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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Feb 26. 2024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칼의 노래 ㅡ 물에도 땅에도 살 길 없던 사내의 노래

아이는 요즘 유튜브를 보다 무섭다며 아비가 웃통 보고 혼자 태권도 하는 연습하는 방으로 후다닥 뛰어들어와 커튼 새에 몸을 감으며 숨곤 했다. 땀이 범벅이니 함부로 안아줄수도 없고.해서, 소은아, 뭐가 무서워? 하니 아이는 커튼 새로 고개만 쏙 내밀며 괴물이에요, 괴물이 나타났어요, 무서워요! 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 TV를 보니, 인형 눈 코 입을 하나씩 하나씩 떼는 내용인데, 아닌게 아니라 사십 다된 아비 눈에도 섬뜩한데, 아이 눈에 오죽하랴. 아이를 달래서 다른걸 보자 해도 한편으로는 공포를 즐기는지, 아니야, 이거 볼거예요, 햐더니 기어이 오늘은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아빠아, 우리 같이 자요, 같이 누워요 하며 평소엔 덥다며 아빠, 저리 가! 잠결에 밀어내던 녀석이 그래도 아비라고 믿고, 내 팔에 매달려 한참 괴물 어쩌고 쫑알대다 잠들었다. 언젠가는 그 어떤 괴물보다도 독한 마음 품은 사람이 무서운 것이요, 그나마 지금은 아비어미 조부모님이라도 계시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댈데도 매일데도 없는 때가 진정 두렵다는 사실을 또 알게 될 터이다. 그리하여 이 풍진 속세의 사람들은 제각기 저를 지탱해줄 돈, 권력, 유희 등을 찾아 헤매이지 않던가.



물 위에 뜬 수군이라 정처없고, 왕의 미움을 받아 땅에서도 쉴 수 없는 남자가 있다. 훗날 나라 구한 위인으로 칭송받는 충무공이시다. 그 뉘라서 충무공을 흠모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군신으로 추앙받는 근대 해군의 제독조차 감히 넬슨과는 견줄수 있으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신발 끈조차 감당키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사직과 백성을 지키고자 했지만 끊임없이 당파 싸움에 휘말렸고, 난중일기에도 드러나는 섬세하다 못해 예민한 성정으로 행정력을 발휘해 우수한 화력과 보급을 갖추었다. 충무공께서는 뒤늦게 무과로 틀어 응시하셨기에 개인의 무공은 탁월하다 보기 어렵지만, 전략전술에 능하셨고, 수로와 조수간만을 꿰고 계셨으며, 무엇보다 민초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정작 당신께서는, 매일 곳이 없으셨다. 백의종군의 몸으로, 늙어가는 사내로서, 명예를 잃고, 수군을 잃고, 어머니를 잃고, 아들을 잃고, 몸을 섞은 여자도 잃는, 끊임없는 상실을, 그러나 김훈 선생은 담담히 써낸다. 공께는, 늘 전쟁같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로서의 전쟁이 있었다. 늘 하루하루 살아남으셔야 했고, 또한 살리셔야 했다.


공께서는 큰 벼슬복이 없으시어 무과 급제 후 오랫동안 육군의 하급 군관으로 북녘을 떠돌다 비로소 남으로 내려와 수군의 장교가 되셨다. 북쪽의 춥고 건조한 산맥에 익숙해있던 미남 시인 백석은, 뜨거운 남쪽 바닷가의 여관방 다다미에 살갗을 찔려가며 활달한 여인을 품는 낯선 경험을 시로 남겼다. 사람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지만, 한낱 필부에 불과한 나는 여전히 난중일기와 칼의 노래 를 번갈아 읽어도, 그토록 막막했을 충무공께서 어찌 하루를 버티시며, 나라를 구했을지 감히 짐작도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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