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서로 나뉘어지는.비극을 만든다.

by Aner병문

묵자는, 공맹 중심의 유가를 비판하면서, 혈연ㅡ종법 중심의 유가는 당연히 자신의 가족을 우선적으로 사랑할터이니 이기적일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모두가 만인평등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겸애를 부르짖었다. 그 반론을 들은 맹자께서는, 그러한 이론은 가족도 안 꾸려보고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는 철부지의 망상이라며 일축한다. 하기사 묵자는 미처 땅을 얻어 집을 짓고 가족을 꾸리기도 전에 천하를 떠돌며 물건팔고 상업에 안주하는 상인들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그 스스로도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과 전투 기술을 보유해하기도 했으며, 묵자의 가르침을 받드는 묵가의 제자들은, 거자 라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쳐 약자를 보호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강자의 군대를 중간에서 대신 막는 의협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나라 말, 그 유명한 이지 탁오가 번지가 농부에게 농사의 비결을 묻자, 공부나 열심히 하지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쓴다는 공부자의 타박이 실린 논어의 구절을 들어, 고대 유학의 허례허식을 비판한 나이가 불과 아홉살. 청대 말의 선비 강유위ㅡ 캉유웨이는 비록 유학의 기틀을 완전히 벗어날순 없었으나, 엄복, 담사동 과 같은 변법운동가들과 함께 홍콩을 유랑하며 최신의 과학기술과 병법, 법학, 정치학 등을 배웠고, 서양열강에게 해체되기 직전의 조국 청나라를 걱정한다. 후대의 거장 이택후 선생도 지적하듯, 그 당시 청나라 선비들의 변법운동이니 개량사상 역시 유학의 기틀 내에서 서양을 이해해보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강유위의 사상 역시 원시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공상주의적 공산주의의 한계를 긔복할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사적 소유가 인간 본연의 욕망임을 알면서도 그를 부정해야 비로소 근대화가 일어난다는 모순적 주장을 하게 되며, 그조차도 태생적 봉건 지주 출신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를 맞이한 무사들이 유술과 유도와 가라테로 나라의 굳건함을 꾀하고, 중국의 의화단 역시 원래 의화권을 배우던 집단이었듯이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위기를 맞아 자신의 자리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엘리뜨 수재들의 마음은 한 가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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