리 직책을 맡은 이장곤은 한때 누명을 써 도망치다, 고리백정의 딸과 결혼했는데, 훗날 연산군이 쫓겨나고 자신의 직책을 되찾을때 백정 출신의 아내와 처가 식구들을 버리지 않고 더 사랑하고 아끼고 돌봐주었다고 했다. 광무제의 신하 송홍이 공주와의 새 장가까지 마다하고, 겨와 술지게미를 먹어가며 고생한 본처를 버릴 수 없다 말한 조강지처의 고사는 이미 유명하며, 조선 시대에도 역시 부모의 상을 함께 지낸 처, 또한 오갈데 없는 처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법령이 있었다.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다시금 이택후의 중국사상사론 3부작을 읽고 있다. 유학은,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와 국가라는 큰 공동체를 다스리는 맥락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믿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당연히 밖에서 샌다고 믿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이들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기지 않는다. 한때 유려한 입담으로 방송가의 황제로 군림했던 이였으나, 가장 가까운 가정을 지키지 못했고, 그 태도대로 살았던 탓에, 그는 목회자가 되어서도 속인과 다를 게 없었고, 먼 타국에서 폭력배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여 비참하게 죽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참으로 그 값을 다 못하고 산 셈이다. 남자는,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가 아니라, 남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남자다. 옛날 사람 같아도, 항상 저러한 이야기를 새기며, 처자식 마음에 대못 박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