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子뎐 誕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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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子 나이 올해로 서른여섯, 1985년 을축년 계미월 병신일- 열여섯째 날에 세상에 나와 올해 경자년 계미월 경신일 열여섯째 날에 서른다섯번째의 생일을 맞았구나. 그리하여 며칠 전부터 생일을 기하여 산중호걸 뭇 짐승들 부르듯 초청을 돌리고 미리 연차를 빼놓는 등, 부인 안씨가 짐작할 새 이 술귀신이 또 술을 먹고자 벌써부터 흥이 났구나, 다만 애 아비로 첫 생일이니 어디 두고보리라, 하고 짐짓 흥을 맞춰줄 새, 병子 기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바질을 떨며 가로되, 부인 강진 안씨는 게 있는가, 하니 안씨가 알 수 없어 빈 댓글로 일관하므로 다시금 병子 목소리를 높여 들으란듯 가로되, 부인 강진 안씨는 게 있는가! 하니 그때서야 안씨가 네, 남편의 명을 받잡아 예 있사오이다, 하면서 속으로 또 뭔 개수작을 부릴라꼬 컨셉을 이리 잡노, 의심하더라.
병子, 안씨의 속도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가로되, 안씨는 남편의 탄신을 맞아 생일 준비를 마쳤거든 그 일정을 고하시오, 하니 안씨가 속으로 고시랑대기를 참말로, 지가 며칠 전부터 술 처물라꼬 멫시부터 멫시까지 누구 오고 멫시부터 멫시까지 누구 오고 다 계획표 짜놓고는 모르는척 누구더러 말하라카노? 참말로 벨시럽데이, 하면서도 낯빛을 바꾸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니 과연 병子의 철없는 컨셉을 능히 받아줄만한 여인이더라. 예, 올해 경자년 계미월 경신일 열여섯째날, 남편의 탄신 당일 저녁 부모님과 아이 고모가 오시어 용돈 및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사오이다.
병子 크게 기뻐하며 가로되, 부모님과 여동생이 오는 시간은 모두가 퇴근하고 오면 술(戌 : 오후 7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시이니 과연 술 먹기 좋은 때로다, 자고로 술시에 술 먹고 자(子 :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의 시간)시에 자면 기운을 보하여 능히 장수한다 하였도다, 하나, 안씨 속으로 다시 고시랑대기를, 어데서 그런 또 말도 안되는 구라를 치노? 하여간에 아버님도 이 인간도 똑같아가, 멩분만 있으모 술 물라꼬 그라지, 애 고모도 술이라모 빠지지를 않으이까네, 내 믿을 사람 시어머니밖에 없다, 참말로, 주여~ 하면서도 겉으로는 다시 부드럽게, 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역시 성현의 글을 읽고 무예를 익히는 남편다운 지혜올시다, 비위를 맞춰주더라.
병子 다시 의기양양하여 가로되, 그 날 본관의 탄신을 기하여 여러 귀빈들께서 선물과 축사를 들고 능히 내방을 온 것인즉, 그 일정에 대해 소상히 논하도록 하라, 하니 부인 안씨 몇 안되는(!) 목록을 훑어보며 가로되, 여식 소은을 시어머니께서 이틀간 맡아주시기로 했사오니, 북촌 처녀와 수원 키다리 총각이 짝 맞춰 오는 날이 오후 2시요, 오후 4시에 경기 북쪽 고을에서 퇴근하고 찾아오는 곽 훈장이 합류하니, 양탕국*1과 팥빙수를 젓수시며 보드게임 놀음을 하다 저녁으로 1차 중식(中食)을 드시옵고, 2차로 삐루*2로 입가심을 하고 각자 귀가하시면 되오이다. 이들을 주변에 여숙케 한뒤 다음날 해장 겸 아점으로... 잠깐! (분노) 여보야 친구들 이 날 집에 안 가고, 주변에서 잤다가 다음날 또 논단 그 말잉교?!!! 그 날 저녁은 도장 식구들도 온다 안했습니까!!(움찔하여 컨셉 깨짐) 헤헤헤, 자주 못 봉게로 헤헤헤..아, 제일 가찹은 애가 수원 살고, 제일 먼 애는 경기도 북쪽에서 4시간 걸려개지구 오는디...헤헤헤. 게다가 도장 사매들도 한동안 못 봐서, 헤헤헤, 아, 언니도 보고 잡고 선물도 갖고 온다는디 그것을 어찌 막을 맹인가 헤헤헤~(유들유들~)
부인 안씨가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로되, 이미 교회를 오래 다녀 신앙이 든든하나, 마음 속에는 예수님과 부처님이 서로 종교대통합을 이루어 손을 맞잡고 하이-파이부*3 를 하더라. 부인 안씨가 인내하며 가로되, 그럼 명 받잡아 계속 읊겠나이다, 하여간 이 술 말종들, 아니, 남편의 벗들이 유숙하고 나서는 남극의 숙수*4 출신으로 순대국과 모듬수육, 삼계탕으로 안양을 제패한 점포로 가 해장을 시키고 산책 이후 다시 보드게임 놀음을 하다 도장 사자매들을 모시면 그 날이 마지막일러라. 보고를 마치며 부인 안씨가 속으로 벼르되 아주 알차게도 짰데이, 하여간에 술 먹고 행여나 변기 잡고 타령이라도 부르모 니는 바로 아웃 아니겠나, 이판사판인기라! 하더라.*5
병子, 제가 짜놓은 계획에 듣기만 해도 속이 뿌듯하여 희색이 만면하여 가로되, 본관의 탄신을 경하하러 오는 이들의 행렬이 마치 저 미리견*6의 지배자 도람뿌에게 국빈들이 찾아오는 듯 하도다, 참으로 본관의 덕이 아니겠는가, 자뻑하니 부인 안씨가 못 참고 말이 새어 지랄하네, 참말로, 벌써 술 처뭇나, 병子 쫄아서 가로되, 응, 여보? 뭐라고요? 아, 아무것도 아입니데이~ 계속하이소. 병子 미심쩍으나 부인 안씨의 안색을 살피며 가로되, 자, 이어서 가장 알차고 즐거운 시간~ 선물 시간이로다, 부인 안씨는 귀빈들의 선물을 풀어 능히 자랑하라 명하니, 그래도 이런 건 다 살림이지 싶어 안씨 또한 풀어진 마음으로 보따리를 열더라.
