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 4 - 살육의 관성,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 주연 키아누 리브스, 견자단, 빌 스카스가드, 이언 맥셰인, 그리고 스캇 앳킨스, 존 윅 4, 미국, 2023.
그러므로 슬램덩크로 이미 유명세를 떨친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본인의 섬세한 필체에 수묵화의 감성과 무겔를 더하여,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원작의 배가본드를 그릴 때, 사슬낫의 달인 시시도 바이켄의 이름을 빌린 소년 산적 츠지카제 고헤이는 보장원의 창을 꺾고 성장해가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칼에 손가락을 모두 잃고 쓰러진다. 그때 시시도 바이켄도, 원래의 잔학한 살인귀 츠지카제 고헤이도 아니게 된 소년은, 피에 젖은 뭉뚝한 손으로 미야모토 무사시의 멱살을 쓸어내리며, 자신은 이제 그만 이 지독한 살육의 나선에서 내려가겠노라고, 훗날 당대 최고의 병법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미야모토 무사시- 신멘 다케죠도 어느날 패배하게 된다면 자신과 같은 꼴을 맞게 되리라 속삭인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듯,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녔다 한들 노쇠는 피할 수 없으며, 얼마나 강했던지 한 번 치면 사람들이 줄줄이 쓰러져 죽어 두 번 칠 필요도 없다던 팔극권의 달인 신창 이서문도 결국은 쌓이고 쌓인 원한에 독살당해 죽었다. 그러므로 신필 김용 선생의 단편 소설 원앙도에서 원도와 앙도에 새겨진 천하제일의 비결이란 다름아닌 4글자, 인자무적 仁者無敵 이었으니, 진정으로 강한 이란 모두를 찍어누르는 강한 손발이나 무기를 지닌 이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이미 완성되어 적이 있을 수 없는 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관성이 붙기 시작한 삶을 되돌리지 못한 이도 있다. 1편에서의 존 윅은, 사랑하는 아내와 평범한 삶을 꾸리기 위해, 전설적인 청부업자로서의 삶을 은퇴하고 소시민처럼 사는가 싶었지만, 아내가 갑작스레 죽게 되어 방황하는 와중에 철없는 러시아 마피아의 아들이 그의 고풍스러운 차를 탐내어 빼앗았을뿐 아니라, 아내가 기르던 개까지 죽이니, 그 때 존 윅은 복수의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은퇴한 줄 알았던 존 윅이 이처럼 살육을 반복하자 그가 복귀한 줄 알게 된 몇몇 이들은 다시금 존 윅에게 임무를 맡기게 되고, 그 임무를 무시하고자 더 큰 힘을 빌리게 되는 존 윅은 결국 결국 3편까지 이르러 빚쟁이마냥,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도대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4편의 시작에서 존 윅은, 덤벼드는 모든 이들을 다 죽이면 그만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콘티넨탈 호텔의 지배인 윈스턴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고, 관성처럼 살인을 하는 존 윅에게 최고회의 이사장과의 대결을 통한 탈출의 방법이 있음을 알린다.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점점 식상해지듯이, 점점 큰 설정이 덧붙어가며 살인을 반복하는 존 윅 시리즈도 까닥 잘못했다가는 지루한 관성을 타기 직전이었으나, 이 장면은 존 윅에게 새로운 인물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영화의 방향도 다르게 선회시키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스턴트맨 출신의 감독들이 연출하는 영화에, 더군다나 지금까지 늘상 개성적인 액션 연출로 이름을 날렸던 존 윅 시리즈에서 전투가 빠지면 정말 서운한 일이다. 존 윅은 지금까지 연작을 거듭해오면서, 비교적 덜 잔인하면서도, 사람이 연달아 죽어나가는 장면이 부담스럽지 않게, 적은 출혈과 박진감 넘치는 편집으로 살인의 과정들을 줄여왔다. 몇 번 설명했듯이, 존 윅의 기본적인 전투법은, 삼보와 유도를 중심으로 상대의 공격을 쳐내거나 엇걸어 막은 상태에서 총과 칼을 이용해서 1차적으로 움직임을 막고, 그 다음 급소를 공격해서 끝장내는 방식을 이어왔다. 존 윅의 맞수로 기용된 맹인 암살자 케인 역의 견자단은, 역시 실제 뛰어난 무술가이자 오랫동안 배우를 한 사람답게, 맹인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실수까지 포함한 아주 섬세한 연출을 보여주었으며,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상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을 경우 어떻게 빠르게 상황을 끝내는지 날렵하고 간결한 공방을 보여주었다. 지팡이로 상대와의 거리와 체형을 가늠한 뒤, 발차기로 상대를 타격하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이이상 잘 싸울 수 있을까 싶은 단려한 움직임이다. 친구를 위해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과 고명딸, 형제 같은 부하 직원들까지도 모두 희생하며 우정을 지킨 시마즈 코지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역시 선과 점과 면을 아우르는 일본 고류 검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존 윅 4는 결국, 배가본드의 한 장면처럼, 높은 대성당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일단은 관성적으로 추동되었던 끊임없는 대살육의 현장에서, 마침내 주인공이 벗어남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오랫동안 열연해온 키아누 리브스의 말처럼, 과연 존 윅 5가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역시도 당분간 자신이 맡은 배역 존 윅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려 드는 상황만이 보인다.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구약의 가나안을 명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고, 북한과 러시아는 이 와중에도 밀약 협정을 맺고 있다. 나라 밖이 어지러우면 나라 안이라도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단결해야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때리고, 찌르고, 치고, 고소하고, 죽이기 바쁘니, 마침내 어느 젊은 여성 피해자는 저수지에 몸을 던져 시체로 발견되었다. 방송까지 나와 몸소 옛 상처를 치유해보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중과부적이었나 보다.
강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은, 둘 다 몸과 마음이 비슷비슷하여 겨루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 함이 아니다. 나는 태권도를 포함한 여러 무공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무공을 익힌 이유는, 누군가 내 벗과 가족을 해하면 대신 때려줄 각오가 아니라 대신 맞아줄 각오를 하려고 배웠다. 가끔은 머리를 식히고, 긴 삶에서 이거 하나 져준다고 어찌 되지 않는다는 여유와 품격이 전 세계적으로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배포가 큰 대장부, 여걸들이 천하산천에 간 곳이 없다. 갈수록 잘아지고, 잔인해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