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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an 18.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삶은 계속 이어진다. - 어머님의 첫 기일을 중심으로.

하루에 4시간도 못 자던 일주일의 끝 주말, 이틀 내내 주둥이 나온 선인장처럼 불퉁거리던 내 스스로도 부끄러워, 사실 여러번 사과하긴 했지만 잠 한 숨 자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던 끝에, 아내는 낄낄 웃으면서, 여보야 뭐 대다이 싸나대장부다 뭐다 그런 체 하디만은, 좁쌀뱅이라 좁쌀뱅이. 으윽, 내 바닥을 들킨거 같아 몹시 민망했고, 아내는 그 후로 내가 설거지 할때, 작은 간장 종지 같은 그릇을 씻고 있으면, 소은아, 봐래이, 니 아빠 자기 그릇 씻는데이, 종재기(종지)가 니 아빠 그릇이데이, 하며 놀렸다. 사실 들으면서 몹시 부끄럽고 민망했으며, 결국 아무리 글을 읽고 무공을 연습해도 결코 타고난 그릇을 함부로 늘릴 수 없구나 싶어 가슴 아팠다. 마흔이 되었으니 훨씬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 그래도 너와 곽선생과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도, 형식상이나마 대화의 규칙을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곽선생과 나는 취미의 공유는 있지만, 배운 학문이 달라 관점이 다르고, 너와 나는 감성은 가끔 공유하지만, 사는 결과 취미, 관심사가 달라 결국 셋 다 각자의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금껏 그나마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강요를 하지 않기 때문이며, 받아들이기 어려울때 즉각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대하며 선을 지켜야할 필요는 손쉽게 느끼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마음의 끈을 풀고 대하다가 오히려 큰 상처를 주고 받는 일도 적지 않다. 나는 마흔이 되어 아내와 자식과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에게 좀 더 힘써서 사려 깊은 행동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어머님이 가신지 벌써 일년이 흘렀다. 작년 구정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빠르다. 사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첫 기일을 어떻게 치러야할지 몰라 몹시 긴장하신듯 하였다. 그래도 아내와 처남 형님이 잘 준비하여 무사히 치렀다. 처가 목사님과 귀한 권사님들이 오셔서 짧게 추도 예배를 보고, 식사를 대접하고, 또 다음날 어머님 누워 계신 합천으로 가서 소은이도 보여드리고, 비록 부족한 사위, 남편일망정 아내와 함께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잘 보여드렸다. 형님은 부족한 매제를 위해서 몽골 출장에서 가져온 보드카와 ("우리 매제 술 억쑤로 좋아한다!" ) 또 지인에게 사오신 과메기 한 상자("우리 매제 과메기 억쑤로 좋아한다!" 혀..형님 이제 그만..^^:;) 를 푸셨고, 심지어 소은이는 '우와, 물고기 젤리다! 더 주세요!' 라며 고소한 과메기를 토막쳐서 초장도, 날미역도, 생양파도 없이 제 아비 따라 생으로 그냥 우적우적 먹었다. 어렸을때부터 생선회, 낙지회, 육회, 브로콜리, 당근볶음, 콩밥, 조기구이 등을 섭렵한 내 딸의 식성을 아비인 내가 모르지 않으나, 과메기를 물고기 젤리라 부르며 한 마리 가까이 뜯어먹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러다 흑산도 가면 진짜 생홍어도 우습게 먹을 성 싶었다. 아이는 아직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알파벳과 한글 자음 모음을 모두 읽을 줄 알아, 내 옷에 적힌 영어 알파벳을 큰소리로 보란듯이 읽어제끼는데, 유튜브로만 공부를 했으니 발음 하나는 진짜 살다온 아이처럼 끝내준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알파벳을 읽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낯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아이고, 아이가 아주 똘똘허네, 생긴 건 아주 그냥 애비 판박이여.' 라며 웃어주신다.



아내 올라오는 날에 맞추어 하루 연차를 내었는데, 감기 결근자가 많아서 무참하게 반려되고 말았다. 내가 일 나간 동안 아내는 나 몰래 소은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창살과 소은이 방 짐을 전부 정리하기 위한 조립식 수납장을 주문해서 어머니가 제사 음식 준비하시고, 아버지가 소은이 보실 동안 혼자 소은이 방 창문에 창살 달고 수납장을 조립해서 짐들을 전부 옮겨놓았다. 하여간 뭐 조립하고 풀고 끼우는 일은,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관심사 밖인 나로서는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그새 짐 옮기다 발을 삐어 옛 간호사 출신답게 솜씨있게 발목에 얼음 대어 부목까지 고정한 아내는 '내 뭐 매일매일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이런건 몬해도, 이런 장점이 또 있다 아입니까?' 하며 엣헴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장난스레 코를 세워보였고, 어머니 아버지는 '그려, 우리 메누리가 아주 신퉁방퉁이여, 키도 크고 운전도 잘허고, 그냥 아주 복덩이여.' 하며 웃어주셨다. 아내가 있어 살아가며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아내는 얼마 전 내게 인터넷에서 본듯한 사진 한장을 보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어둠으로는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을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증오는 짊어지기에 너무 큰 짐입니다.' 아내는 거기에 덧붙였다. 나는 여보를 사랑해요. 우리는 항상 사랑으로 가요. 나는 그 때 회사에서 무척 바쁜 때였는데, 잠시 화장실을 가다가 또 주책맞게 코끝이 시큰하면서, 그만 눈물을 팍 쏟았다. 아내가 나와 살아줘서 고마웠고, 아내에게 미안했다. 어머님은 가셨고, 산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다. 늘 부족하고, 쓸데없는 잡생각만 많은 불민한 남편과 살아주는 아내와, 이런 조잡한 사내도 아비라고 늘 눈을 맞추며 불러주는 딸아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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