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by Aner병문

나는 최근에 맞벌이부부의 구성원인 며느리를 도와주시느라고,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밥반찬에 고량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직접 밭에서 기르신 미나리를 무치셨고, 열무를 겉절이로 담그셨다. 손녀 먹으라고 껍질 바깥으로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고등어를 구우셨고, 두툼한 오징어를 사다 손수 잘게 썰어 간장 양념에 볶으셨으며, 하는김에 닭도 두마리나 토막쳐 탕으로 볶으시었다. 정말이지 갓 구워 기름방울이 이슬처럼 흐르는 첫 고등어 뱃살을 입에 물었을때 나는 이미 그때 술을 마시고 싶었다. 이틀을 기다려 아내의 허락을 받아 오십도의 고량주를 마시며 육해공 산해진미가 가득한 밥반찬을 먹었고, 처자식과 팥빙수를 먹으러 동네 빵집에 다녀왔고, 이후 오페라 독창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걷어 정리하고 집을 치웠다. 한번의 술상을 받을 동안 아내가 아이를 보았으니 당연하고 미안한 일이다. 그 때 아내는 나더러 지루하게 웬 클래식이냐고 했고, 나는 픽 웃으면서, 아따, 이 사람아, 이거이 다 로마 귀족의 취미여, 술 마시고이, 얼음에 설탕뿌려먹고이, 그때 아니면 못 듣는 음악을 잡아다 계속 듣는 것이여.



여기까지 얘기하다 문득 술에 젖은 뇌 한구석에서 벼락이 쳤다. 그 유명한 아옌데의 조로를 읽다 나도 비로소 알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병기 역시 맨손무공과 마찬가지로 거리ㅡ즉, 간합의 싸움이었고 그러므로 스뻬인을 비롯한 남미의 검객들은 훌륭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에서 보듯이 그들은 전 대륙을 방랑하며 자신들의 검술과 이론을 사용해줄 영주들을 찾았고, 가장 큰 원에서 작은 원으로 거리를 좁혀가며 검을 부딪히는 법을 익히도록 했다. 서유기 수호지에서부터 이어진 무협소설의 역사처럼, 결국 기연처럼 그때 아니면.배울수 없는 기술을 익히듯이 모든 예술이란 결국 근대 이전에는 특별한 계층ㅡ계급만이 순간을 향유하는 것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이후로 예술이란 산업의 논리로 적용되어 대량생산된 작품들은 더이상 순간이 순간이 아니라 평소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므로 기연을 빌어 학식과 무공을 쌓는 시대가 아니듯 이제 모든 순간이란 더이상 덧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원한다면, 가치가 있다면, 언제든 순간은 통조림처럼 박제될수 있는 시대에 산다. 다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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