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말 무섭고 어지럽다.
아르놀트 겔렌은 인간학적 탐구(읽은지 십년이 넘은 책인데, 이 책 제목이 아직 기억 나서 나조차도 놀랐다.)에서 인간은 시각에 의한 부담 면제가 가능한 존재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지 아니하고, 단지 눈으로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장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사람들은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인데도, 마음마저 멀어버린 듯이 순식간에 짐승처럼 전락해버린다. 이른바 백색 공포에서 벗어난 뒤, 각 국가는 마치 한때의 사고로 지나지 않은 듯 치부하려 하지만, 민중들은 더이상 문명 사회의 영존을 믿지 못한다. 양차 대전을 겪은 세대의 국민들이 후대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지하 대피소에 비상식량을 가득 쟁여두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까.
내 딸이 세상에 나온지 한달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아이는 무럭무럭 살쪄가고, 벌써 눈 앞의 움직임에 제법 눈맞춤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외수 선생님은 젊은 나날 편재를 이야기하셨고, 장자는 혜자와의 논쟁에서, 내가 물고기가 아니므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없다고 단언하듯, 그대 역시 내가 아닌데 내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리라 단언하냐며 오랜 친구이자 적수의 입을 막아버리었었다. 그러므로 사랑스러운 내 딸의 절반을 내가 주었다 한들, 나는 지금 내 딸이 보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마 내 딸이 나만큼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따라서 내 딸이 보는 세상이 무섭고 끔찍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은, 사실은 부모랍시고 내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는 세상이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에, 딸도 마냥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앞서 걱정하는 것이다.
이와아키 히토시가 그린 그 유명한 기생수, 에서 타무라 요코는 그토록 고등한 생명체가 어째서 인간을 꼭 잡아먹어야 하는 신이치의 근원적인 질문에 이빨을 드러내며 답한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내 머릿속에 본능이 명령했다, 이 종(인간)을 잡아먹어라 하고! 그러므로 중세의 흑사병을 방불케 하는 역질이 전 세계를 휩쓴다고 해서, 역질 자체의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본디 태어나기를 스스로를 복제하여 끊임없이 퍼지고 달라붙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에서도 전 세계를 강타하는 맹증이 어데서 나타났는지 굳이 탐구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세계는,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흘러가고 있다. 나는 역질보다도, 역질을 핑계삼아 여과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성이 무섭다. 맹자는 먼 길을 다녀와 길어온 물동이마저 깨면서도 생면부지의 아이를 구하는 처녀의 예를 들며 인간의 성선을 믿었으나, 순자는 교육으로 누르고 옥죄지 아니하면 끊임없이 넘쳐 끝내 악과 맞닿고 마는 인간의 과욕을 경계했다. 유례없는 역질은, 전세계의 사회 구조를 마비시키거나 늦췄고, 반면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속도를 더하고 키워서, 그 동안의 세상이 커다란 규칙과 체계에 따라 흘러왔구나 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므로 그 것이 선이든 안이든 예상 밖의 범위로 폭주하여 흘러넘치는 상황이 나는 무서웠다. 남쪽의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봉사대를 결성하여 자체 방역에 나섰지만, 드론에서 공중살포되는 소독제는 큰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총선을 둘러싸고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에 있어서는 여야가 또다시 나뉘어 단순한 파퓰리즘이 아니냐는 논쟁에 휩싸였다. 한국이 제아무리 메르스의 선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상황은 보드게임 팬데믹이 아니었으므로, 예상할 수 없는 길에서 항상 찬반이 갈려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을 터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은 한편으로는 옳아보였다. 세상은, 정반합의 논쟁에서 결정된 시대 정신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백가쟁명보다 더한 입이 있는 시대에서, 무엇이 진정한 시대정신이 결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자신이 옳게 되는 세상을 스스로 정하고, 나뉘어져 살기 시작했다.
어느 젊은 악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텔에서 요금 실랑이를 벌이다 사람을 토막낸 사내, 성범죄를 꾸며내고 이복 아들과 남편을 토막낸 아내, 역질을 틈타 치료제인 양 가짜 약으로 폭리를 취하는 사기꾼들, 자가 격리를 무시하고 돌아다니며 병을 퍼뜨리는 이기적인 이들, 오히려 순박했기 때문에 병보다 더한 혹세무민에 빠져든 사람들과 그들을 거느리는 광대같은 노인, 정신과 의사임을 빙자하여 환자를 불합리하고 착취하고 본인조차 방관하다 죽어버린 비루하고 가련한 인간, 제 할 일을 미뤄두고 부와 권력만을 밝히는 정치인들보다, 그는 훨씬 악의 근원처럼 보였다. 그 삶의 행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모두 밝혀졌다. 그의 안색은 담담하다 못해 뻔뻔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그의 글은, 자못 정의로운 척, 자의식이 넘쳤으나, 그는 결국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생각도 못할 끔찍하고 뻔뻔한 죄를 강요한, 악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취재한 PD는, 그 특유의 난변과 요설에 넘어가지 않고, 짧게 그를 취재한 심경을 전한다. 당신은 그냥 비겁한 악인에 불과하다.
결국 욕심이 사람을 어지럽게 만든다. 공부자께서는 공부를 통해 욕심을 없애라고 하셨고, 노자와 장자는 자연을 따라 순리대로 살면 욕심이 없어진다고 했다. 부처님은 자신마저 버림으로 해서, 집착을 끊어 욕심을 없애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욕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늘 구원을 향해 정진하라고 하셨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 같은 말씀이지만, 바로 그러한 세상이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고 살긴 정말 어렵다. 오랜 출산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는 새벽 버스, 버스비가 모자랐던 탓인지 어물어물한 청년을 앞에 두고 버스 기사님은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갑게 내뱉는다. 어데서 사기를 칠라 그라능교, 젊은 사람이, 아침부터 짜증나구로. 답답하여 눈길을 돌리는 창문 바깥에는, 아직 희부윰한 골목길마다, 곳곳에 편의점이 들어차, 뜨지 않은 해보다 더 밝게 사방을 비추고 있다. 모두 살려고, 저렇게 잠도 없이 발버둥치고 있다. 나 역시 청운의 꿈을 버린지 오래 되어, 단지 늙은 몸을 채찍질하여 단련하고, 아는 것만 읽고 되뇌일 뿐이다. 덧없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