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어느 덧 불혹을 앞두고.
장마라고 하더니 꼭 노인네 오줌줄기 흐르듯 개고 내리고를 반복하였다. 그렇다고 비내리는 날이 시원치 않은가 하면 그도 아니다. 한 이틀 천둥벼락 동반하여 바람도 요란하게 쾅쾅 내려붓고 나면 후끈한 습기가 간 곳 없이 가을마냥 서늘한 공기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맑은 날에는 피부를 벗길듯 햇볕이 쨍쨍하여 하여간 비가 오든 아니 오든 괴롭다. 그래도 멀리까지 찾아본 벗들 먹일거 다 먹이고 안양예술공원이나 한 번 뵈주려고 한 바퀴 돌 적에 숨이 막히도록 날이 습하고 뜨겁더니, 비 오는 날에는 그야말로 구멍이 난 듯 퍼붓는다. 그러므로 이틀 간격으로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요즘, 엊그제 비오지 않는 틈을 타 교회를 다녀와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산책나가던 길에는 이미 안양천에 물이 가득하여 노천주차장의 차주들을 불러다 차를 빼게 하고, 그예 연락이 받지 아니하는 차들은 아예 견인차를 불러다 빼버리니, 물난리가 무섭긴 한가보다. 하기사 언뜻 생각할때는, 그래도 헤치고 나올 엄두라도 먹을 물보다는 불이 무섭지 싶은데, 불은 지나면 재라도 남지만 물은 있었던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니 물이 더 무섭다는 어른들 말씀도 일리가 있지 싶다. 산을 깎고 땅을 고르며 제맘대로 물길을 막아 사는 사람들의 번거로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위가 높아진 흙탕물 속에서는 송사리와 미꾸라지, 잉어가 가득하고, 전에 없이 오리며 백로, 학 등의 새들까지 날아와 휘어진 목을 잡아빼며 물고기를 덤뻑덤뻑 물어 삼키기에 바쁘다. 모처럼 비와 비 사이의 갠 틈을 즐기는 이들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나와서 자전거를 타거나 새들의 사진을 찍거나 했다.
2박 3일간 내내 술을 먹었다. 생일 전부터 노래를 불렀으니 더이상 긴 말은 안하련다. 읽는 몇몇 분들도 지겨우실 것이다. 여하튼 오랜만에 정말 술이 물리도록 마셨다. 술을 워낙 좋아하므로, 술에 대해 몇 가지 기준을 내세우는데, 즐겁게 마셔야 하고, 화나거나 슬플 때 마시지 않으며, 몸이 안 좋을 때 술 욕심을 내지 말고, 마땅히 끊어야할 때 끊어서, 적당히 오래 즐겁게 마시자는 것이 골자다. 하여간 나도 내일 모레면 사십이니 이제 어릴 때처럼 금방 술이 깨지도 않고, 또 술 마신 다음날에 책을 읽든 훈련을 하든 뭐든 할 수 있는 시간을 그냥 날리기도 아까웁다. 그러므로 술을 마실 때는 반드시 함께 하는 이들 입이 즐겁도록 비교적 푸짐하게 먹는 편인데, 마리아주(mariage)라고 하던가, 결혼(marriage)처럼 술과 음식에도 맞는 궁합이 있어서, 나는 가족들과 여러 벗들과 함께 흙내나는 광어회, 고기와 버섯을 잔뜩 넣어 스튜처럼 끈적해진 미역국, 된장과 비지와 함께 무쳐낸 미나리, 중국식 탕수갈비, 옥수수냉면, 철판명란볶음, 새콤하고 알싸한 중국식 가지볶음, 칼칼한 마라탕, 마파두부, 순대국과 술국, 들깨와 참기름으로 무쳐낸 돼지 귀와 모듬수육, 들깨를 갈아넣은 삼계탕, 술붗에 구워낸 양꼬치와 양갈비, 찹쌀로 반죽해 튀겨낸 꿔바로우, 진하고 고소하게 삭혀낸 송화오리알, 토마토와 김치를 넣은 옥수수온면, 고수를 잘게 썰어다져 고기와 쪄낸 만두를 소주, 맥주, 고량주, 도꾸리와 곁들여 다양하게도 먹고 마시었다. 2박 3일간 술을 진저리나게 마시면서, 또 한번 아, 나는 술을 정말 좋아하지, 유용주 소설가마냥 정말 술에 푹 빠져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었다. 생각해보면 고기 좋아한다고 1년 365일 내내 삼겹살만 먹는 사람이 있던가.
그러므로 이제는 제 아비어미와 눈을 맞추면 제가 먼저 입을 벌려 까르르 웃는 아이와 아내가 넘실대는 천변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생각하는 척 우수에 잠겨 3일간 절여진 술을 깨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계절은 지금보다 분명했고, 내가 겪던 여름은 지금보다 더 메마르고 날카로운 계절이었다. 어느 틈에 계절과 계절 새의 경계는 흐려지고, 여름은 축축한 찜통 속처럼 변해서 내 기억과 내 삶은 또 달라져 있었다. 그러므로 내 아이와 말이 통하기 시작할 시점에, 아이에게 남겨진 시간과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서로 달라 감히 맞댈 수 없을 것이고, 그저 말이나 주고받을 뿐,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함께 수저와 젓가락을 든다 해도, 겉발린 말만 주고받다 사는 세상이 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종종 앞섰다. 한편으로 이제껏 살아오며 가장 행복한 생일을 보낸 듯한데, 나는 이렇게 혼자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어릴 적 내 외로움에 내가 지치고 물려 상처준 타인들은 어찌 지낼까, 인연이 끊겨버린 이들은 지금도 내게 증오가 남아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었기에 다만 생각만 많았다. 처자식이 생기므로 나는 이렇게 겁많고 소심한 사내가 되었다.
아내의 믿음은 늘 나보다 두터워서, 아내는 술과 담배와 참람된 읽을 것, 볼 것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삿된 생각과도 거리가 멀었다. 아내는 늘 내 생각이 세상보다 쓸데없이 앞서가고 쓸데없이 넓어져서 내 스스로가 소진되는 것을 경계했다. 아내는 내 스스로 잔꾀를 부리기보다 더 신앙을 깊게 쌓아야 한다고 늘 충고했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늘 내 잔재주를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처자식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생각이 많았다.
어깨가 거의 아프지 않아서 근력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이제는 어깨를 어느 방항으로 돌리거나 올려도 아주 약간의 먼지 같은 아픔만이 남아서, 나는 모르는 척 팔굽혀펴기도 찌르기도 아령들기도 다 할 수 있었다. 왼쪽 어깨와 발바닥이 아파 나는 꽤 오랜 세월 내 몸을 묵혔다. 그러므로 살찌고 둔해진 몸으로, 비와 비 사이를 건너듯, 술과 술 사이에 몸을 깨울 때,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아이를 어머니께 보내고, 아내가 잠든 아침에, 나는 술기운으로 일찍 일어나 온 몸의 주독이 빠지도록 몸을 썼다. 별일이 없다면 나는 9월에 2단 띠를 받는 사매를 도울 것이며, 11월에는 대회에 나가게 될텐데, 아내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나는 일렁이는 안양천을 보면서 빈 아기띠를 두른 채 커피를 마셨고, 여러 가지 생각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저 커다란 장강조차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데, 내 생각들은 늘 내 몸 어딘가에 붙박여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늘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나 혼자만 그리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닌 듯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