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미국, 2018.

by Aner병문

아내가 조리원에서 돌아오기 하루 전, 나는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하루 푹 쉬고, 집안 정리도 하고,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도장에서의 금요일 맞서기를 상상하며 격렬하게 땀을 빼고, 다시 길고 피곤한 육아의 세계로 돌아가기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람 평생에 예상대로 굴러가는 날이 몇이나 있을까. 너와 곽군과 술을 느지막히 마시던 날에, 어머니는 며느리 볼 낯이 없다시며 하루 날을 내어 우리 집을 다 치우시고, 밤이 늦었다며 부부가 기거하는 5층에 암막을 내리시고 주무시고 가신다 했지만, 내가 새벽 2시쯤 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어머니 방의 불은, 내 어렸을 떄 기억처럼 꺼질 줄 몰랐다. 늘 엄격했던 어머니, 항상 어려웠던 어머니는, 평생 술담배는커녕 육고기조차 즐기지 않으셨고, TV나 영화처럼 잔재미도 없으신 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핏발 선 눈으로, 아침 여섯 시 무렵, 안방 문을 조심스레 열면, 주무시는 아버지 옆에서, 마치 젊은 시절의 외수 선생님처럼, 베개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엎드려, 종이 한 장에 한자 연습을 겹쳐서 쓰시고 또 쓰시고 그렇게 밤을 새우셨었는데, 내가 그 기에 질려 말도 못하고 문만 연 채 벌벌 떨고 있으며, 어머니는 그제서야 아이고, 니 학교 갈 시간이여? 밥 챙길랑게 얼른 아침 공부혀라, 하시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늘 벌레를 잡는다 단언하시던 어머니, 눈꼽을 떼기도 전에 어머니 따라 교과서 들여다보는 시늉이라도 하다 등교해야 했던 그 시절, 어머니는 육십이 넘어 며느리와 손녀를 보셔도 그 엄혹함에 전혀 변함이 없으시었다. 덕분에 본디 사업하기 전 선비셨던 할아버지께는 현부 보아라, 효부 보아라 로 시작하는 편지를 받으며 늘 가장 사랑을 받으셨다던가.




왜 그렇게 사셨을까? 어머니가 젊은 시절 어느 시인의 문하생이었으며, 본디 결혼에도 속세에도 뜻이 없어, 절에서 오랫동안 글공부를 하셨다는 얘기는 전해들어 알고 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밑으로 열 명이 넘는 이모들과 외삼촌들을 전부 대학까지 보내고 또 결혼시키셨으며, 평생 대기업 한 곳에서만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든든한 버팀목이시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아버지나 내가 바라듯 늘 살가운 분은 아니셨다. 어머니는 마치 홍칠공의 무공처럼, 휘어지거나 굽힐 줄 모르시고 늘 굳고 곧고 단단하신 분이었다. 천하의 홍칠공조차 곽정에게 항룡유회를 전수하며 십의 힘을 줄 때, 반드시 이 정도는 거두어야 된다고 가르치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이십에 삼십을 퍼부어 기어이 상대의 기를 꺾고야 마는 분이시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적당한 타협과 눈치를, 부드러움으로 가장하여 살아나가는 서른 살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아내가 돌아오기 하루 전날, 어머니는 다 못 끝낸 청소를 마저 하시며, 또 손녀 앞으로 두 개의 보험을 들어두시며, 그날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자신의 장구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서른 넘어서 그나마 내가 어머니를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다고 여겼던, 어머니의 삶은, 그 이야기에 비하고 나니 열에 하나도 되지 아니하였다. 누구에게나 혼자 간직할만한 삶의 굴곡이 있으므로, 어머니께서 허심탄회하고 말씀하셨다고 해도 열의 여덟 아홉을 다 채우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어머니께서 펼쳐놓은 열의 여섯 일곱 정도의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기가 질렸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 누구도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하던 어머니의 강팍한 삶의 맥락을, 조금이라도 먼저 들었다면, 십 대의 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출세에 훨씬 의욕적이었을까? 이십대의 내가 부모님께 상처를 덜 드렸을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마치 그토록 증오했던 적이 알고보니 우리 편이었다는 착각에 빠진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가슴이 휑한 상실감에 깊이 절었다. 여지껏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오신 줄, 아는 척만 하고 전혀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이고 오마니, 어찌 그리 힘들게 사셨소, 하며 끌어안고 울고 불고 하는 꼴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속이 후련한듯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나는 빈 집에 혼자 남았다. 도장에 가서 시원하게 땀을 빼며 마음을 정리할까 싶었지만, 한 끼도 못 먹고, 물만 마셔가며 어머니 얘기를 들은지 여섯 시간이었다. 이 마음으로 주먹과 발을 쓴 듯 어지러워서 무딘 기술조차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아니하였다. 결국 나는, 십년 지기 친구인 너에게 전화했다. 오후 3시의 일이었다. 너는 무슨 일이냐며 걱정하였다.



