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다시 한 번
강유위가 프랑스 혁명사를 써서 청나라 고위 관리들에게 바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비록 커다란 대동의 이상을 품긴 했으나, 그 대동은 조선 정여립의 대동도 아니었고, 삼천년 전 공부자의 대동을 끌어와 서양 외세에 맞서고자 했던 개량된 대동이었기에 그는 실로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사회 변화를 서서히 꾀하고자 했다. 이택후 선생 스스로도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할 정도로 담사동은 급진적이고 성급했으며 모순적이었다. 때는 이미 자본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온 서양 제국주의의 선발대들이 신과 돈의 이름을 빌어 동양을 유린하던 때, 일본의 무사들은 행정관료가 된지 오래였고, 그나마 시세를 읽는다는 이들이 네덜란드로부터 유래된 난학蘭學을 익히며 개화를 꿈꾼다. 막부에서 공식적으로 뽀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때를 정해 세계 정세를 전해듣던 당시 일본과 달리 조선 역시 나름대로 외세와의 적절한 소통 창구를 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렇듯 동양 삼국이 가치의 혼란을 맞던 그즈음, 담사동이 제아무리 뛰어난 학식과 무공을 지녔어도 아직 젊은 그에게 다양한 가치관들의 원숙한 조화는 당장 기대하기 어려웠을터이다. 그러므로 그는 유생도 신사도 아니요, 관념론자도 유물론자도 아니요, 승려나 도사나 허무주의자도 아니요, 모든 영역에 발을 걸쳤으나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은 데까당스로 일생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