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와 무릎, 박치기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손발을 이용한.타격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내 공격을 정확히 꽂아넣기 위해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민활한 보법이 필요하다. 오직 주먹으로만 치는 권투조차 발에 여덟, 손에 둘이라 한다. 반면 관절기를 중심으로 한 유술 계열의 무공은 가능한 거리를 바싹 좁혀 밀고 당긴다. 이처럼 나와 적의 거리를 가늠하는 기술은 모든 무공을 막론하는 것이나, 단지 그에만 국한되지 아니한다.
이른바 전장연 ㅡ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수장이 지하철역에서 거칠게 잡혀들어갔을때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솔직히 통쾌했을까? 아니면 안쓰러웠을까? 장애인은 오래전부터 약자이며, 약자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주류의 담론과 경로를 거부할수밖에 없다. 우는 아이여야 젖 한 번 더 먹는다는 식이다. 일찍이 스스로를 상징자본으로까지 일컬었던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은 경찰조차 투쟁하고, 또 그 불편을 감수하며 투쟁의 편에 서는 프랑스의 선진적인 낭만을 찬양하였다. 혹은 동양의 기틀인 맹자식 측은지심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경제 불황 및 사회 혼란이 가속화되면서 대부분의 대중들이 스스로를 못지 않은 약자라고 여기게되고, 한편으로 전장연의 투쟁은 같은 대중들에게조차 지지받지 못한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논란도 피할수 없게 되었다.
무솔리니 독재정부의 야심을 단번에 꿰뚫어보아 검사로부터 “20년 이상 가두어 그 영향을 없애야할 위험한 두뇌” 라고 불렸던 그람시는, 대중적 지성인과 지적인 대중이 서로 만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에게 있어 대중은 느끼지만 인식치 못하는 이들이었고, 지성인은 인식하지만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는 맑스의 하부 결정론의 한계를 알았고, 상부구조로서의 문화의 위력을 알았다. 그가 만약 옥중에 있지 않았다면 그 유명한 옥중수고는 없었어도 사회주의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와는 달랐을수 있다. 베냐민은 이에 더하여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치고 무감해져 냉소적으로 변할 이기적인 대중을 예견했고,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영화와 광고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약자가 폭력을 통해 뜻을 관철코자 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맹자의 말씀처럼 측은한 마음으로 연대해야 하는가? 양주나 스피노자의 이론처럼 내게 득이 없고, 코나투스conatus(내 삶을 긍정적으로 유지시키는 힘)가 감소되니 거부해야하는가? 국가는 합당한 폭력의 소유자라고 했던 베버나 법을 우선시하는 한비자처럼 국가의 뜻에 맡겨야 하는가? 그람시처럼 지성과 대중 ㅡ 두 계층이 만나기를 고대해야 하는가? 베냐민처럼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여 영화와 광고로 확산해야햐는가? 진시황처럼 모조리 쓸어버리는가? 춘추전국 송양지인의 고사처럼 무조건 물러나며 들어주어야하는가? 쓸데없이 읽은것만 많아 말이 길다. 주먹 한 방, 술 한잔보다 값어치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