오후 여섯시에 너를 만나기로 하고, 오랜만에 종로로 나섰다. 청운의 꿈을 품고 대학 다니던 시절, 돈이 많을때는 내가 샀고, 없을 때는 늘 얻어먹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너를 기다리면서 보았다. 회사의 두루미 누나가 바나나 우유 2개에 넷플릭스 아이디 하나를 공유해준 덕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도 시간이 남아, 나는 서서히 햇살이 말라가며 추워지는 보석상 거리를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한때는 여자친구를 찾아가던 길이기도 했고, 한때는 학교에 서둘러 달려가며 누비던 길이었다. 근 십 년만에 다시 찾아온 길은, 지나간 햇살을 따라 극명하게 나뉘었다. 양지에는 휘황찬란한 보석상이 즐비했는데, 그 맞은편 음지에는 늙은 노숙자들이 쓰레기통을 뒤졌고, 추레한 행색의 행상들이 코로나 치료제며, 몸에 좋은 약재 등을 늘어놓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평행우주 속에서, 스파이더맨들은 다양한 능력과 인종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길을 걷는다. 만약 평행우주가 정말로 있다면, 영화 소스코드가 차용했던 인드라의 그물처럼, 다양한 차원들이 얽혀 있다면, 저들의 관계가 역전되는 세상이 어딘가 있을까? 우리 어머니도 부드럽고 낙낙했을 삶이 있었을까?



굴보쌈을 앞에 두고, 나는 늘 그렇듯 첫 끼를 소주로 시작했다. 너는 십 년간 내 벗으로 있으면서, 항상 음식을 시켜두고 소주만 마시는 나를 타박했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몇 년간 술은커녕 바깥 나들이도 힘들겠지 싶어 나는 원없이 마시었다. 횟집에 가서도 회무침과 매운탕을 끓여두고 실컷 마시었다. 이 어느 우주에, 좋은 벗도 없고, 술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나는 그런 곳으로는 가지 않으련다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너는 늘 그렇듯 내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었다. 늘 발랄한 검은 눈썹에 새하얀 피부, 총명한 눈을 지닌 너는, 어느 우주에 가서도 늘 빛날 별처럼 보였다. 나는 내 딸이 만약 우리 부부의 길을 갈 수 없다면, 너처럼 은은한 예술의 길을 걸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흑인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도 처음부터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어하지 아니하였다. 소년은 단지 자신의 뜻대로 살아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우주의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듯, 한때 거친 청춘을 보냈던 아버지도, 경찰관이 되고, 아들을 얻으면서, 그에게 가장 확실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스파이더맨이란 결국, 그 특유의 능력을 자랑하는 초인이기보다,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해나가며 그 무게를 회피하지 않는 이들의 상징이 된다.



옮기는 회사마다 꼭 학교 선배님들을 한분씩 상사로 모시게 되곤 했다. 첫 직장의, 이십살쯤 많은 상사께서는 우리 학교의 역사학과를 나오셨다. 원래도 부잣집 도령으로서의 풍류가 있었으나 사학도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곳곳의 맛집을 잘 아시었다. 그 분과 함께 누비던 술집들이 뒤늦게 백종원 대표에게 밝혀지는걸 보자면 한편으로는 내 귀중한 추억들이 다 들키는 듯해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느 지역의 어느 집에서였나, 그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의 한가운데에서, 선배이자 상사셨던 분은 그러시었다. 가장 못난 방법으로 투쟁을 했구만 그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주어가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본인만이 옳다고 여기시는 어머니의 맥락을 나조차도 외면했으면서, 나 역시 어머니처럼 내가 옳다는 아집으로 부모님께 상처를 드린 이십여년의 세월을 통렬히 꼬집는 말씀이었다. 나는 십년간 어머니로부터 도망다녔고, 십년 동안은 부모님을 맞물며 상처드렸다. 독하고 야만적인 세월이었다. 그러므로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 모랄레스 역시, 감히 부모님께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은 가지고 있지만, 더이상 사춘기를 빌미삼아 부모님과 대립하지 않는다. 차원을 뒤집으면서까지, 오로지 자신에게 복속되는 가족만을 바라는 킹핀과는 대조되는 공동체다.



나이 서른여섯이 되고서야 이해(理解) 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백정이 소뿔을 잡고, 가르고 헤쳐가는 모습에 풀 해 자가 나왔다. 이치를 뜻하는 리, 는 결대로 깎아 다듬는 옥으로부터 비롯된 글자다. 십육년전 학부 시절에 나는 리 의 기원을 알았지만, 그대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결국 먼 길을 달려와서, 술상 앞에 마주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벗과, 평생 나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아내와, 또한 천륜을 타고 났음에도 늘 평행선을 달려왔다고 생각한 어미와 자식 간의 모습에서, 이해는 서로 살아가기 위해 늘 필요한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차원에서 몸을 무너질 각오를 하고 도망치기보다, 결국 부끄러움을 마주해서라도 삶을 바로잡기 위해 돌아간다.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내 딸이 아비의 부끄러움을 거울삼아, 훨씬 관대하고 자애로운 인간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래야 내 딸도 혹시 십대의 나처럼, 저 우주 어디엔가 훨씬 평안하게 살아나가는 내가 있지 않을까 망상은 하지 않게 될터이다. 자기 선택대로 사는 일이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쉽지 않은만큼, 최대한 부모로서는 많은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을 뿐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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