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여전히 이러고 삽니다.
아내의 직장이 산을 돌보는 일이라는 말은 여러번 올린 줄 안다. 아내는 꽃피는 올해 봄 5월에 복직하였다. 나는 총각 시절, 서른살의 5월 첫날, 노동절을 맞아 농민들과 함께 광화문네거리를 누비며 쌀값을 인상하고 식량생산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며 인형 올린 가마를 태우고, 목청 높여 소리지르다 퇴근하여 매캐한 향기와 함께 ITF태권도장에 처음으로 입문했다.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욱 불안정하고 예민하고 날카롭고, 기댈데가 없어서, 약 4년 뒤의 끝달에 마침내 평생 반려를 맞아 소원하던 가정을 꾸리고 부드럽게 살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내 역시 내게서 다 듣지는 못하고, 사범님이나, 혹은 내 옛 벗들과의 술자리에서 가끔 내 총각 시절의 철없던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입을 딱 벌려가며, 이 사람 나쁜 짓 마이도 하고 다녔네~ 내 그때의 여보야 만났으모 진짜 결혼이고 연애고 안 했을낍니더, 당장 자리 박차고 나가뿟지예, 하며 농담 같지 아니한 진담을 했었다. 첫 선자리에서 혹시나 물회에 소주라도 한 잔 했을라 치면 당장 나가려고 마음먹었다는 아내는, 늘상 사기 결혼이라고 장난치면서도 1주일에 한두번은 선선히 술을 허락해주는 마음 고운 아내지만, 그 이상을 넘으면 당장에 눈을 부라리며, 이제 그만 드시소! 하고 상을 치울줄도 아는 현명한 아내이기도 하다. 나는 아내의 말을 어겨본 적이 진짜 별로 없다. 태권도 하다 다쳐서 오는 일은 좌우간 내 예상을 늘 넘는 일이다.
여하튼 아내가 복직하고 나서, 어머니 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거의 옮겨오다시피 하여 감사하게도 소은이를 돌봐주시고, 주말에 아내가 당직이 되어 올라오지 못하면 주말까지도 붙박이로 봐주셔야 하니, 아무리 딸이자 손녀가 이뻐도 이래서야 2대가 버틸 수가 없다. 게다가 아내도 늘 면구스러워 하여, 생각해보니, 아니 이럴바엔 아내가 주말에 내려오지 못하면 차라리 나와 소은이가 내려가면 되지 싶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제 소은이도 제법 커서 아기가 아닌 어린이가 되었고, 최근에는 유튜브 없이도 적어도 대전역까지는 무리없이 KTX에서 버티니, 그냥 내가 이고 지고 짐 챙겨서 쓱 내려갔다 오면 여러모로 좋은거 아닌가 싶었다. 이 의견에 가장 좋아하신 분들은, 일단 평일에 밤낮없이 애 챙기느라 진이 빠지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최근에 어머님과 사별하시고 혼자 지내시느라 늘 적적하신 처가의 아버님, 즉 양가 어른들이셨다. 솔직히 제 돈 주고 숱하게 묵는 아내의 직장이기도 한데, 나랏일 하는 아내 덕 봐가며 보러 가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되짚어 올라오는 길에 아이가 선잠을 깨어 엄청 발버둥을 쳐가며 진짜 김천구미역 앞 모든 사람들이 우리 부부와 소은이를 다 쳐다보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다. 여하튼 잘 내려갔고, 아버님 잘 모시고 좋은 것도 많이 먹고, 밤낮의 산을 아내의 안내에 따라 정말이지 푸지게 즐겼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산은 몹시 그럴듯하였고, 모기도 없었고, 바람은 물기없이 소슬하고, 공기는 폐에 박히듯 신선해서, 참말로 하루종일 회색빛 건물에 갇힌 몸과 마음이 새로워졌다는 말은 백 번 해도 부족할 터이다. 아내는 늘 고마운 사람이었고, 사실 평일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왔다갔다 하면서 육아를 돕는데도 피곤한 낯을 하지 않았다. 내가 밤에 늦게 퇴근하면, 벌떡 일어나서, 내가 여보야를 진짜 좋아한다 아입니까, 눈이 딱 떠집니데이, 하며 깔깔 웃곤 했다.
