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764일차 - 환경의 중요성!
어렸을 때에는 '공부하러 절에 가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내 방 자체가 (갑작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부모님의 천연 CCTV가 24시간 운영되는) 이미 하나의 독서실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구태여 돈 들여 독서실에서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사 했다고 한들 부모님께서 보내주지도 않으셨을 터이다. 총각 시절까지 훈련은 도장에서 주로 했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좁아터진 내 방에서 군계의 주인공마냥 혼자 훈련하기도 했다. 가득 쌓인 책과 곳곳의 단촐한 운동기구와 늙은 휴대전화와 낡은 넷북과 늘 숨겨다니는 작은 술병, 선풍기 하나 놓고 나면 딱 내가 누울 공간만 남던 그 방에서 나는 우주 같은 총각 시절을 보내었다. 그러므로 나는 구태여 환경의 중요성을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할 일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처자식이 생기고 나니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내의 성격과 상관없이, 한 사람이 내 삶의 영역에 끼치는 영향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던가. 나는 주말부부로 한 해 남짓 지내며 아내가 남긴 향취와 무게의 빈 틈을 그리워했다. 아내가 가고 나면 이틀 동안은 마음이 적적하여 어쩐지 신이 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하루키는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에서, 마치 인생의 결손처럼 움푹 패인, 간밤의 여인이 누웠다 간 침대의 흔적에 대해 절절히 묘사하고, 배명훈은 '청혼' 에서 역시 면회를 왔다가 주인공이 바쁜 새에 앉았다 가버린 애인이 앉았던 흔적을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인력에 대해 깊이 이야기한다. 제 손발 능히 놀리고 끼니 챙겨먹을 줄 아는 아내가 그러한데 하물며 갓난아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처자식이 생기면서 나는 익숙하지 않았던 삶의 파동에 좋든 싫든 늘 휘말렸고, 행복한만큼의 고민을 얻어야 했다. 몸의 군살이 늘어가고 힘이 떨어지듯, 삶의 고뇌가 많아지게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어깨가 닳고, 속으로는 그 동안 다쳐온 상처들이 곳곳에 쌓여 있긴 했지만, 책 읽는 속도가 떨어지듯 혼자서의 훈련이 줄어들게 된 것은 단순히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다. 내 스스로 삶이 번잡스러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도장에서 도복으로 갈아입을 때, 비록 사범님이 미쉐린 타이어나 마인부우 같다며 어서 빼야겠다고 놀리시긴 하지만 온 몸이 도복으로 감싸여 꽉 죄이는 그 불편함이 좋다. 마땅히 불편하기에 몸을 줄여 가볍게 만들고 싶은 것이며, 또한 마땅히 약하기에 늘 열심히 훈련하여 조금이라도 강해지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시자님께서는 도장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같은 도복을 입고 띠를 매며 도장에서 예를 표하고 태권도를 수련하는 이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하셨다. 또한 한 기술을 능히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마땅히 천 번은 훈련해야 비로소 몸에 익는다 하셨다. 아직 몸이 둔하여 백번도 제대로 채우기 힘드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어깨가 거의 나았으니 확실히 몸쓰기가 좋아졌다. 실은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고, 아직도 각도를 바꿔가며 어깨를 올리다보면 미진하게 뜨끔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깨를 들어올리기만 해도, 선생님이 가볍게 손만 대어도 찢어질 것 같은 그 아픔은 이제 없다. 어느 언어학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보니 외국어를 잘 배우기 위해서는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첫째는 말을 배우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감이라더니 바로 그렇다. 일단 어깨와 발바닥이 덜 아파 무엇을 하든 신경이 덜 쓰이니 몸쓰기가 편한 것이다. 나는 원래 뼈대가 약하고 몸이 단단하지 않아 늘상 어데서든 티내고 수선피우며 늘 팔굽혀펴기며 발 버티기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금세 또 둔하여 살찌고 마는 나약한 사람인데, 이제서야 겨우 마음 먹은대로 수시로 몸을 쓸 수 있으니 무척 즐겁다. 그리하여 어제 아내의 관대함에 힘입어 열심히 몸을 쓰고 왔다. 강신주 선생은 일찍이, 사람이 망가지는데 10년 걸리면 다시 살리는데도 10년 걸려야 마땅하다고 했으니, 몇년 동안 방치한 몸을 천천히 다잡아서 다시 예전만큼은 돌릴 생각이다. 한번 왔다 내려온 길이니 그래도 전보다는 더 쉽겠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