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꽃 꺾어 수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
그러므로 모처럼 우리 동네로 온 너와 마주앉았을 때, 이제 막 문을 연 듯한 후텁지근하고 어두운 육회집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셨을 주방 이모님이 예쁜 아가씨랑 같이 왔으니 이걸 줘야지~ 하면서 하트 모양 소주잔을 주시길래 웃고 말았다. 너와 술을 마시면 종종 있는 일이다. 어데서는 공짜 술을 1병 받기도 하고, 더 잘해주라며 내 어깨를 치는 분들도 있다. 마치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아오이가 마빈과 사귈 무렵에 입던 '아메리칸 걸' 같은 하얀 반바지를 입은 이 아가씨는 내 오랜 친구이고, 내 아내는 지금 아이를 어머니께 맡겨두고 잠시 회사에 내려가 있다고, 늘상 설명하기가 어렵고 귀찮아 그렇게 두었다. 말이란 때때로 지나치게 부산스러우며 근천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너와 십 년 세월이 쌓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러고보니 짧은 반바지를 입은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자주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아오이를 생각했었다.
결혼하고 나니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좋지만, 또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이 있다.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한강 식으로 말하자면, 무엇을 잃음으로 해서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얻음으로 해서 무엇을 잃는지 늘 가늠하며 조바심치는 것이 인생이다. 아내가 육아 휴직 중인데도 갑작스럽게 승진 대상자에 포함될 줄 몰랐고, 생각보다 가능성이 높다며 그 동안 일해온 흔적들을 정리하여 제출해야 했으며, 아내의 자료들은 함부로 바깥으로 돌 수 없는 것이었기에 결국 아내는 부득이하게 아이를 다시 어머니께 맡기고 회사로 내려갔다. 아내의 회사는 한때는 대기업의 제조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제법 북적였지만, 이제는 사람 값이 더 싼 나라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통에 특산물 미나리나 삼겹살과 함께 구워 팔아야하는 시골 도시에 있었다. 아내는 그 곳에서 흙을 밟고 물을 마시고 나무와 꽃과 벌레를 보며 지냈었다. 사람을 값 매기는 물건으로 쳐서 들이고 보내고 자르고 멈추기가 쉬운 요즘, 아내는 너와는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에 민감한 여인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없을 때 '맥주 한 잔 사주겠지 뭐~' 하며 참새처럼 깔깔 웃으며 우리 동네로 날아든 너와 술을 마신다고 했을 때 아내는 감사하게도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너는 한 달 동안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서 잠시 점심 알바를 한다고 했다. 서울 반쪽을 건너오는 출퇴근에 무쇠처럼 힘든 업장 일이라니, 장정도 쉽지 않은 일을 몸 약한 네가 버티려나 싶었다. 맥주잔을 채우면서 너가 빗소리처럼 웃었다. 어쩌겠어, 맨날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들고, 나 나와도 좋다니 덥썩 잡았지 뭐. 그렇게 말하는 너에게도 세상의 번잡함과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가 피곤할텐데도 멀리 서울을 건너 그렇게 와줘서 고마웠다. 너는 십 년 전에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서울을 건너 나를 보러 왔었다. 나는 그 때 친구 대규를 보기 위해 야밤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밤새 강을 건너던 진나라의 왕휘지를 생각했었다. 그 때의 나는 얼마나 경박했던가, 그 때보다 지금의 나는 또 무엇이 달라졌나. 부끄러우니 술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처자식을 건사해야 하는 사내는 감히 함부로 우울할 수 없다. 다시 읽은 한강은 여전히 유려했지만, 내 속이 복잡하여 나는 올바로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이제 총각 시절처럼 술 한 잔 떠다놓고 읽는 문장 그대로 스며들듯 빠지는 일은 내게 더 멀어지는 일인가 보다. 아비이자 남편이 된 내게는 이제 너무 속세의 때가 덕지덕지 많이 끼어버리었다. 처자식이 있으면 있는대로 바빴고, 없으면 또 없는대로 도장 일이며 몇 안 되는 친구들 챙기기도 수선스러웠다. 그러므로 마치 황진이 억지로 밀어내는 지족선사처럼 또 조금씩 마음을 잠식해오는 한강을 읽다가 나는 원래 도장을 갔어야 할 일이었다. 우울로부터 도망가듯 샌드백을 치고, 아령을 들어 몸을 휘두르고, 그랬어야할 저녁이었다. 그 저녁에 예전처럼 찾아온 너가 스스럼없어 반갑고 좋았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쓰지 못할 글이 있고, 너무 가까워서 하지 못할 말이 있다. 그러므로 행여나 아내에게 옮아갈까 두려워 감춘 말들은 나는 너에게는 할 수 있었다. 