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빈곤함이 가끔은 서로 부딪힐 때.
비가 내리고 개기를 반복하는 요즈음, 일은 많고 마음은 번잡스러운데 술 한 잔 없이 기계 사이에 끼어 몸만 녹슬어가는 시간에 문득 따끈한 라멘 생각이 났다. 춥고 비오는 날, 돼지뼈를 오래 끓여 우린 구수한 국물에 탱탱한 면발과 고소한 돼지수육, 아삭한 숙주와 멘마, 반만 삶은 달걀을 얹은 돈코츠라멘은 별미 중에 일미다. 하여 회사 생활의 샘물 같은 점심시간에 잠시 밖에 나서니 맙소사, 이미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도로 바깥까지 줄이 넘쳐 길게 늘어섰다. 저 줄 끝에 서 있자면 알량한 1시간쯤이야 뚝딱 녹아 없어질 터라 할 수 없이 햄버거 한 조각 먹고 쭐레쭐레 돌아왔다. 감량을 다시 시작한 요즘, 점심시간의 한 끼는 무척 소중한 법이라 더 아쉬웠다. 하기사 강남 한복판에 내 알기로 먹을만한 라멘 집은 저기 한 곳뿐이니 안 그래도 학생, 회사원, 각종 연예인 지망생으로 넘쳐나는 이 곳에서 애시당초 점심시간에 라멘을 먹으려는 생각 자체였던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여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비 내리는 창문을 마주하고 햄버거나 우물우물 씹다 돌아왔다. 우울하고 힘든 날이었다.
일은 많고 몸은 닳는데 지갑과 마음은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술 한 잔, 도복 한 벌, 책 한 권으로 능히 풍요롭던 일표단사의 총각이 아니었다. 사회는 갈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는 새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있는 사람조차 줄을 세워 내보내고 있기에, 사람들은 할리우드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무너지는 피라미드에서 출구를 찾아 탈출하듯, 남은 직장들을 향해 서로 경쟁했다. 세상은 갈수록 상식이 어긋나서 1가구 1주택을 선언하고 강권하던 이들조차 '똑똑한 한 채' 랍시고 재산에 욕심을 보였고, 따라서 있는 자들은 어디서든 '소유가 가능한 지위' 를 내세워 아랫사람을 눌러먹으며, 심지어 노동자는 마치 물건처럼 부려지는 취급을 받아, 아웃소싱 이라는 이름으로 '인적자원'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말인즉, 법을 교묘하게 피하여 매해마다 직무에 필요한 사람을 택배받듯 교체해가며 채워넣으니, 이제 장기간의 직무교육 연수라든가 애사심, 평생사원-평생직업 같은 말은 정말 옛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새벽녘 출근하여 학생들이 하교하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퇴근하는데, 어느 시간대든 온 몸으로 개성을 뿜어내며 편의점 샌드위치와 커피, 컵라면 따위를 들고가는 젊은 남녀들을 종종 본다. 하나같이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코가 오똑한 잘생긴 청년들과 긴 다리와 윤기나는 생머리, 자랑하듯 드러낸 가느다란 허리를 찰랑이는 미모의 처녀들은 제각기 뒤엉켜서 와글와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춤 연습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건물 안에서 차량 소리가 무색하게 고음의 발성을 내지르기도 한다. 누군들 속세에서 밥 한 술 마음 편히 뜨는 일이 쉽지 않으니, 이 한 몸 비벼넣을 세상의 그늘이 어찌 또 없으랴만, 가끔은 나만 믿고 내 뒤를 따라올 처자식을 생각하니 마음이 깊이 짓눌린다. 책 그만 읽고 기술이라도 배워둘 걸 그랬나, 껄껄.
이런 날에는 아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안 그래도 그제 도장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께서 반나절쯤 딸아이를 봐주셨는데도 아내는 속 깊은 곳까지 지치고 닳아버려 입술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큰 키가 주저앉도록 어깨와 입술을 늘어뜨리고 오도카니 앉아 유축하는 모습이 버려진 곰인형마냥 가여웠다. 어찌된 일이냐 물으니 힘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살찟어예, 몸도 가립고, 기운이 한나또 없네, 어머이도 소은이가 낮에는 계속 놀아만 달라카고 잠을 안 자이까네 을매나 힘들어 하시던지... 수영으로 늘 몸을 단련해오던 아내는 갈수록 불어나는 몸도 신경쓰이는데, 원래 앓던 아토피까지 심해진데다 갈수록 활발해지는 아이에게 눈과 손이 많이 가니 그저 막막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날에는 나도 잠시 도장을 다녀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하루 더 있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도장은 도장대로 나가야 하고, 가정은 가정대로 돌봐야 하는데, 든든하게 돈 하나 척척 못 불려오는 내 스스로가 안타깝다. 아내의 우울은 생각보다 깊어서, 결국 어머니는 피곤해서 정신 못 차리는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를 잠시 데려가셨고, 아내는 어제 내가 퇴근하도록 늦잠을 잤는데도, 여전히 기운이 돌아오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를 돌보느라 다른 일을 돌볼 수 없었고, 아이가 없으면 그제서야 미뤄둔 다른 일을 하느라 아내는 늘 바빴다. 내가 퇴근 후 가정 일을 도맡는다고 해도, 아내는 아내의 직장을 비롯해 또 아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사는 것이 참으로 이토록 번잡하고 어려워, 어째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 던져진 죄인인지 알 것 같았다. 저 고집쟁이 난삽한 하이데거가 말하듯, 피투성이의 피투성(被投性) 존재들. 근데 하이데거, 의처중으로 뻑하면 이혼하지 않았었나, 본인도 결혼생활에 던져진 사람이었나?
