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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Mar 12. 2024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

무엇이 시인가?

그 옛날 문화부 장관도 지내신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시고, 윤정희 배우께서 열연하신 영화 시詩 는 샤인 shine 과 더불어, 내용도 잘 알고, 심지어 한때 논술 강사할 적에 수업자료로도 여러 번 인용도 했던 영화지만, 정작 완전히 본 적은 없다. 영화로 내 결핍을 마주 볼 때마다, 나는 성숙한척 짐짓 종교와 독서와 태권도와 술로 가리고 묻어놓았뿐, 일그러지고 비어버린 내면을 여전히 메우지 못한 채 자랐음을 알게 된다. 여하튼 이젠 거의 낫지 않았겠나 싶어 그 유명한 샤인 을 보았을때, 넌 절대로 이 가족을 벗어날수 없다며, 미국 유학 떠나려는 아들의 여권을 찢는 아버지의 절규에서 난 영화를 껐고, 덜덜 떨면서 숨겨놨던 모든 술을 섞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마셨던 날은 지금도 선연하게 기억한다.


아마 이창동 감독께서 전달하셨듯이 또한 시는, 단순히 어여쁘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꾀꼬리처럼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파고드는, 가열차고 힘차고 냉엄한 선언이자 노래일수도 있어야할게다. 그러므로 일찍 마야코프스키는 혁명의 탄환은 심장을 동경한다 했고, 네루다는 미 공군을 타격하는 미사일마다 자신의 싯구가 깃들어있다고 으스대었다. 어쨌든 모든 무공이 물리적 폭력에 맞서기 위한 실질적 저항의 기술이듯, 운문이든 산문이든, 문학이 시대와 현실에 유리되어 이른바 순수문학이 존재할수 있다는.환상은 애시당초 있을수 없다는게 젊을 적부터 지금까지 내 생각이다. 시대의 거울이자 현실의 대변자.되기를  포기한 문학은 이미, 더이상 문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창동 감독이 부르짖은 시적인 감수성만 갖춘다면, 간추려진 시적 용어를 각운이니 두운이니 운율만 맞춰 나열한다면 시라 부를수 있을까? 산문시, 서사시 등의 갈래도 있기에 사실 어찌보면, 그냥 줄바꿈없이 쭉 이으면 그냥 고려시대 가사 歌詞 라든가, 수필 隨筆(자꾸 손 수 자로 쓰는 분들 있는데, 붓 따르는대로 쓴다고 따를 수 자다!)과 구분이 힘든 글들도.있다. 겉보기엔 주먹 한두 방으로 상대를 때려눕힌다면, 고련을 거친 무인인지 길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싸움꾼인지 명확히 구별키 어려운 것과 비슷할까? 그래서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란 테크네 techne 즉 언어적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했다. 마치 A.I 마냥 언어를 정밀하게 갈고닦아 나열하기만 하면 내 마음을 능히 전할수.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시는 철학과 달리 순수하지 못한 재주라고 인식되었다. 인간예술의 공통된 경향을 정밀히 분석하여 그림이며 소설, 시를 내놓는 인공지능들의 현재 모습을 보자면 이해도 가는 부분이다.



고대 유학에서 시는 윤리 교과서이자 국가행사의 요체였으며.서정성을 지닌 대중가요이기도 했다. 구분없이 다양하게 쓰여왔기 때문에 공부자께서는 서정성을 노래한 시들을 풍風( 우리가 미국풍이다, 중국풍이다 할때의 )이라고 구분짓고, 그 중 선정적이기로 유명한 정풍과 위풍, 즉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는 경계하라 엄명하시었다. 그 스스로도 고백하기를 정풍과 위풍의 가사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그에 곡조를 붙인 음률이며 춤까지 섹시하기 이를데없어 석 달 열흘 그 좋아하시던 고기 맛도 몰랐다 했다. 지금부터 이천년도 넘던 시절의 이야기니, 아이돌이 있을리 만무하고, 주나라를 세우려던 희씨 일족도, 허리가 잘록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큰 기묘한 몸매의 이민족 소녀들에게 이 정풍과 위풍을 가르친 뒤.은나라 주왕에게 보내 안그래도 달기에게 홀려있던 그 혼미한 정신에 쐐기를 박았다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수위가 높았던 모양이다.



후대의 일본 유학에서 공적인 영역은 정치와 윤리적인 것으로 구분되었고, 시는 사적인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시는 음악과 더불어 대규모 제례에 빠질수 없는 도구요, 시대의 대변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온전히 사적이라고만 칭할수 없었다. 지금도 스스로를 시인이라 칭하며 전화기, 컴퓨터 속 세계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무엇이 시인가? 무슨 글을 써야 시인이라고 인정되는가? 인정을 받으면 시인가? 문득 책.읽다 말고 오래 적는다. 무식한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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