나는 너와 십 년 세월을 쌓으면서 너를 아프게도 하고, 혹은 내 스스로가 다치기도 하면서 사람마다 거리와 두께와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매번 실감했었다. 모순적이게도, 너는 내 속내를 다 헤아려줄 정도로 가깝지만, 또 그렇게 솔직한 뒤에도 부담없을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안양 집이 보고 싶다며, 늦게라도 비를 헤치고 다시 올라온다는 아내를 마중하기 위해, 너와 나는 예상보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멀리 온 너에게 미안하게도, 솔직히 육회와 생고기는 밋밋하고 밍밍하고 미지근했다. 오히려 하루 세 접시만 나온다는, 생고기 옆 부위를 간장 양념에 절여 구워 내놓은 특수부위가 밥 생각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늙어가는 몸을 생각하지 않고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너와 술을 마셨다. 친구란 그래서 좋은 것이다.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내리며 어두워지는 밤거리에서, 근무를 마친 사내들이 퇴근길에 하나 둘씩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너는 늘 그렇듯이 먹지 않는듯이 먹었고, 마시는가 싶을 정도로 마셨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안주는 없어지고, 빈 병은 늘어가고 있었다. 나는 늘상 조금씩 움직이는 너의 알사탕 같은 볼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너의 왼쪽 눈썹은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들어올릴 힘도 없어보이십니다, 허허.
그러므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임성순을 생각했다. 그 역시 천명관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영화판에 있다가 뒤늦게 소설을 썼다. 데뷔작인 '컨설턴트' 는 암살을 설계하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김언수 선생의 '설계자들' 과 닮은 면모가 있다. 선배 동문이시기도 한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날, 느닷없이 치밀어오르는 취기에 속엣것을 다 게워내면서 생각했다고 했다. 아, 나는 언젠가 이 슬픔까지도 글을 써서 팔아먹고 살겠구나. 노을지는 길에서 혼자 취기로 구토하면서 젊은 작가는 모든 것을 글로 써야 하고, 또 그것을 밥과 돈으로 바꾸어먹어야 하는 삶의 비루함과 근천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던 모양이다. 너의 주변 이야기와, 꾸역꾸역 살아가야할 억척스러움과,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도 그와 맞닿아 있을 터이다. 너는 술자리 막판에 오래 전 내가 몰리고 몰리다 결심해버린 과거의 일에 대해 물었다. 당시 너는 나와 연락이 끊겨 삶의 어드메에서 너를 비워내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그 때 묻어놓았던 어떤 것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내장처럼 쏟아져나온 기분이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술을 마셨다. 삶은, 또한 그렇게 숨기고픈 결핍들 위에 위태롭게 쌓여 있다.
너는 늦지 않게 돌아갔다. 계단을 총총 오르며 돌아가는 네 뒷태가 여전히 젊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회사 나다니는 청바지 차림으로, 오랜만에 총각 시절처럼 역에서 역으로 이어지는 밤길을 혼자 걸었다. 월요일 늦은 밤이라 평소처럼 운동나온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나는 샌들을 신고 아주 오래 걸었다. 앞서 말한 왕헌지는 산음에서 섬서까지 친구를 보러 밤새 배를 띄워 달렸지만, 막상 동이 터 친구의 문 앞에 당도하자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흥이 돋아 찾아갔고, 흥이 깨어 돌아왔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취흥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그의 합리성은 존경할만한 것이다. 나는 반쯤 취한 상태로, 혹시나 강물이 넘칠까 두려워 노천 주차장에서 도로로 기어올라온 뺵빽한 차들 사이에서 30분간 버스를 기다리다 끝내 택시를 타고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 때 아내는 땀투성이의 내 손을 잡으면서 상긋이 웃었다. 보고 싶어가, 안양 집이 보고 싶어가, 거기가 내가 잘 집이니까는, 늦은 밤에 내 데리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데이, 할 때 나는 아내에게서 너와 닮은 모습을 보았다. 친구를 보기 위해 밤새워 배를 달리며, 서울의 등뼈를 가르듯이 2시간이 넘어 내려오고, 늦은 밤에도 끝내 비를 뚫고 열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은 삶의 외로움이 잊혀진다. 아내에게도 잊지 않고 늦지 않게 돌아올 수 있는 즐거운 술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