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지역과 철학, 혹은 예술

by Aner병문

포항 과메기, 진도 홍주, 영광 굴비, 포천 이동갈비… 지역과 원조를 따지는 일은 비단 음식의 영역뿐이 아니다. 일본의 유술이 전래되어 정착된 주짓수는 브라질리안 이라는 말이 꼭 붙고, 무릎을 안으로 비틀어 중단을 차는척 하며 상단을 차는 발차기도 브라질리안 킥이라고 하며, 마치 스트레이트처럼 곧게 찔러들어오는 듯하지만 실상은 관자놀이를 노리고 최단각도로 휘어들어오는 주먹도 러시안 훅이라고 한다. 하물며 수많은 분파와 투로가 생성된 중국무공은 말할것도 없다. 지역을 넘어 이가팔극, 맹가팔극, 곽가미종, 진가태극 등 가문 고유의 전승까지 생긴다. 지금까지로서의 역사는 능히 그럴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레이시 가문이 이종격투 초기의 대회를 휩쓸며 주짓수는 다양한 형태와 경로로 전세계에 퍼졌는데, 규칙과 기술과 용도에 따라 중국무술이나 한국식 합기도 못지 않고 분파가 많이 생겼다. 주짓수에 흠뻑 빠져있던 이십대 중반, 이대 가구거리 앞 도장에는 우람한 근육에 문신을 가득 새기고 그보다 더 화려한 도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는데, 누가 자신을 뉴욕 스쿨 주짓수를 했다하기에 이젠 뭐 핫도그도 아니고 뉴욕 계열도 생겼는가 싶었다. 하기야 ITF태권도 또한 지금까지 다양한 역사적, 현실적 원인으로 인하여 분파들이 통합되기는 어려워보인다.



잠깐 이야기가 겉돌았는데, 사실 나는 문학 등의 예술을 더이상 지역으로 나눌 필요가 있을지 늘 궁금했다. 이제 지방에 내려가면 이른바 다문화가정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똘똘 뭉쳐 오히려 순수 토종한국인들을 핍박하기도 한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학, 한국음악, 한국미술 등을 나눌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요컨대 재미교포 작가가 일제 시대 이야기를 써냈다는 빠찡꼬는 한국소설인가? 타국에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가 한국 생활 오래 하며 쓴 수필은 한국 수필인가? 펄 벅 여사의 대지는 중국문학인가? 단순히 한국어로 쓰이면 한국 문학이고, 수묵화로 그리면 동양 미술인가? 세계화와 노마드조차 곰팡내나는 옛 말이 된 지금, 영역을 막론하고 현재의 생산물에 지역적 분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지역과 공간이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국제화가 다시금 시작되던 조선 중후반, 중화 를 자처하던 명이 쇠하고 청이 득세하며, 지도, 천문학, 새로운 종교 등 바깥 세상을 직접적으로 볼수 있는 계기가 더 많이 생겼다. 고려 벽란도 시절부터의 해외 경로가 끊기지야 않았겠지만 송시열을 필두로 소중화 사상을 지키던 유생들에게 급변하는 국제 정세는 윤리적 인식론이나 수양론만으로 대처키 어려웠을 터이다. 요컨대 청나라 오랑캐들도 명나라의 중화를 이을수 있는 이들인가? 라는 물음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냐 다르냐는 논쟁으로 번졌는데 이 논쟁이 윤리나 역사 교과서에 한번쯤은 나오는 그 유명한 인물성동이논쟁, 속칭 호락湖落 논쟁이다. 이황과 이이 간의 사칠논쟁, 효종 때의 예송논쟁과 더불어 조선 3대 논쟁이라고도 한다. 좋든 나쁘든 조선이 얼마나 학문의 나라였는지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외암 이간은 모든 만물의 리理 는 동일하다는 근거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다 했고, 남당.한원진은 이일분수 理一分殊한다 해도 맑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파도치는 물에 비치는 달그림자는 서로 다르니, 기 氣 의 상태에 따라 리가 온전히 드러나지 못할수 있다며 이에 반대했다.



서로 다른 두 학자의 근거가 주자라 불린 송대 신유학의 아버지 주희라는.사실이 즐겁다. 사실 주자는 맹자의 주석을 달면서는 인간과 동물의 리가 애초에 다르다 했고, 대학의 주석을 달면서는 인간과 동물의 리는.같지만 기가 달라 차이가 있다 했으니 애초에 빌미를 주었다 하겠다. 송대에 심오한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구가하던 불교와 도교에 대항키위해 서둘러 장재의 기철학을 개조하던 주자의 고심과 아쉬움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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