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팔불출 일기 ㅡ 또다시, 아내에게 가는길.
결혼한다고 하여 고독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혼은 혼자일래야 혼자일수 없는 것이다. 늘상 함께 해야한다는 각오없이는 결혼일 수 없다. 심지어 지금처럼 아내와 주말부부로서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렇다. 늘상 애틋하고 보고싶고 그립고 생각나지 아니하더라도, 아이를 보아도 아내와 연결되고, 빨래를 하다가도 아내의 흔적이 보인다. 하이데거는 반드시 불편함이 수반되어야만 일상을 지각한다고 했지만, 메를로 뽕띠는 주름처럼 잡힌 신체의 기억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했다. 심지어 육아 의견이 달라 서로 언성을 높일 때조차도 아내가 있으므로 가능하다. 아내가 없었다면, 소은이도 없었을 터이고, 내 일상은 그만큼 비어서 전혀 다른 형태가 되었을 터이다.
최근 들어 어른들 즐겨들으신 라디오 사연 같은 이야기들과 만났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웬 덩치 큰 총각 둘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보였으나 총각임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까닭은, 들으란듯 크게 떠드는 그들의 이야기 덕이었다. 결혼은 안 하는게 답이야, 사랑? 그런게 어딨어, 드라마야? 주변에 유부남들 들어보면 다 ATM기야, 그리고 나중에 이혼 당하고, 국제결혼 하려다 사기 맞고, 그 짓을 왜 해? 반대편 총각도 그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또한 도장에서 오전 훈련을 마치고 회사로 넘어가는 지하철역 계단에서 한창 젊어뵈는 부인이 제 또래 친구에게 쓱 건네던 한 마디 또한 가슴을 훅 찔러들러와 하마터면 맞서기에서 쓰러지듯 넘어질뻔 하였는데, 그 말인즉슨, 이혼? 하려면 하지, 근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였다. 정반합 正反合 을 부르짖었던 헤겔답게 그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아이를 낳으며 함께 공동체를 구성한다 했는데, 누구나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사람마다 사정 상황이야 다 다르겠지만 만나기는 어렵고, 헤어지기는 너무 쉬워 인연조차 생기지 않을 세상이 슬펐다.
왕충은 논형 論衡 에서, 자연이 특별히 의도가 있어 음양이 서로 만나 만물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과 인연이 겹쳐 마주쳐 발생한다 하였다. 루크레티우스와 알뛰세가 울고 갈 마주침의 생성에 대한 논의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있었던 셈이다. 세상 사람 속도 모르면서 무조건 결혼하고 애 낳아라, 헤어지지 말아라ㅡ제 삶도 못 챙기는 주제에 젊은 꼰대같은 잔소리 늘어놓고자 하는게 아니라, 아내에게 가는 길에 불현듯 그립고 생각나 몇 자 적는다. 이번 주말 아내의 젊은 동창들이 연이어 결혼하기에 소은이를 두고 모처럼 부부끼리 결혼식을 순회하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그러니 새삼 아내와 만나 보내고 지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레비나스는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타인이란, 애초에 나와 다른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며, 장자는 역지사지 라는 가벼운 말로 입장조차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인 도 道 로 관계맺어야 하는 이가 타인이라고 했다. 나 편하자고 타인을 억지로 나처럼 만들면 전체주의적 폭력이 된다. 그러므로 니시다 기타로의 대동아공영은 결국 동아시아를 전부 일제로 통합시키겠다는 속된 야망이었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은 옳다. 이 시대의 우리란, 단순히 나의 복제들이 아니라,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며 엮고 엮여야 한다. 그러므로 아내는 내가 좋았던만큼 좋았을까. 내가 사랑했을 때 함께 사랑했을까. 아아, 부족한 남편은 늘 자신이 없다. 지금 아내에게 간다. 서로 마음을 맞춰보려, 물어보러 간다. 늘상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어 무던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같은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