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어설픈 아비 어미로 산다는 것 :P

by Aner병문

그러므로 그 유명한 라이프니츠는 평생을 학문 연구에 몰두했고, 비록 실패했으나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학문을 만들기 위한 통합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한 삶에 있어서 외로움도, 여인도 결국은 사치에 불과했을 터이다. 물론 독신으로 늙어죽으며 끝내 후회했다고는 말이 있으나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자유론을 집필한 잔 스튜어트 밀 역시 평생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가정을 꾸렸다면 이만한 저작을 내지 못했으리라 자평했다고 하며, 말 그대로 일평생 수학만 연구하다 죽은 에르되시 뽈 또한 역시 독신이었다. 몽실언니, 강아지 똥처럼 불후의 명저를 내신 권정생 선생님 또한 홀로 돌아가셨을 때, 주변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주다 비로소 유명하고 부유한 동화작가임을 알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고, 프랑스에서 직지심체요절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대모 박병선 선생님이며, 혼불의 최명희 선생님 또한 가정을 꾸리지 아니하셨다. 독서모임에 한창 빠져 있을 시절, 고문 비슷한 역할을 맡아주셨던 모 소설가께서는, 어버이날에도 어린이날을 한 번 더 챙기신다고 하셨는데, 늘 혼자 컸다고 자평하는 자녀분들께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아, 글쎄, 우리 애들은 혼자 컸다고 한다니까, 하기사 남편 퇴근하고 오면 엄마랍시고 아내랍시고 맨날 골방에 틀어박혀서 술담배 줄줄이 하면서 글만 쓰는데, 뭐 가정에 헌신한게 있다고.



사도 바울은 일찍이 지팡이 하나로 저는 발을 의지하며 젊은 시절 본인이 박해했던 예수님을 대변하여 평생 전도와 강연으로 보냈다. 그 중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눈여겨볼만하다. 내가 결혼에 대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별다른 거부를 하지 않으셨으므로 결국 내 이야기를 참고하셔도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처럼 정욕에 몸을 불사르지 않고 독신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하나님께 다 바치기를 원하지만, 그 것은 성직의 길을 걷는 나한테나 가능한 일이요, 성도인 여러분께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십시오, 정욕에 빠져 하나님께 죄를 짓느니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단 결혼하고 나면 이방인처럼 핑계를 대면서 함부로 짝을 버리거나, 혹은 애인을 두지 마십시오, 그 것은 이방인보다 더한 죄를 짓는 일입니다, 한번 하나님께 이 사람이 내 사람임을 확인받았으면, 늘 아껴주고 존중하고 사랑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소유요, 아내는 남편의 소유이니, 서로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행히도 나보다 신앙이 더욱 굳은 아내를 만나, 우리 부부는 늘 바울의 강연을 품고 서로에게 헌신하고 있다.



부부로서는 그런데, 부모로서는 어떨까? 아내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출산도 처음인 나로서는 난생 처음 내 손에 안아든 생명이 반갑고 떨리면서도 두렵고 무서웠다. 그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만 아내는 내가 출퇴근하는 2주 동안 조리원에서 딸과 단 둘이 있으며 어미로서의 모습을 더욱 다잡은 모양이었다. 아직도 딸이 울면 허둥대는 나에 비해 아내는 어머니가 보시기엔 아직 어설플망정, 울음소리의 세기와 높낮이 등을 파악해, 아이고 기저귀 갈아야겠습니다, 라거나 지금은 밥 줘야 할 때입니데이~ 하며 비교적 정확히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2월 28일에 태어나 이제 겨우 한 달을 채워가는 아이는, 아직도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므로, 숨쉬는 일부터 먹고 싸는 일까지 온 힘을 다해 용쓰며 해내지 않으면 안되었고, 단지 몇 시간씩 자는 일만이 자연스러워보였다. 딸은 전체적으로 순한 편이었으나, 다만 배변은 자연스럽지 못한 탓에, 이틀에 한 번 정도 푸지게 황금색 변을 보는데, 그 날이 오기까지 나머지 시간에는 잘 자다가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용을 쓰다 제풀에 지쳐 울어버리므로, 아내와 나는 늘 그 것이 가슴 아팠다. 아내는 스스로의 배가 아파 낳은 아이라 그런지, 확실히 나보다 더욱 마음이 깊어서, 딸이 빨간 얼굴로 용을 쓰며 버둥거릴 때마다, 아이고 우야노, 아이고 우야노, 세상 아프제, 엄마 맘도 아프데이, 하면서 아이를 꼭 끌어안곤 했다. 아내는 아이의 밥이자 잠이었고 또한 화장실이었다. 덜 된 아비가 아무리 잠 줄여 애써봐야, 결국 아내가 젖을 줄 때 거미 쿠션(높이를 조절하여 수유를 편하게 하는 거미모양의 쿠션)을 갖다드리거나, 제때 소독과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밥을 차리거나, 보리차를 끓여 분유를 타거나, 유축한 모유를 가져다드리는 정도의 일이었다. 단지 그 정도의 일로도, 나는 이미 지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조차 못 듣도록 곤히 잤고, 계획과 달리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찌르기 발차기 연습은 커녕 그저 딱딱한 단과자를 깨물어가며 잠을 쫓고 조용한 밤에 책을 읽다 아내와 교대하는 것이 전부였다. 못나고 덜 된 아비에 비해 아내는 튼튼했고 활달했으며, 늘 딸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서, 마치 처음부터 내 딸의 어미가 되기 위해 나온 이인가 싶지 않을 수 없었다.



좌우지간 아이가 집에 들어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린이집 교사이기도 한 여동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내가 조리원으로 돌아오는 날에 문 앞을 아주 멋지게 꾸몄다. 어머니는 근 삼십육년만에 집안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좋아하셨다. 아내와 아이가 서로 적응이 빨랐으므로, 어머니는 하루이틀만 주무시다가, 그 다음날부터는 하루 반나절만 들르셔서 밥과 빨래를 해주시고, 아이를 씻겨주는 법을 알려주셨다. 아이고, 니들이야 부모이까네 어쩔 수 없다지만 안사돈은 거기서 무슨 죄고, 니들이 많이 도와드리라, 걱정 안하시게, 포항에서 운신하실 수 없는 장모님의 안타까운 걱정에도 어머니는 오히려 신바람이 나는 듯해보였다. 사람이 때되면 서로 짝 맞춰 살고잉, 또 애 낳고잉, 그래야 사는 것이여, 봐바라, 얼마나 좋냐, 애가 있어야 집에 웃음기도 돌고, 사는 맛도 나는 것이여, 느그들 둘이 늙어바라, 서로 맨날 보넌 얼굴, 주름 쪼글쪼글 지고, 뭐 세상 좋은거 있간디? 말씀처럼 어머니는 언제나 딸아이를 잘 돌보셨고, 손만 대어도 아이는 마치 꿈나라로 가듯 잠들었다. 덜 된 아비는 어머니가 가시고, 아내가 잠시 잠든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를 제대로 안아 눈을 맞춰보는데, 뒤로 꺾이지 않도록 받친 뒷목과 등골에서 뜨겁게 전해져오는 온기와, 배가 튀어나오도록 전해지는 맥동과, 온 몸에 젖도록 풍기는 젖 냄새는, 견딜 수 없이 아이를 사랑스럽게 했다. 아,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나와 아내가 함께 사랑하여 낳은 아이구나. 그러므로 덜 된 아비는 겨우 이제서야 몰래 몇 문장 남기며, 나와 꼭 닮은 딸을 생각한다. 늘 딸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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