소은이는 제 어미가 없는 평일에는, 비교적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도 잘 듣고 의젓했지만, 제 어미만 오면 순식간에 아기가 되어버렸다. 아기, 아기이, 소은이는 아기야아, 라며 저가 저를 스스로 지칭하면서 엉금엉금 기어 제 어미에게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평소에 잘 듣고 잘 하던 일들도 일부러 망쳐놓고, 제 어미 보란듯이 이히히히 크게 웃는다. 어떤 날은 피곤에 짜증이 솟다가도, 어떤 날은, 얼마나 제 어미가 보고 싶으면 저런가 싶어 마음이 미어졌다. 소은이는 그래도 씩씩하게 항상 밥을 잘 먹었고, 뭐든지 제 힘으로 하려고 했다. 할머니가 정성들여 구워준 고등어, 조기 를 뚝뚝 떼다가 밥 위에 얹어 와아앙 제 입에 넣고, 오리찜, 닭백숙, 달걀부침을 물에 빤 김치를 꼭 곁들여서 콩밥에 얹고, 브로콜리도 맨손으로 쏙쏙 잘도 집어먹었다. 밥을 한그릇 거하게 먹고 나서도, 과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꼭 홍시나 포도, 사과, 바나나 등을 더 달래서 늦은 밤까지 먹으면서 제 아비 따라 태권도도 하고, 아주 가끔이지만 책 읽는 시늉도 하고 한글 공부도 하면서 논다.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가 싶더니, 활동량도 그에 못지 않아서, 최근에 살이 한 번 쑥 빠지고, 다리가 제법 길어졌다. 순대국 5,000원 소주 한 병 2,000원 하여 9,000원이면(왜 2,000원이 추가된 계산일까?^^;; ㅋ) 하루 반나절이 행복하던 때가 무색하게, 오늘 먹은 순대국은 만이천원에 달햇는데, 물가가 이렇다보니 달고 짠 경박한 양념으로 범벅을 해놓은 편의점의 간편한 음식들이 거리를 수놓는다. 집에서 정백당을 안 먹이니, 아이는 가끔 말을 안 들을때 주는 초콜릿과 사이다에 정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식습관이 건강한 편이다. 어린이집에서도 소은이처럼 골고루, 많이 먹는 아이는 정말 드물다고 들었다. 좋은 맛과 멋을 알려주고 물려주는 일은 부모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아내는 나의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가 없을때는 술을 허락해줄 사람도, 그럴 틈도 없으므로 나는 아내가 있을때 꼭 한두 병씩 마시려고 게걸스레 치대었다. 아내는 보통 허락해주지만, 과하거나 심하면 먼저 병을 치우거나 그만 마시라고 강하게 말한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애교를 부리며 졸라본 적은 있지만, 언성을 높이거나 무시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내는 늘 내가 말을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하지만, 애초에 아내 말도 안 듣고 살거면 혼자 살면 된다. 같이 말 주고 받고 살려고 결혼한 것이다. 술을 아주 끊을 수 없으므로 나는 아내의 말을 들어가며 늘 줄여왔다. 다만 최근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알코올 중독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오늘 뉴스에서는 술에 취해 클럽의 바운서Bouncer- 세상말로 기도라고 불리는 문지기들에게 얻어맞은 뒤 총을 쏴서 보복한 러시아 권투 챔피언의 이야기가 나왔다. 썩어도 준치일 줄 알았는데, 주먹 쓰는 기술로 제일이라는 권투의 챔피언이라는 이가 술에 다리가 꼬여 체간이나 중심을 논하기도 이전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다가 거구의 두 바운서에게 두들겨 맞은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술에는 정말 장사가 없구나 싶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마신 술이 남들 마신 양의 세 배는 될텐데, 곽선생과 너와 아내는 언제나 내가 너무 술을 좋아하고 밝힌다며 걱정이었다. 나는 심약해서 예전에는 손끝을 떨도록 오래오래 술을 마신 적도 있고, 지금도 춥거나 아픈 날에 무릎과 발목이 시려 다리를 절 때면, 술이 생각나서 괜시리 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손끝이 떨릴세라 마르고 닳도록 손을 비비곤 하는데, 소은이 건강히 크는 모습을 오래 봐야 하니, 늘 열심히 연습하는 무공만 자신하지 말고, 술도 천천히 나이에 맞게 줄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이렇게 모자라고 경박한 나와 사는 일은, 나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젊었을 때의 나는, 그림자처럼 아무리 달려들어도 떼어낼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고 경멸스러워, 거울 속에 뵈는 내 모습을 면도칼로 전부 그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장자는 그림자와 발자국이 싫어 한없이 뛰어다니다가 끝내 기진해 죽고 만 사내의 예를 들면서, 힘들면 차라리 그냥 나무 그늘에 누웠다면 보기 싫은 그림자와 발자국을 보지 않았어도 되고 죽지도 않았을 터라고 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성숙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떼어내거나 버릴수는 없다. 아내는 내 자신을 긍정하게 해준 가장 고마운 사람 중 하나다. 솔직히 아내는 나처럼 덜 자란 사내와 살기엔 너무 아깝고 귀하다. 그래서 늘 아내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우리 소은이가 아내처럼 현명하고 아름답고 속 깊은 여인으로 자라길 바란다. 아, 오늘도 결국엔 별이 바람이 스치우듯 팔불출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