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탄생 - 모든 사건은 사회의 결핍으로부터 일어난다.
정명섭, 명탐정의 탄생, 북멘토, 2015, 한국
아내의 직장에는 깔끔한 북까페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실내 놀이터 및 장난감이 함께 구비되어 있는데, 그 한구석에는 오디오 북을 재생할 수 있는 큰 컴퓨터도 있어서, 가끔 소은이가 장난친다고 버튼을 누르면, 굵직한 목소리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이 나오곤 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내의 직장 주변은, 흡연은 물론이거니와 음주도 기본적으로 금지이기 때문에, 산 안에서 술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는 어려우나, 낮밤으로 흐드러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싯구를 듣거나 책을 읽는 일은 확실히 더할 나위없는 사치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술, 혹은 귀한 옷과 차를 탐하는 사치도 있겠으나 사람으로서 푸지게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사치는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여간 아내의 직장으로 놀러갈때마다, 몇 시간 동안 KTX에 갇혀 있던 아이는 제 어미를 보며 놀이터와 산에서 마음껏 뛰어놀아 좋고, 나도 물론 챙겨간 책이 있지만, 머리도 쉴 겸 다른 책을 호로록 넘겨볼수도 있어서 좋다. 인근 도서관과 제휴를 맺기도 하는 아내의 직장에는 생각보다 양질의 도서가 많았다.
아닌게 아니라 인도의 귀부인 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몇 달 째 이택후 선생의 중국사상사론 3부작을 붙잡고 있었더니 머리가 아팠다. 학부시절 이렇게 공부했었더라면, 아마 더 빨리 학위를 받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여하튼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 입장으로 봤을때는 크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뵈는 작품들을 연달아 쓰듯이, 이 소설 역시 과하게 어렵거나 큰 의미를 둔 소설이라 보긴 어렵고, 가볍게 편히 읽기 좋은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현재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로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 및 그 합리성이 얼마나 독자를 매료시키느냐에 있다. 취업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 심부름으로 용돈이나 타쓰는 30대 백수 준혁, 가난하고 힘든 가정 환경에서 개봉동 명탐정을 꿈꾸는 소년 상태는 이미 몇백만 번을 우리고 우렸을 셜록 홈즈와 왓슨과도 같은 단짝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도 이미 어느 정도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는 청소년-젊은 세대의 결핍을 상징하고 있다. '청소년 소설' 의 분류에 속하기는 하나, 가난해서 햄버거 한쪽도 둘이 나눠먹어야 하는 이 명탐정들이 찾아가는 사건 현장들은 한국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는 결핍된 성장의 현장이기도 하다. 부모와 또래 집단으로부터 올바른 소통을 배우지 못해, 허황된 꾀임에 빠져 가족들을 독살 시도 하는 여중생, 성장하고 나서도 부모로부터 물리적/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의 생산수단에 빌붙어 살아보려는 젊은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들을 부양하면서 점점 삶의 흥미를 잃는 노부모들, 외모와 폭력 등 말초적인 흥미에 사로잡혀 계급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청소년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명탐정의 탄생은 어린이에서 청소년, 다시 성인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충족되지 않는 결핍의 현장으로 독자의 시선을 안내한다.
힌 명의 부모가 되니 달라지는 점이 참말 많다. 우리 부부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굶거나 학대당하는 사건, 혹은 그에 따른 모금 방송 등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고, 뉴스에 연일 방영되는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추락, 학생들의 폭력, 마약, 도박 중독들의 심화, 이런 와중에 더욱 출세를 위해 과열되는 학력경쟁- 그에 뒤이어 떨어지는 출산율과 취업률까지, 이 풍진 세상에 과연 우리 부부가 뭐 잘났다고, 믿음과 사랑만으로 어린 아이를 내놓았는지 어떤 날에는 심지어 미안하기까지 하다. 가끔 아내와 함께 겸상할때 술을 마시며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볼떄가 있다. 그때는 그렇게 마음이 치대어 괜시리 눈물을 쏟고 마는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귀엽다고, 제 자식 안 굶고, 따뜻하고 풍족하고 구김살없이 자라게 하고픈 마음은 세상 어느 부모나 다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