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나만 그러한가.
애초에 모르면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지만, 알기에 부끄러운 마음을 든다고, 유가의 선현들은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부끄러울 치 자는 귀 이 에 마음 심 을 더한다. 듣고 알았을 때 부끄럽다면, 마땅히 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올바로 배우고 실천해야한다. 그러므로 유가의 공부는 윤리와 맞닿아 지성이 곧 인성이 된다. 이른바 세상 말로 “테크니컬 “ 한 공부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배웠음에도 좀처럼 아는 경지에 닿지 못한다면 어떨까? 나는 태권도 교본의 기술들을 어느 정도 알고, 보아 익혔으나 그대로 하기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때 하였으나 포기하였으며 빈한한 인고의 세월을 거쳐 인준과 학위를 받은 이들과 감히 비교할수 없다. 회사의 교육 일 역시 개념부터 가르쳐야한다 하는 사실은 알지만 늘 하다보면 삼천포 수락산으로 빠지며, 부모로서도 힘을 내어 자식을 이끌어주고(?) 싶지만, 현실은 지치고 늘어져 어서 아이가 잠들기만을 바란지 두어달 되었다.
하려고 했는데 되지 않는다, 알긴 아는데 어느 틈에 나도 모르게 그리 되었다. 건조하게 감정을 걷어버리고, 거리를 두어 문장만 보면 얄팍한 핑계처럼만 들리는 말임을 나도 안다. 그러나 세상살이 매사가 대부분 이리 흘러가니, 참말 내 마음과 같은 것이 드물다. 그래서 증자가 공부자께 도를 물었을때, 공부자께서는 오직 하나ㅡ용서할 서 자를 주시었다. 같을 여 에 마음 심 을 붙인 글자. 예절 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가 마땅히 같길 바라는 마음.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안세하 배우가 부른 비상을 듣는다. 젊은 시절, 스스로 못 그린 자신을 누군가 함께 그려주길 바라다 빈 구석의 마음을 지니고 떠나버린 유재하 선생을 듣는다. 비는 하염없고, 가끔은 모든 것이 덧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