부인 안씨 가로되, 먼저 가족들의 선물을 볼작시면, 시댁에서 아버님 어머님이 손녀의 간식을 위하여 용돈 봉투를 쾌척하시고, 아이 고모께서 신발 한 쌍을 짝지워 주셨나이다, 덧붙여 어머님께서는 며칠 전부터 생일을 위하여 광어회와 미역국을 준비하셨사오니 필히 연락드림이 옳은 줄 아뢰오, 이어 장인장모님께서 사위 술고래인줄은 모르고 책사보라고 거액의 도서상품권을, 처남이자 소녀의 오라버니께서 선물은 캐-쉬라며 용돈을 보내셨나이다.
병子, 기꺼워하며 가로되, 가족끼리 돈과 선물을 주고받음이야 유태인이 서로 술을 팔아 사먹기를 되풀이하듯 결국 같은 핏줄끼리 도는 것이니 아까워할 일이 무에 있으리요? 내 현숙한 부인을 만나 고운 딸을 얻고 본가와 처가를 가릴 것 없이 애정과 신뢰가 두터우니 총각 시절 부모님께 욕먹고 부끄럽던 시절이 언제인가 하노라, 부인께서는 계속하여 고하라.
이어 부인 안씨가 계속 가로되, 직장에서 남사부-두루미 언니야 짝꿍이 보낸 진한 조껍데기 막걸리가 1병이요, 전 전 직장 동료가 보낸 구슬 얼음과자가 4통이요, 전 직장과 군대 모임에서 받은 커피 기프티콘이 수 장이요, 교회에서 준 치킨 기프티콘이 수 장이요, 회사 팀장님이 손수 글씨써서 타주신 커피가 1잔에, 같은 성씨 전씨 총각이 고맙게도 형수 드시라고 보낸 과일 상자가 하나요, 도장 사범님이 먹었으면 내보내는 것도 신경쓰라고 유산균이 1통이요, 도장 사매들이 언니 옷 사입히라고 상품권이 2매요, 북촌 처녀가 그래도 십년지기라고 책이 아홉권에 커피 콩이 한 봉지, 갈아먹을 기계까지 보냈으니 3일간 온 선물이 도합 열아홉개이오이다.
병子, 십대때는 생일빵으로 일진패들에게 얻어터져 서러움이 봇물이요, 이십대에는 친구가 없어 스스로 서양 떡을 사다 촛불 박아 불피우며, 삽십대는 밥만 축내는 노총각으로 구박받기 일쑤였다가, 참으로 어데서 이런 복이 나왔는가 눈물을 흘리며 선물을 세다가 문득 대노하며 속좁게 가로되, 곽씨 이 ㅅ끼, 선물 없네, 얘만 보냈으면 스무개 채웠는데?!*7 그가 말하는 곽씨란, 십대 때부터 교분을 쌓아 서학과 권투에 능하며 지금은 녹봉을 받아 학생들을 지도하는 곽 훈장을 말하는 것인즉, 둘이 한 살 터울의 형제처럼 자라 문무의 배움을 겨루기가 벌써 십년 세월이더라.
그러자 부인 안씨가 웃으며 가로되, 곽 훈장께서는 선물 대신 정산서를 보내셨으니 그 항목을 읊는 바 다음과 같으니 남편께서는 들으시오, 자고로 십년 우정에 병子가 공부한다 물장사한다 털어먹은 재산이 한 추럭*8이요, 휴대전화도 없이 부모님께 월 3만원 받으며 괄시받아 살 적에 곽 훈장이 거둬먹이고 재운 덕만 한 짐이라, 얼마 전 선물해준 보드게임 글룸 헤이븐*9 값도 아직 안 받은데다, 음악한다 운동한다 공부한다 까불던 시절의 사진이 여러 장이니 어디 그로 한 번 셈해볼까 하더이다.
병子 몹시 두려워하며 가로되, 부인 안씨는 부디 곽 훈장이 오거든 정중히 맞아들여 상석에 모시고 그를 접대함에 모자람이 없게 하오, 노잣돈도 넉넉히 주어 보내시오*10 신신당부하니 안씨 웃으며 속으로 고시랑대기를, 내 만나기 전에 총각 시절에 놀기는 어제간히 놀았는갑제? 두고보래이, 어찌 지냈는가 내 호핑씨한테 함 물어볼끼야, 하고 매우 즐거워하더라. 그러므로 병子가 술에 취해 벗들과 즐거울 새, 술이 약한 곽 훈장과 술을 아니 즐기는 부인 안씨가 둘이 몰래 병子의 철없던 시절의 증거사진을 주고받았는지, 기록은 전하지 않더라. 다마 병子가 속썩이면 곽 훈장이 능히 그를 한 장씩 풀겠노라 으름장을 놓으니 가정의 평화가 참으로 지켜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