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자의식의 성장

by Aner병문

요즘 우리 집 아가씨는 제 아비와 나란히 거실에 누워서 이중창 중 뿌옇게 처리된 안쪽 창을 열어놓고, 투명한 바깥 창을 통해.밤하늘을 보며 떼굴떼굴 구르다 자는걸 즐긴다. 아들이건 딸이건 먼저 결혼하는 녀석에게 우선권이 있다며 집 한 번 직접 지어보는게 소원이셨다는, 우리 어머니께서 사위 혹은 며느리 살 집이라며 특별히 더욱 신경써 지으신 이 집은 아닌게 아니라 겨울에도 난방 열기가 그대로 고여있을 정도로 훈훈하지만, 그래도 창 하나 열면 냉기가 제법 서늘해서 아직 기침을 못 뗀 딸내미 감기가 깊을까 걱정되어 창문 닫아줄라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안돼요, 아빠, 싫어요, 누워서 자요오, 하며 애비 손을 끌어당기며 도로 눕힌다. 심지어 아빠, 코 자자? 하며 애비가 그토록 좋아하는 뽀뽀도 폭격하듯 퍼붓고는 제 애비가 다시 일어나 창문을 닫을 기색이.없음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눕는다. 안그래도 예전에는 항상 TV켠 채 가무만 즐기더니, 요즘에는 제 애비 책만 읽게 두지 않고 아빠아, 한글공부해요, 퍼즐놀이해요, 자동차 고치기 놀이해요, 춤춰요, 태권도해요 등 뭐든 이래저래.하다 각 십여분을 넘기지 못하고 두어시간쯤 되면, 아빠아, 나 티비 볼래요, 하며 졸린 눈으로도 소파에 앉곤 하지만, 그래도 언제 제 의식이 이래 생겼는가 놀라지 않을수 없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 ㅡ 자의식!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 같은 것이랄까? 자의식이 있어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설명하고 기능한다. 자의식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때는 서양 사회에서는 칸트의 오성吾性이후다. 불교에서는 끊임없는 자신을 반복하고 유지한다고 하여 자기동일성.ㅡ줄여서 자성 自性 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이 그토록 버리고자 했던것도 내가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자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데카르트는 그 유명한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을 남겼고, 피히테는 내가 나라고 인식하고 기억하는 행동 자체가 자의식이라고 했으며, 프로이트는 본능적인 이드 id.와 사회적 규범이 내재된 초자아가 서로 맞닿는 곳에서 자아가 생성된다고 했다. 개신교나 유학 등에서는 기본적으로 존재 자체의 근원을 외재된 일자 一者 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이성은 사용되는 용도일뿐 존재의 중심으로서의 자아는 깊이 탐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다른 의견 받습니다, 제가 여지껏 읽은바론 그래요ㅜㅜ )



고집이 생긴다는건 아이가 성장한다는 증거다. 제 앞가림도 부족한 아비 밑에서 심신 건강히 잘도 커주었다. 자녀는 처음된 부모가 최초로 만나는 타인이다. 나로부터 기인했기에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나는 늘 자녀의 삶의 시작점이 적어도 내가 포기한 한계에서부터 출발할수.있도록 내가 아는 작은 것들이나마 문무예 文武藝 등 전부 알려줄 욕심이지만, 말 그대로 욕심이다. 책을 읽고 철학에 대해 사유하며 무공을 익히고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나와 다른 이를 지배하고 똑같게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서로 행복하게 지내기 위함이다. 아내와.너는 항상 예전부터 자녀에게 자꾸 내 못 다꾼 꿈을 투영하려는듯한, 니체처럼 소심하고 은근한 내 집착을 자꾸 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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