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잡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세상이 무서워서다.

by Aner병문

육십에 태권도와 검도에 입문하며 무도인을 자처하던 77세 노인은 주차시비로 분을 못 이겨 멀쩡한 사내의 양손과 목을 진검으로 쳐날렸다. 출세와 금전을 위해서는 제 성별까지 속여가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꾀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꾐에 홀딱 넘어가 어떻게 저도 덕보려다가 천하제일의 검술로 얻은 명예까지 실추된 이도 있다. 곽선생과 너와 내가 몸담은 곳은 각자 직업이 모두 다르지만, 어느 쪽 하나 바람 잘날 없이 매일 가슴 아픈 소식만 들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상에서 이렇게 늦게까지 내가 아니 자고 잡일에 몰두하여, 책을 읽거나 일기를 남기거나 무공을 연습하는 이유는, 참말로 세상이 무서워서다. 갈수록 노골적으로 욕망을 쫓고 부끄러움을 묻어두는 세상이 나를 옛날처럼 경박하게 만들까봐 무서워서, 끊임없이 최면을 걸듯 읽고 쓰고 외우고 연습한다. 깊이와 수준은, 아직도 너무 멀고 얕아 중요하지 않다. 나아갈 방향을 잊지 않고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애비와 남편으로서 큰 호강도 시켜줄 수 없고, 억만금과 출세를 물려줄수도 없지만, 두번 다시 젊었을때처럼 부끄럽고 촌스럽고 천박하게 살고 싶지 않다. 언제 어느 떄고 의연하게, 내 남편이고, 내 아비라고 당당히 가리킬 수 있는 사내였으면 좋겠다. 비록 술 한잔 탐할 때가 있고, 아주 대범치는 못할 지언정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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