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자와할랄 네루, 곽복희 역, 세계사편력, 일빛, 2004

by Aner병문

아내가 딸을 낳느라 2박 3일간 무통 주사를 맞고 끙끙거릴 때, 잠 한 숨 못 자고 그 옆에서 한 손으로는 손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며 코스모스를 다 읽었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고 했다. 이후 나는 내 첫 딸에게 네루 같은 아버지는 못 되어도, 닮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는 되고 싶어서 세계사편력을 곧바로 읽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느라 늘 감옥에서 'ㅈ뺑이' 치고, 또 그 와중에 '사랑한게 죄는 아니잖아!' 낭만적인 불ㄹ.. 아니, 사랑까지 나누느라 바쁜 와중에도 딸의 공부를 걱정하여 장장 3년간 200여장에 달하는 편지를 써서 세계사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려준다. 이 편지들을 모아 간행한 책이 그 유명한 세계사편력이다. 제아무리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변호사 출신이라 할지라도 참고 도서 조달도 쉽지 않았을 상황에서 인류의 문명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을 전해주고자 애쓰는 아버지라니, 정말이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작품들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예전만큼의 열광이 많이 줄었듯이, 세계사편력에도 약점은 드러난다. 하나의 역사서로 기반하기에는 '편력' 이라는 이름처럼 각 내용들이 자세하지 못하고, 인도-영국을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아무래도 편중되어 있지만, 반면 4대 문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도 고대의 자세한 내용이나, 다른 역사서가 잘 다루지 않았던 이슬람 국가들의 역사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기도 한다. 역사의 간극을 펄쩍펄쩍 뛰어넘는 듯한 1~2권에 비해, 세계 1차 대전부터 2차 대전 직전까지를 다루는 3권은 비교적 두께가 차이가 나고 네루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훨씬 많이 들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사회주의와 소련에 대한 찬양이다. 네루는 그 스스로가 고전 맑시스트라는 점을 몹시 자랑하고 싶었는지, 어린 딸에게 사회주의의 장점에 대해 기술하고, 레닌의 뒤를 이은 스딸린이 소련을 어떻게 운영했으며, 그의 5개년 계획은 어떻게 소련을 단기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만들었는지 자세히 썼는데, 훗날의 역사를 아는 우리로서는 다소 입맛이 씁쓸할 뿐이다.



한 마디만 더 나아가자면, 네루는 맑스의 영향을 깊이 받아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되어 있으며 그 근거 중 하나로 대공황을 들었다. 1차 대전 이후 비정상적인 특수 호황을 누리던 미국과 그 미국으로부터 돈을 빌린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승전국들, 그리고 그 승전국들에게까지 빚을 진 독일 또한 미국에게 다시 돈을 빌리는 등, 대공황의 시작이었던 '검은 목요일' 로 상징되는 주가 대폭락부터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명확치 않다. 여러 석학들조차 난해한 요인들이 결집되어 폭발한 대공황의 원인을 분석하기 어려워한다. 대공황 기간 동안 영원한 영웅-수퍼맨이 고안되고 '신데렐라맨' 제임스 브래덕이 다시 한번 노장의 투혼으로 챔피언이 되었으며, 비교적 타격을 덜 받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세력들 또한 크게 융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것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몰락의 운명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물론 전후 특수 호황을 누리던 공장과 농장들이 노동자들을 놀릴 수 없으니 계속해서 생산량을 늘려나가는데도 돈이 없어서 농산물이나 공업품을 살 수 없었고, 가격을 지키기 위해 생산품들을 불태우거나 바다에 처넣고, 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자 정작 필요한 돈들은 주식에 투자되거나 부자들의 금고에 꽁꽁 숨겨져 있는 등, '필수품만은 배급해주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의 방식은 여러 사상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쳤을 터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불황이 찾아오는 지금, 아무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가 우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수정이 가해지며, 또한 새로운 경제 체제가 도입된다면 역시 사장되겠지만, 아직까지도 전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저 책 몇 권 읽은 아재의 너무 지나친 생각인가. :p




여하튼 즐겁게 읽었다. 오랜만에 밑줄 뽝뽝 그어가면서, 메모도 하고, 학교 다닐때처럼 즐겁게 읽었다. 그래도 3권 중간쯤 가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네루에게 질려서(화폐 경제에 대해 편지 몇 장씩 얘기하는데, 전세계 아버지는 다 똑같구먼, 나도 이래 되려나~ 싶을 정도였음) 잠시 다른 문학책도 읽고, 다른 인문학 서적도 읽고 그랬다. 여하튼 큰 책을 다 읽었으니 잠시 문학을 또 읽다가, 늘상 몇 번씩 읽다가 멈춘 '미학 오디세이' 를 다 읽고, 그 다음은 유발 하라리 로 넘어가야겠다. 강신주 선생의 필생의 역작 '철학vs철학' 개정판을 이번에 샀는데, 두께가 무려 1/3 가량이 더 늘었다.. 진짜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사람 두들겨 팰 기세...이런 책은 매일매일 조금씨 읽어주어야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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