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타이요, 김완 역, 죽도 사무라이, 애니북스, 2009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철콘 근크리트' (오타 아님)로 유명한 마츠토모 타이요의 시대극, '죽도 사무라이' 를 사실 몇 년 전부터 살까 말까 고민은 하고 있었다. 화풍이며 서사는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빌려보고 살지 말지 결정은 하고 싶은데, 주변 도서관에서는 영 없고, 그렇다고 사자니 당시 월 3만원으로 한 달 버티는 총각 주제에 권당 만원이 넘어가는 만화책을 덥썩 살 살림은 안되고, 늘상 만날때마다 밥이며 술 사주는 친구들에게 생일이랍시고 세트 한 질 마련해줘- 했다가는 책 모서리로 찍히기 십상이겠지, 하여 몇 해고 살까말까 고민하다 잊다가 하던 나날들을 반복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내 생일에 교보문고 상품권이 제법 들어왔으니 때는 이 때다! 하고 강신주 선생의 개정판과 자주 읽던 한강의 소설 한 권, 그리고 오매불망 한번은 봐야지 했던 죽도 사무라이 를 사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그 동안 이 책에도 많은 사연이 있었는지 4권과 6권이 절판되어 있었다. 하여 중고 서적에 알아보니 4권과 6권은 한 권당 3만원씩 받고 있어....?!! 이 빠진 것마냥 굳이 두 권씩이나 없는 만화책을 신간으로까지 사볼 필요가 있나 싶어 교보 중고장터로 가니 때마침 한 질이 온전히 있긴 했는데, 이번에는 '교보 중고장터' 라면서 교보 캐쉬 결제가 안돼...?! 게다가 결제 수단 4 종류가 모두 오류가 나?!!! 아니, 대체 무통장 입금은 왜 안되는거야?!! 이러구러 책 한 질 구매하기까지 고민에 근 4~5년, 결정에 하루, 결제는 1시간, 고객센터로 전화하여 화내는데 2시간(아내는 이때 내가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이 걸려서 무사히 책을 받았다. 덧붙여 나는 한 번 화를 내면 빠르면 당일, 늦으면 1주일 내로 그대로 혼이 나거나 돌아오는 '억울한' 징크스가 있어서 여간해서는 진짜 화를 안 내는 편인데, 이 상황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얘기할때가 있을 터이다.
여하튼 난리를 치고 구매한 책은 잘 왔다. 책 8권이 든 상자가 생각보다 얇고 가벼워서, 이거 뭐야, 내가 속된말로 ㅈ랄 했더니 사기 먹은거 아냐? 싶었는데 미우출판사에서 독점계약한 심야식당마냥 책이 얇고 가벼웠다. 다만 마츠모토 타이요 특유의 '간살스러운(?!) 선과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묘사, 연출이 빼곡해서 좋았다. 뛰어난 검술을 지녔지만 그 솜씨를 숨기고 죽도로 진검을 대신하며 초야에 묻혀사는 느긋한 검객 이야기는 '바람의 검심' 같은 일본 만화뿐 아니라 온갖 무협지를 넘어 서부극까지 영향을 준, 클리셰 중에서도 상 클리셰다. 다만 여우를 닮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단 것과 아이를 좋아하고, 화살잡이 기생에게 며칠씩 몸과 마음을 주고, 스스럼없이 검을 놓아 손의 굳은살을 물렁하게 하고 몸을 녹슬게 하는 등 겉보기에는 도무지 사무라이 답지 않은 한량이지만, 한편으로는 애검 쿠니히사의 망령에 씌어 남몰래 검술을 자랑치 않고는 못 배기는 사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에도에 올라온 세노는, 곤궁한 주머니 사정 운운하며 진검을 팔아치우고 죽도를 대신 허리에 차지만, 그것만으로도 능히 에도의 모든 도장들을 남몰래 깨고, 입막음조로 용돈까지 받는다. 이러니 팔자가 늘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있나.
'한시치 체포록' 에서도 잘 나오듯, 당시의 에도는 이른바 '창 찌르기' 라고 하는 괴악스러운 장난질이 성행하였다고 했다. 장난질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게, 진검 수련을 받은 사무라이들, 혹은 전상 증후군을 앓은 상이용사들이 제 솜씨를 시험해보고자 야밤에 창으로 사람을 찌르고 도망가는 일이 속출했다. 훗날 폐도령에 반발하는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이 '창 찌르기' 는 에도를 상징하는 극악한 연쇄살인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므로 죽도를 차고 다니는 이방인 검객은 어딜 보나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연쇄살인으로부터 촉발되는 거대한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세노 소이치로는 '늘상 사람을 베고 싶어하고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제 몸 속 도깨비를 누르고자 서당 훈장도 하고 아이들과 소풍도 나가지만, 그를 노리는 짐승 같은 검객 키쿠치의 접근은 시시각각 도를 넘어간다.
어찌보면 슬램덩크로 이미 걸물에 속하는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배가본드' 의 축약판 같은 만화다. 극중 의성어들을 표현하기 위해 캘리그라피까지 개발했다는 얘기치고는 만화가 약간 난삽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만화를 다 읽고 나면, 여우를 닮은 주인공이 몹시 친숙하고 잘생겨보이기까지 하리라 생각한다. 애 재워놓고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층층이 쌓아두고 후루룩 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