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낸시 마이어스, '인턴', 미국, 2016.
여기 한 노인이 있다. 40년 넘게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부사장으로 은퇴하신 분이다. 요즘처럼 인공지능으로 전화번호 찾는 시대에 전화번호부 공장에서 평생을 보낸 칠순 노인이라니, 보나마나 꼰대겠구먼 싶지만 천만의 말씀. 늘 빳빳이 다린 양복에 회전식 걸이개에 걸린 넥타이를 '깔맞춤으로' 착용하고, 약속없는 일요일 아침에도 깔끔하게 면도하며, 셔츠는 늘 바지 속에 넣어 입고, 명품 서류가방을 한 손에 든 채 태극권으로 단련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출근한다. 평생 직장에서 은퇴한 뒤 그 연세에 어딜 또 출근하시나 했더니 맙소사, 인터넷으로 옷을 파는 커다란 벤처기업이란다. 젊은 여성이 4개월만에 커다랗게 키워냈다는데, 옷 한번 입어보지도 않고 전화와 인터넷만으로도 옷을 어떻게 판다는건지, 노인 인턴에게는 황망하기까지 하다. 이 회사는 수첩, 전화, 계산기도 없고, 모든 업무 지시는 맥북의 이메일로 받으며, '수퍼 캐주얼' 이랍시고 후줄근한 면티와 꾸깃한 청바지, 정리 안한 수염으로 출퇴근한 직원들은 문자 메시지나 SNS, 이메일이 아니면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조차 잘 모른다. 바쁘긴 무지하게 바쁜 회사에서 개인 비서랍시고 칠순 노인 벤 휘태커를 혼자 덩그라니 놓아둔 여사장은 어찌나 바쁜지 좁아터진 사무실을 자전거로 누비고, 회의를 비롯한 모든 일정은 분 단위로 끊으며, 가정과 회사 운영 양립이 어려워 누가봐도 피가 말라간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로서, 성공한 여류 사업가로서, 자존심 하나는 엄청 강해서 가정과 회사 양쪽이 모두 파행 상태로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전문 CEO를 영입하여 회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라는 투자자들의 제안에 엄청 분노한다. 아, 이거 안돼, 이건 유일한 사장님 불러야 돼....?!
비록 유일한 사장님은 아니지만, 칠순 노인 인턴 벤 휘태커는 그 스스로도 '난 이 회사에 입사한 뒤로 자네들의 삼촌이 된 기분이야' 라고 고백하듯, 이른바 회사의 '적폐' 들을 하나하나 청산해나간다. 일단 순간의 바쁜 순간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을 방기하는 습관을 상징하는, 사무실 한가운데의 커다란 '쓰레기 책상' 부터 치우고,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제대로 사과조차 할 줄 몰라 우는 모양 이모티콘이나 메일과 문자로 보내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얼굴 보고 사과하라' 라고 조언해주고, 부모로부터 제대로 독립할 줄도 모르는 젊은 사내들을 집에 재워주며 옷 입는 법, 면도하는 법, 식습관 등 생활 태도를 다시 알려주는가 하면, 일에 지쳐 남편과 아이에게 제대로 애정을 쏟을 줄 모르는 사장 줄스의 가정까지 세세하게 바로잡아준다. 처음에는 '웬 노인이냐' 뜨악해하던 젊은 직원들- 특히 사장의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갑작스레 신뢰를 받는 벤을 질투하는 여비서의 마음도 사로잡고, 남자 직원들에게는 이미 말할 것도 없이 큰삼촌이며, 심지어 공공연히 페미니스트임을 자부하는 줄스에게조차 '잭 니콜슨, 해리슨 포드... 이런 남자들의 맥이 갑자기 뚝 끊겼다가 어디서 이런 멋진 남자가 나타났죠? 맙소사, 지금 아기 같은 남자들은 모두 이 진짜 남자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요!' 하며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이쯤 되면 거의 브루클린의 오은영 박사님이신데요... 게다가 이 바쁜 와중에도 노년에 연애까지 하시다니요... 어르신...
그러므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예쁜 '어르신들을 위한 동화' 와도 같다. 장점을 찾자면, 이 영화는 연출이 무난할 정도로 잘되었다. 젊은 등장인물들의 정신없는 일상들은, 가사 한 줄 제대로 알아먹기 어려운 배경음악 팝송으로 상징되는데, 공원에서 태극권 수련하듯 시종일관 느긋한 벤의 배경음악은, 그들의 배경음악을 가라앉히며 마치 풍랑 속에 만난 예수님처럼 기준과 방향을 설정한다. 결국 동서양 모두가 갈망하는 '멘토 열풍' '상실된 어른들의 시대' 에서 벤은 요즘 찾아보기 드문 만능형 인자한 어른이자 스승의 역할을 수행한다. 거의 특별한 갈등이나 흔들림없이 늘상 최고의 해답을 제시하며 솔선수범하는 벤은 실제로 사회나 정치에서 누구나 갈망하는 어른의 모습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벤 주변의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필요 이상의 결핍과 약점을 드러내야 한다. '털난 아기' 처럼 묘사되는 현대 젊은 남성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운전 못하고 수다스러우며 그저 귀엽기만 한 서양판 김 여사' - 또다른 여성 노인 인턴이라거나 무엇보다 히스테리의 총체적 결집이라 할만한 여성 창업자 줄스의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여성 감독이 그려낸 여성 창업자가 '경험 많고 인자한 남성 사회인이 도와주어야 비로소 제 몫을 하도록' 그려지는 모양새는 다소 아쉽다. 아니면 내 스스로도 아직 흑인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성별 문제에 대해 편견없이 분석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된 모양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 백인과 유색인, 남성과 여성과 그 외의 성별, 계급적 차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희롱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올바른 사회인 것일까? 훗날 오체대만족 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 오체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젊은 시절 '팔다리도 없는 놈이!' 라는 욕설에 '그래서, 이 팔다리 붙어 있는 놈아!' 라고 했다던가. 조금 더 심도 있게 들어가도 될 주제를, 마치 무협지의 사제지간 썸타듯 어여쁘게 그려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몹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