아이가 없는데도 아내는 유축을 하면서 계속 한숨만 내쉬었다. 피로가 몸 속 깊이 절여져 떨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불어난 살 때문에 평소 즐기던 미식도 입에 당기지 않는 눈치였다. 마음 같아서야 감량만 아니었으면 나도 비를 핑계삼아 또 한 잔 했을터이지만 대회도 앞두고 있고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아니하였다. 아내는 이도 없는 주제에 갈수록 힘이 세지는 소은이가 끼니 때마다 거칠게 물어뜯어 상처투성이의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비치는 새파란 실핏줄을 보자니 울컥 코 끝이 찡했다. 나는 빨래를 접다 말고, 아내에게 나가자고 채근했다. 집 안이 습하기도 했지만, 몸과 마음이 답답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는 언제나 바깥 세상에서 묻혀온 때와 잡념이 끼어 있고, 아내는 집에 갇혀 우울과 답답함이 늘 폭발하듯 쌓여 있다. 평소에는 늘 둘 중 여유가 더 있는 사람이 여유가 없는 사람을 보듬었지만, 어제는 드물게 아이가 없는데도, 아니, 오히려 아이가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바닥나 빈곤함이 여실히 보였다. 아내도 나도, 닳아진 모서리가 곳곳에 날카로워서 생각없이 말을 던지거나 행동했다가는, 고슴도치마냥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찌를 것 같았다. 아내도 그러한 낌새가 있었던지 선선히 그러자고 일어섰다. 크고 작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엇걸고 우산을 달랑거리며 안양천으로 나갔다.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는 안양천에는 웬일로 사람이 드물었다. 며칠째 내리는 비 때문에 한강으로 흐르는 지류가 제법 불어, 강가의 차들은 권고를 받고 멀리 피했다. 전체적으로 한산한 날이었지만,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옥수수를 구워 팔거나,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색소폰을 불거나, 혹은 조용한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법륜공을 수련하는 어르신들을 여전히 보였다. 어쩐지 이 분들은 물이 넘쳐 모든 것을 쓸고 돌아가도 다시금 그 폐허에 나와 풍경처럼 주변을 장식하실 분들이랑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걸음에 취한 듯 말없이 오래 걸었다. 늘 발랄하던 아내가 이처럼 말이 없는 날은 드물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고, 나 역시 그렇기에 나는 옆에서 자방자방 수다를 떨면서 아내의 마음을 덜어주었다. 아내는 천변으로 마실 나온 민물게를 보며 즐거워했고, 세찬 비에 기세가 죽은 보랏빛 무궁화를 안타까워했다. 아이 없이 나온 아내는 마치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쭉쭉 걷다가 비로소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내가 항상 모자라고 말주변도 없어서 재미 없지러? 여보야가 항상 내 챙겨줘서 고맙습니데이~ 사실 파락호처럼 살던 나를 거두어 행복하게 해주고, 책임감도 가르쳐준 사람은 아내다. 나는 아내가 여유를 찾아서 기뻤다. 사람의 몸은 신기해서, 늘어져 닳아진 것을 그냥 두어 썩히지 말고 오히려 조금씩 흔들고 늘려서 자극을 주면 생기가 또 움튼다. 아내는 옆에서 끝말잇기도 하고, 꽃과 나무 얘기도 하면서 즐거워하다가 갑자기 말했다. 참 신기하지, 소은이 없으모 몸은 편한데, 눈 앞에 삼삼~하데이, 또 보고 싶고, 벙긋벙긋 웃는 것도 생각나고, 아이고, 그리브라. 사실은 나도 그래서 웃고 말았다. 디지털 증강현실로 복원했다는, 황룡사 사찰마냥, 소은이의 웃는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겹쳐져서 어쩔 수 없는 애비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다만 아내가 힘들까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아내는 꼬박 2시간을 걸어서 겨우 기운을 차렸다. 물론 돌아오는 길을 30분쯤 남겨두고는, 그 큰 몸이 지치고 힘들어서 바람 앞의 대나무숲 같길래, 내가 팥빙수를 사준다고 꼬셔서(?!) 겨우 집에 모시고 왔다. 아내는 아, 살 빼야 되는데 또 팥빙수 먹어뿌모 안되는데에~ 하면서도 신이 나서 따라왔고, 아이고, 오늘 2시간이나 걸었응게 팥빙수 반 그릇 저도는 먹어도 된당게, 하면서 억지로 수저를 쥐어주었다. 공복에 2시간을 걷고, 팥빙수 반 그릇에 녹아버린 아내를 먼저 씻고 자라고 올려보내고, 나는 비가 오기 전에 또 물 여섯 통 지고 올라와 정리하고, 팔굽혀펴기와 복근 운동과 유연성 운동을 하고, 씻고, 집 정리를 하고 책을 읽었다. 조금씩 깨기 시작하는 내 몸은 2시간 걸음에 녹아서 시큰시큰 쑤셨다. 술 한 잔 하고 잠들면 좋았겠지만 겨우 목젖을 눌렀다. 총각 시절, 나는 술로도 내리누를 수 없는 그리움이 맺힐 때, 같은 길을 3번씩 걸으며 방황하곤 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계속 같은 길만 맴도는 허깨비 같은 길일지도 모른다. 다만 데카르트의 말처럼, 내 손을 붙잡는 아내가 있음이 진실이라, 나는 오늘 푸지게 걸었다. 오래 걸었다. 그래서 나는 열시쯤에 칭얼거리는 아내 곁에서 오래 잠들었다. 아내조차도 밤샘 유축을 건너뛸 정도로 달고 고단한 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